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대형 컴퓨터 기술자립의 기치를 내걸고 정부와 민간기업이 공동으로 추진한 국산 주전산기 개발사업이 10년째를 맞은 올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정보조달시장 개방 등의 여파로 국산 주전산기의 보급이 과거처럼 순조롭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최근 들어 현실로 나타나 국산 주전산기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서울시 전자계산소가 지금까지 사용해온 국산 주전산기I(일명 톨러런트 기종)의 용량부족 및 노후화를 들어 새로운 주전산기를 도입키로 하면서 국산 주전산기 업체에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찰참여 자격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전자계산소는 조달청에 보낸 조달의뢰서를 통해 새로운 주전산기를 공급할 수 있는 업체의 경우 단일납품실적 20억원 이상인 SI업체로 하드웨어 제조사로부터 공급 확약을 받을 것과 고가용성(HA)으로 시스템을 구성, 일정 규모 이상의 업무에 실제 적용해 업무 정상가동일로부터 6개월 이상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곳(Site)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서울시 전자계산소의 이같은 입찰참여 자격조건은 우선 주전산기 구매에 소요될 금액이 13억원(서울시 전자계산소 추정)에 불과한데 20억원 이상의 납품실적을 요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조달청의 지적대로 여러가지 측면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게 국산 주전산기 업계의 주장이다.
특히 고가용성을 보장하는 HA시스템으로 구축하여 6개월 이상의 안정적인 운영실적을 요구하는 조항은 국산 주전산기 업체의 참여를 배제하기 위한 무리한 조건이라는 게 업계의 견해다.
입찰참여 자격조건이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조달청 지적을 받은 서울시 전자계산소는 20억원 납품실적 조건을 하드웨어 제조자로부터 공급확약서를 받은 SI업체로 완화하겠으나 6개월 HA시스템 운영실적 조건은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조달청에 제시했다.
여기에다 서울시 전자계산소는 당초 1년으로 되어 있던 무상유지보수 기간을 2년으로 연장한다는 부대 조건을 달았다.
국산 주전산기 업체들은 『국산 주전산기Ⅲ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 이제 막 상용가동에 들어가는 단계에 불과하다』며 『6개월 이상의 운영실적 및 HA시스템 구축경험을 요구한다는 것은 국산 주전산기 업체의 참여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삼성전자, 현대전자, LG전자, 대우통신 등 국산 주전산기 업체와 한국컴퓨터연구조합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2일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서울시 전자계산소의 입찰참여 자격조건이 지나치게 외산 위주로 되어 있어 국내 업체의 참여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를 완화해 줄 것을 서울시, 조달청 및 정부 요로에 호소키로 했다.
『10년 이상 수천억원을 투입해 정부와 업계가 공동으로 개발한 국산 주전산기가 정부기관이 발주하는 입찰에서 참여조차 못하게 되는 것은 조달시장 개방원칙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조치』라고 업계는 지적하면서 『무역적자폭이 갈수록 늘어나고 국내 정보통신 업계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는 현재의 국내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서울시 전자계산소의 입장은 지나치게 사용자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기존 톨러런트 기종을 사용하면서 잦은 고장으로 인해 대민업무에 차질을 빚고 민원이 제기되는 불편을 겪은 서울시의 입장도 이해되지만 이번 입찰조건은 국내 중대형 컴퓨터산업 발전이라는 대국적인 측면에서 재고돼야 한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즉 국산과 외산이 동일한 선상에서 기술과 성능, 가격 등 제반요건을 놓고 경쟁하는 장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 게 서울시의 바람직한 행정이라는 지적이다.
<이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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