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특집] 오디오산업 "위기냐 제2전성기냐" 갈림길

「위기를 극복하고 제2의 전성기를 맞느냐 아니면 침체의 늪으로 빠지느냐.」

우리나라 오디오산업이 갈림길에 서 있다. 현재 국내 오디오시장은 몇 년째 계속되는 불황에다 수입개방의 물결을 타고 들어온 외산 오디오의 공세로 내우외환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국내업체들은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맞춰 다양한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디지털 다기능 디스크(DVD), 가정극장시스템 등 소비자들의 구매욕구를 자극할 만한 첨단기술들이 잇따라 소개되고 있어 현재의 난국을 타개할 경우 오디오산업이 그리 비관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매년 20%의 고성장을 구가해오던 국내 오디오시장은 92년을 고비로 소폭 신장하거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 정체국면에 접어들었다. 91년 국내 오디오업체들이 하이파이, 미니컴포넌트, 뮤직센터, 카세트류 등 순수 오디오분야에서 올린 매출액은 5천7백억원. 그러나 92년부터 5천3백70억원으로 6% 감소하기 시작해 93년 4천8백60억원, 94년 5천4백70억원, 95년 5천7백80억원 등 6천억원 미만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95년보다 무려 16%나 줄어든 4천8백70억원을 기록해 국내 오디오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든 것이 아니냐는 비관론마저 대두됐다. 올해 1, Mbps분기 국내 오디오업체들의 전체 매출은 그나마 출혈에 가까운 세일행사로 96년 같은 기간보다 0.9% 늘어난 1천3백96억원을 기록했다. 간신히 체면유지는 한 것이다.

이처럼 오디오시장이 침체의 늪에 빠진 것은 오디오 보급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신규수요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는데다 이를 극복할 만한 특별한 신기술, 신상품의 개발도 부진했고 무엇보다 전반적인 불황의 여파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몇 년 전부터 국내 오디오시장은 부가가치가 높은 하이파이류 제품보다 부가가치도 낮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한 미니컴포넌트 위주로 흘러오고 있어 제조 및 유통업체들의 이윤이 예전보다 줄어들었으며 그나마 중국과 동남아에서 생산된 저가 외산제품이 미니컴포넌트 시장을 잠식하고 있어 국내 오디오업체들의 주름살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수입업체들이 미니컴포넌트를 집중 수입하고 있는 것은 국내 오디오시장에서 미니컴포넌트가 차지하는 판매금액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 지난 몇 년간 하이파이 오디오 판매는 해마다 줄어드는 대신 미니컴포넌트와 카세트류의 판매는 20∼40%씩 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미니컴포넌트는 95년보다 무려 50% 가까이 판매가 늘어났으나 하이파이 오디오는 16%가 줄어들어 전체 오디오시장에서 하이파이 오디오가 차지하는 비중은 24%로 줄고 대신 미니컴포넌트는 37%로 늘어났다. 이같은 시장상황은 업체들의 시장구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이파이 오디오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해왔던 오디오 전문업체들의 매출이 줄어든 대신 미니컴포넌트와 카세트류를 주력 판매했던 가전업체와 수입업체들이 재미를 본 것이다.

소니, 필립스, 켄우드, 샤프, 아이와 등 외산 오디오를 수입하는 업체들이 미니컴포넌트와 카세트시장을 타깃으로 제품을 집중 수입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통상산업부의 자료에 따르면 컴포넌트류의 경우 지난해 국내에 수입된 금액은 총 7천9백56만달러를 기록, 95년보다 40%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에는 국내업체들이 해외공장에서 생산한 제품도 포함돼 있으나 이를 제외하더라도 외산 오디오 수입이 증가추세에 있다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이다. 업계에서 밀수품을 포함한 미니컴포넌트류의 수입물량을 추정한 결과 지난해엔 52%, 올해엔 59%로 수입물량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서 일본 상표를 달고 수입된 것으로, 국산품보다 품질은 전반적으로 떨어지지만 일본 상표의 높은 지명도를 등에 엎고 국내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수입업체들의 외산 오디오 판매가 늘고 있는 간접 요인으로는 특별소비세가 지적되고 있다. 오디오 제품에는 19.4%의 특별소비세에다 교육세, 종합소득세 등을 포함해 소비자가격의 30% 이상이 세금으로 나가는데 특별소비세가 국산제품에 불리하게 매겨져 있다는 지적이다.

국산제품에는 제조원가, 인건비 등을 포함한 공장도가격에 특별소비세가 붙고 여기에 유통마진 등이 추가돼 소비자가격을 형성, 할인의 소지가 적은 반면 수입 오디오에는 수입업자가 자신의 마진까지 모두 계산한 수입가격에다 특소세가 붙어 세일행사시 할인율이 국산품보다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국산 오디오와 수입 오디오의 이같은 차이는 오디오 판매점에서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소비자들은 국산과 외산의 기능이 비슷할 경우 상표 인지도가 높은 외산을 선호하게 되며 여기에 큰 폭의 할인혜택이 주어지면 열명 가운데 7~8명이 외산을 구입한다고 한다. 업계에서는 국산제품이 발목을 묶인 채로 외산 오디오와 경주를 하고 있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이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 오디오업체들의 노력도 만만치 않아 오디오 산업의 미래가 그리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현재 오디오업체들이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가정극장시스템, DVD 등의 출현을 계기로 예상되는 디지털 오디오시스템의 신규수요. 이미 해태전자와 아남전자, 삼성전자 등은 가정극장시스템 사업에 발을 들여놓은 상태이며 후발업체들도 시장상황을 주시하면서 가정극장시스템용 제품출시 시기를 점치고 있다.

이와 함께 독자적 힘으로 오디오시스템의 기초기술을 연구개발하는 사례도 많다. 삼성전자가 카세트테이프의 재생음질을 혁신적으로 개선한 슈퍼 테이프 사운드(STS)를 개발해 국내외에 특허를 출원했으며 경북대학교 최평 교수팀은 3차원 음향기술의 국산화에 성공, 국내업체들에 공급할 의사를 밝혀 3차원 음향기술의 원조격인 미국 SRS사와 경쟁구도에 들어섰다.

또 오디오 전문업체들은 자구책의 하나로 오디오 위주에서 탈피해 백색가전분야로 진출하는 등 사업다각화에도 신경쓰고 있다. 해태전자 인켈사업본부는 최근 에어컨사업에 진출했으며 아남전자는 에어컨, 청소기 등에, 태광산업은 전화기, 휴대폰사업에 손을 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움직임을 두고 국내 제조업체가 수입유통업체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기도 하지만 업체들의 사업다각화 움직임은 한가지 사업에만 집중할 경우 요즘같은 불경기에 신제품에 대한 투자도 못할 정도로 자금난을 겪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오디오업체들은 중국 및 동남아산 저가 오디오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기지를 해외로 대거 이전하고 있다.

현재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한 회사들은 삼성전자, LG전자, 해태전자 등이며 최근엔 아남전자도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키로 결정했다. 국내 공장에서는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들을 생산하는 대신 카세트나 중저가 미니컴포넌트는 임금이 싼 중국 등지에서 생산해 일제 동남아산 제품과 가격경쟁을 벌여보겠다는 의지이다.

국내업체들이 이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자구방안을 마련한 결과, 서서히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헤드폰카세트 시장. 과거 헤드폰카세트는 워크맨으로 통할 정도로 일본제품의 인기가 대단했으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이에 맞먹는 성능의 제품을 잇따라 출시하고 공격적인 마케팅활동을 벌여 90년대 초 70%를 육박했던 일본산 헤드폰카세트의 시장점유율을 40%대로 끌어내리는데 성공했다. 지난해 국산 헤드폰카세트의 시장점유율이 53%를 기록한 것이다.

일본산의 아성을 깨뜨린 헤드폰카세트 시장의 판도변화는 국내업체들에 새로운 성공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업체들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한번 전성기를 누리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선 음향기술 관련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투자를 하지 않고 열매를 기다리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이다. 해외 현지화사업에서는 단순히 제품생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별 특성에 맞는 히트상품을 발굴하는 능동적 마케팅이 요구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국산 브랜드의 이미지를 높여주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들끼리 오디오용 부품의 표준화작업을 실시해 원가를 절감하고 국내 업체들간 기술공유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 오디오시장을 되살리는 절반의 책임은 해당 기업들에 있다는 것이다.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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