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정보통신부장관을 지낸 경상현 박사. 학계와 연구계, 관계 등 정보통신 분야의 요직을 두루 거친 그가 최근 벤처기업회장으로 취임해 화제다. 그는 국산 전전자교환기(TDX)와 이동통신 디지털(CDMA) 시스템 개발 주역이다. 그러나 아쉬운 징크스가 그를 따라다녔다. 새로운 개발사업은 늘 그의 몫이었으나 결실을 보지 못하고 다른 자리로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개발사업의 초기 조직구조와 기본설계 등을 마련해 연구원들과 개발중에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일이 계속 이어졌다. TDX와 CDMA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20년의 공직생활을 끝내고 충북대와 KAIST 초청교수로 후진들을 지도하고 있던 그에게 이번에 국산 CDMA의 결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자 다른 자리를 마다하고 중소벤처기업의 회장직을 수락했다.
『정부에서 곧 개원할 초대 정보통신전문대학원 총장자리도 제의받았습니다. 그러나 CDMA의 결실이 국가를 위해서 더 이롭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는 미국 무선통신사업자인 넥스트웨이브사의 PCS시스템의 최첨단 통신소프트웨어 공급권을 따낸 한국정보통신의 자회사인 한국소프텔회장 자리를 택했다. 엔지니어로서의 고집과 집념을 엿볼 수 있는 선택이었다.
-대학원 총장보다 무명의 벤처기업회장직에 더 매력을 갖게 한 넥스트웨이브와의 관계는 어떤 것입니까.
아직 최종적인 계약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5월말까지는 가능할 것입니다. 내용은 넥스트웨이브사에 2억4천5백만달러 규모의 통신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것입니다. 국내 어느 기업도 하지 못한 이동전화시스템의 턴키방식 통합소프트웨어 공급입니다. 국산 CDMA시스템을 기본으로 국내외 소프트웨어업체와 공동으로 공급할 예정이며 결과가 좋으면 우리의 소프트웨어 기술역량은 단숨에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국내외 소프트웨어업체들과 협력해 한 번 제대로 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볼 셈입니다.
-지난 일을 보면 굵직한 국책사업을 많이 수행하셨는데 결과는 보지 못하고 다른 자리로 옮기셨군요.
지난 65년 미국에서 원자력공학 관련 박사학위를 받고 국내에 들어오려고 했는데 마땅한 자리가 없었어요. 그래서 벨연구소와 뉴욕주립대 교수로 있으면서도 국내에 오려고 벼르고 있었지요. 70년대 초반 정부는 KIST를 설립하고 해외 과학자 유치에 발벗고 나섰지요. 그때 저도 돌아왔습니다. 처음에는 원자력연구소에 근무했어요.
그러다가 한 세미나에 참석하고 나오는데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인 김재익씨가 저를 잠깐 보자는 거예요. 김수석은 저더러 미국에서 어디에 근무했느냐고 물었어요. 벨연구소에서 네트워크 플랜을 연구했었다고 했지요. 그 애기를 듣고 있는 김수석은 전자교환기에 대해 아느냐고 물어왔고 저는 벨에서 연구한 구체적인 분야가 전자교환기였다고 대답했죠. 당시 정부는 경제기획원을 중심으로 통신현대화 및 전자산업육성 정책마련을 준비중이었어요.
얼마후 원자력연구소에서 KIST로 자리를 옮기면서 저의 통신인생은 시작된 겁니다.그때가 아마 72년이었을 거예요.
-TDX개발은 어떻게 시작된 겁니까?
KIST부설 전자통신연구소에 2년정도 있다가 전자통신연구소가 통신기술연구소(현재 전자통신연구원)로 독립되고 자리를 그쪽으로 겼습니다. 당시 정부는 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발표하고 전자산업을 핵심산업으로 육성하면서 전자교환기 개발이 본격화됐습니다. 개발단장을 맡아 당시 오명 체신부차관의 지원 아래 국산 전자교환기(TDX)개발이 시작된 겁니다. 결국 개발중인 82년 한국통신공사 기술담당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양승택 현 전자통신연구원장에게 바통을 넘겼지요. 한국통신에 있으면서 기계식에서 전자교환기로 전환할 수 있도록 기반기술을 갖춰 나갔지요.
-한국통신 부사장에서 84년 전자통신연구소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많은 개발성과를 올렸으나 공로를 연구원들에게 돌렸고 그 이후에는 연구원 중심의 연구소 운영을 하셨는데.
전자통신연구소에 재직하면서 96년까지 세계정상의 연구소를 만들자고 연구원에게 얘기했지요. 최소한 10개중 1개정도는 남보다 앞선 연구결과가 있어야 세계정상급의 연구소가 가능하다는 판단을 한 겁니다.
재직하면서 TDX 상용화, 4메가 D램부터 16, 64메가 D램 개발, 주전산기 개발등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동통신 시스템 개발을 시작한 겁니다. 이것 역시 한창 개발중에 전산원장으로 자리를 옮겼지요.
-그당시 이동통신 디지털시스템개발을 놓고 이미 상용화된 TDMA로 가자는 의견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실험차원인 CDMA를 고집한 이유는 무엇이었습까?
지금도 그당시 결정했던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당시 TDMA를 선택했다면 세계 유명통신업체들 틈에 끼여 내수시장도 그들에게 독점적 우위권을 내줘야 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CDMA는 미국과 일본 등의 통신사업자 절반 이상이 채택하고 있어 국산 CDMA의 수출이 더욱 밝아지고 있습니다.
장관시절 신세기통신이 CDMA안정화에 문제를 제기한 것을 설득한 것과 한국통신이 PCS시스템을 TDMA로 가겠다는 것을 CDMA로 가도록 설득한 것들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모기업인 한국정보통신 박헌서 회장과는 어떤 사이입니까?
-알고 지낸지는 20여년 됐습니다. 박회장과는 지난 76년 TDX개발사업ㄸ 처음 만났고 90년대초 이동통신 디지털시스템개발을 앞두고 방식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박회장이 CDMA개발 기술을 기지고 있는 미 퀄컴사에 대한 정보와 향후비전 등을 저에게 제공해줘 CDMA로 결정하는데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이번 회장수락도 그때 도움에 대한 답례인 셈입니다.
<양봉영 기자>
경상현 한국소프텔회장 이력
58년 서울대 공과대학 2년 수료후 도미
65년 미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박사 학위 취득
66년 미 벨연구소 연구원
75년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연구실장
82년 한국전기통신공사 부사장
84년 한국전자통신연구소장
92년 한국전산원장
93년 체신부차관
94년 초대 정보통신부장관
97년 한국소프텔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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