<시리즈> 비메모리산업 현주소 (7);외국 사례

96년 세계 반도체시장 점유순위를 보면 비메모리 반도체의 중요성은 극명하게 나타난다. 수년째 1위를 고수하고 있는 CPU의 강자 인텔은 물론 모토롤러, TI, 필립스, SGS톰슨 등 10위권 업체들은 시스템IC 전문업체 일색이다. 또한 NEC, 도시바, 히타치 등 일본 업체들이 D램시장 위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5위권을 고수한 것도 반도체 제품군이 균형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들 미, 일 유력 반도체업체가 비메모리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 상황과는 달리 자체수요를 겨냥한 시장접근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 미국은 국가주도의 방위산업에서 축적한 기초과학과 기술인프라를 토대로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으로 빠르게 전환했고, 일본도 가전 등 전자산업에서 닦아온 응용기술을 앞세워 비메모리 반도체산업에 진입했다.

하지만 이는 단지 필요조건일 뿐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충분조건은 기초기반기술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당국의 적절한 지원정책이었다. 이는 이제 비메모리사업의 걸음마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든 산업이 노동집약적 성격으로 시작한 우리나라의 경우 반도체산업 역시 생산기술 위주로 발전해와 비메모리 반도체산업에 적합하지 않은 인프라를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선진업체들의 기술인프라 구축과정과 정부지원정책 사례 등은 국내 비메모리 반도체사업의 방향모색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반도체산업협회 H부장)

오늘날 미국의 반도체산업을 확고한 위치에 올려놓은 주역으로는 흔히 반도체산업협회(SIA), 개발연구기관인 세마테크(SEMATECH), 반도체연구조합(SRC) 등을 꼽는다.

SIA가 업계의 요구를 정부당국에 전달하는 창구로 장기적인 미국 반도체산업의 기술발전정책 수립에 힘쓰고 있다면 14개 업체의 컨소시엄 형태로 구성된 세마테크는 실질적인 반도체기술계획(로드맵)을 작성하고 산, 학, 연의 연구개발기능을 연계시키는 핵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학을 중심으로 설계기술을 포함한 기초기반기술 연구의 지원체제를 확립한 SRC도 또 하나의 축이다.

반도체공동연구소의 박영준 소장은 『미국 반도체산업 부흥에는 SIA, 세마테크와 함께 이처럼 업계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적기에 개발하고 이를 상업화할 수 있도록 업계에 기술을 이전해주는 SRC와 같은 잘 짜여진 연구기능이 뒷받침이 됐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이 현재와 같이 메모리와 비메리산업의 안정된 기반을 갖추고 경쟁력을 확보한 데에는 무엇보다 정부, 더 정확히 말하면 통상성의 산업정책에 기인한 바가 크다. 특히 물량적인 뒷받침보다는 각종 제도적 지원과 함께 공동개발 유도 등 산업정책의 우수성이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또 SRC를 본떠 만든 반도체기술대학연구지원센터(STARC)의 활성화도 빼놓을 수 없다. 반도체기술 연구와 설계교육의 촉진을 위해 대학 연구인력 확충과 연구환경 개선을 목표로 추진되는 이 프로그램은 현재 일본 반도체 기술인프라 구축의 핵을 이루고 있다.

TMSC, UMC 등 세계적인 파운더리서비스 업체를 보유하고 있는 대만의 반도체산업이 설계기술을 중심으로 중소기업 특유의 탄탄한 경쟁력을 극대화시켜 나간 데에는 외국 합작업체들의 선진기술을 조기에 흡수한 것이 기반이 됐다. 대만정부는 용이한 기술습득을 위해 무엇보다 행정원이 주축이 돼 정부출연연구기관, 대학, 민간기업 등이 역할을 분담하는 「分工합작체제」를 구축, 이들간의 유기적인 협력을 통한 반도체 저변확대에 힘썼다.

이같은 분공협력체제는 민간기업들의 R&D비용부담을 크게 덜어 생산에만 주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실제로 대만 업체들의 총매출액 대비 R&D비율은 평균 7∼8% 정도로 한국 업체(12∼15%)에 비해 상당히 낮다. 이는 ERSO 등 공공기관과 이공계 대학에서 R&D역할을 분담수행하기 때문에 개별업체의 R&D비용은 낮으면서도 효율적인 수행이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경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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