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154)

어떻게 된 것일까? 진기홍 옹은 이미 1시간도 더 불통이 되어버린 전화를 비롯한 각종 통신매체에 장애가 발생한 것이 궁금했다. 아파트 앞 공중전화도 불통이 되어 있었고, 휴대폰도 불통이 되어 있었다. 통신은 늘 그랬다. 장애가 없이 잘 이용할 경우에는 그 존재가치를 느끼지 못하다가 이용이 불가능해지면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상태가 안 좋은 것은 통신뿐만이 아니었다.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케이블방송에 연결되어 있는 TV수신기도 화면이 일그러진 채 찌지직 소리만 내고 있었다. 어쨌든 큰 사고가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기홍 옹은 다시 김지호 실장을 떠올렸다.

한국전신전화주식회사 통제실장.

우리나라 통신망을 총괄 관리하는 회사의 통제실을 맡고 있는 김지호 실장은 지금의 상황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알고 있겠지만 연락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진기홍 옹은 요람일기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우리나라의 통신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통신 피탈과정과 함께 당시 사회 전반적인 문화까지도 알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자료였다.

이미 여러 차례 읽었고, 내용정리도 한 상태였지만 풀리지 않는 궁금증 때문에 자꾸 읽게 되는 것이었다.

어디 있을까? 궁금한 것은 요람일기 인(人)권의 행방이었다.

요람일기의 천(天)권과 지(地)권의 내용과 당시의 정황을 보면 인(人)권이 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地)권의 경우 뒷부분이 다 정리되지 않고, 쓰다 만 상태로 남아 있어 인(人)권의 실체에 확신을 가질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

진기홍 옹은 이번에 발견한 요람일기가 우리나라 통신역사를 정리하는 마지막 단계가 되리라 여겼다. 여든을 넘어선 나이. 우리나라 통신역사를 최종적으로 정립할 수 있는 요람일기의 발굴은 진기홍 옹에게는 축복이었다. 일본에 의한 통신권 피탈 당시의 끊긴 역사가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진기홍 옹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요람일기의 인(人)권을 찾는 일이다. 비록 그 실체도 확인되고 있지 않은 상태이지만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사명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다 못하면 누가 하지? 김지호 실장.

그래도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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