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159)

진기홍 옹은 다시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들었다. 여전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체인 전화가 두절되면 사람들은 고독을 느끼게 된다. 불안을 느끼게 된다. 현대인에게 전화는 소식을 주고받는 커뮤니케이션 매체 이상의 것이다.

전화가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고독해하지 않는다. 불안해하지 않는다. 자신이 전화를 하지 않더라도 남에게 전화가 걸려온다는 믿음이 있다. 전화는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그 전화가 고장인 것이다. 이미 한 시간도 더 지나도록 고장이 이어지고 있었다.

진기홍 옹은 다시 요람일기를 읽어 내려갔다. 지(地)권이었다.

1904년 6월 13일. 삼화전보사 전보.

「삼화전보사의 전보 취급시간은 국내 전보는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로 하고, 외국으로 나가는 전보는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하오니 하촉하소서.」

6월 15일 원산전보사 전보.

「지난 5월 28일에 러시아군 전신대 30여명이 경성(鏡城)전보사에 침입하여 전선과 애자 등 각종 집물을 탈취하였고, 경성 이북지역으로 통신선을 가설하는 한편 전보사장을 축출하려 하옵기에 죽기로 저항하자 총검을 들이대며 위협하였음. 이로 인해 부득이 문서류도 못 가지고 단신 도망하여 목선을 타고 어제 저녁에 원산에 돌아왔으나 막중한 공문서를 보기만 하면서 못 가지고 와서 죄송하온데, 즉시 상경하온지 하시 복망이라.」

6월 16일. 원산전보사 전보.

「러시아군 내침으로 인한 북로전선(北路電線)의 피해상황은 다음과 같음. 경성에서 성진까지 3백리는 전주와 전선이 전무하고, 성진에서 북청까지 2백70리는 태반이 결단났고, 북청에서 함흥까지 1백95리는 3분의 1이 상하고, 함흥서 원산까지 2백50리 내에는 그중 1백리는 전무하고 나머지는 혹은 있고 혹은 없어서, 모두 합하면 1천20리 내에 전선과 전주를 보수해야 할 곳은 6백리 가량 되오니 하촉하소서.」

6월 18일. 함흥전보사 전보.

「함흥전보사는 러시아군의 통신선 절단으로 인하여 남쪽 5리 밖의 풍호리(風虎里)로 이전, 낮이면 개설하고 밤이면 통신을 중단하고 있는데, 보수완료 후에는 본사로 들어가겠사오니 하촉 바람.」

통신원 지시.

「5리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어서 오늘밤으로 보수하여 통신할 수 있게 하고, 청구하는 물품은 즉시 지급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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