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특집] 국산 하이엔드 오디오시대 개막

국산 하이엔드 오디오의 元年이 시작됐다. 지금까지 외산 고급 브랜드들이 점령하고 있었던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에 국산품이 잇따라 등장, 오디오 평론가나 마니아들의 호평을 받으며 판매량이 늘어나 시장진입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하이엔드 오디오란 최상급의 음질과 성능을 가진 오디오를 말한다. 물론 가격이 비싸야 한다거나 단품으로 제작돼야 한다는 등 여러가지 정의가 있지만 대다수 평론가들이나 마니아들은 하이엔드 오디오를 음악적인 접근에 성공한 고성능 제품이라는 점에 의견을 일치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하이엔드 오디오의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은 90년대 초반부터.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나 고급 오디오 기기에 심취되어 있던 일부 부유층을 중심으로 관련 정보가 소개되고 외제가 수입되면서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업계에서 추정하고 있는 올해 하이엔드 오디오의 시장규모는 8백50억원 가량된다. 94년에는 약 1천억원 정도의 시장을 형성했으나 최근 불황의 여파로 시장이 다소 위축됐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하이엔드 오디오를 취급하는 판매관계자들에 따르면 비교적 중저가에 속하는 50만~2백만원대의 구매고객은 줄어든 반면 5백만~2천만원대의 고가제품 구매고객들은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늘어났다고 말해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이 불황을 타지 않는 산업임을 간접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업체들이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에 참여하는 것은 단지 시장성만을 보기 때문은 아니다. 자사의 기술력과 품질력 등을 과시하는 가장 좋은 분야가 이 시장이기 때문이다. 일단 한 회사의 제품이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에서 마니아들로부터 인기를 모으면 그 회사의 이미지는 수백번의 광고를 한 것보다 더 좋아지며 기타 제품의 판매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지금까지 대량 생산체제로 중저가 오디오만을 생산해왔던 국내 업체들이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에 뛰어든 것도 이 때문이다. 하이엔드와 중저가 오디오의 이미지를 연결시켜 매출을 늘리겠다는 전략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만든다는 장인정신으로 사업을 벌이고 있는 회사들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내수공업 형태로 하이엔드 오디오를 개발하고 있는 업체는 10군데 정도인데 대부분 종업원 20여명 미만의 중소업체들이다. 이 업체들은 하이엔드 오디오에 대한 정열은 뜨겁지만 자금, 기술, 인력, 마케팅 등 기업환경이 열악해 우수한 제품을 개발해놓고도 빛을 못보는 경우가 많으며 전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도 극히 부분적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대규모의 자본과 인력을 가진 회사들이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에 진출, 대규모로 체계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 가운데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에 처음으로 뛰어든 회사는 「테마」란 제품을 개발한 舊인켈. 당시엔 화제가 됐으나 인켈이 해태전자로 흡수되면서 개발팀이 회사를 떠나고 후속제품이 뒤를 잇지 못해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러다가 지난해부터 삼성, 태광, 아남 등의 업체들이 시장에 참여해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삼성전자는 일본의 럭스만이란 오디오회사를 사고 미국 마드리갈사로부터 기술지원을 받아 파워앰프, 프리앰프, 스피커시스템 등으로 구성된 2천만원대의 「엠페러」를 출시해 국내 업체들의 진출을 예고했다. 태광산업은 하이엔드 오디오 개발팀을 구성해 지난해 하반기 하이엔드급 CDP인 「TCD-1」을 개발했으며 후속타로 파워앰프, 프리앰프, 스피커시스템 등을 출시했다. 「TCD-1」은 이미 국내 시장에서 확고한 기반을 잡아 예약판매도 밀려있을 정도이고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등지로도 수출되고 있다. 태광산업은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고 보고 해외 진출을 적극 시도할 계획이며 장기적으로는 해외에 현지공장도 설립할 것을 구상하고 있다. 아남전자도 「클래식-3」란 이름으로 통합앰프, CDP, 스피커시스템을 개발해 이달부터 전국 대리점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국산 제품들이 하이엔드 시장에 대거 쏟아지자 오디오 평론가들도 이에 관심을 갖고 국산품의 성능 테스트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지금까지는 대체로 우수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국내 업체들의 하이엔드 오디오 사업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돼 아직까지 시장에 영향을 줄 정도는 못되고 있다. 그러나 삼성, 태광, 아남, 해태 등이 하반기에도 후속제품을 잇따라 개발해 출시할 계획을 잡고 있으며 기존 제품들의 판매도 꾸준히 늘고 있어 내년부터는 국산과 외산 제품 사이의 시장경쟁이 보다 가시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국산 하이엔드 오디오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도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음악을 아는 개발자들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하이엔드 오디오는 회로설계기술도 중요하지만 완성된 제품의 소리를 조정해주는 튜닝작업이 더 중요하다. 디자인 측면에서도 외산 제품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디자인 기술을 보강해야 한다. 그러나 오디오 평론가들은 국내 업체들이 제품 판매보다 회사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하이엔드 오디오 사업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하이엔드 제품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오디오 마니아들에게 판매가 돼야 하는데 턱없이 비싼 제품을 출시하거나 특정한 목표시장 없이 개발하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게 되고 결국 사업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이엔드 오디오는 이를 구매한 소비자들이 인정해주어야만 진정한 하이엔드로 평가받는 것이다.

<윤휘종 기자>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