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전기용품 형식승인제 전면개정 시급하다 (3);문제점

정부(통산부, 품질원)와 법(전기용품안전관리법)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행 전기용품 형식승인제도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더욱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제 수준의 10%도 안되게 못박아 놓은 시험료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현재 전기용품안전관리법에 명시된 형식승인 대상기기의 시험료는 품목당 낮게는 7천∼9천원대, 높게는 20만원대에 분포돼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품목은 10만원을 넘지 못하며 다만 형식승인 상의 시험항목으로 수년 전 추가된 전자파(EMI)부문은 특수성을 감안, 23만6천원으로 별도로 책정돼있다.

시험기관 및 업계 관계자들은 『UL(미국), CSA(캐나다), VDE(독일), CE(유럽) 등 우리나라 형식승인과 유사한 해외 안전규격만을 취득하는 데 들어가는 시험비용이 통상 2백만원을 상회하는 것을 감안하면 1백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라며 『냉장고, 세탁기 등 몇몇 대형 제품의 경우 운반비가 오히려 비싼 경우도 많다』고 혀를 내두른다. 시험비용이 외국인증에 비해 턱없이 싸다는 것은 해외인증을 받았거나 추진중인 업체들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시험료가 이처럼 비현실적으로 책정된 것은 KS 등 유사 국가규격 승인과 마찬가지로 안전관리법 상의 형식승인 시험료가 공공요금으로 분류돼 재정경제원의 통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국립기술품질원의 한 관계자는 『시험료가 비현실적인 것은 대부분 알고 있지만 이를 현실화하고 싶어도 물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재경원측의 제재로 마음대로 올릴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건비, 시험장비 등 시험에 필요한 실질적인 비용은 매년 고속 상승을 지속하고 있고, 단 한 번의 시험으로 5∼7년이 유지되는 형식승인 현실에 비춰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뿐만 아니라 모니터, 프린터 등 최근 형식승인 대상에 포함된 품목들은 훨씬 높게 책정됐다는 점에서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시험료가 너무 싸다 보니 전기전자시험연구원, 산업기술시험평가연구소 등 지정 시험기관들은 적은 인원으로 「양떼기」 시험을 실시할 수밖에 없어 시험의 부실화가 우려된다. 실제로 현재 주요 지정 시험기관들은 엔지니어 한 명당 1주일에 4∼5건의 형식승인 시험을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형식승인 취득의 핵심업무인 시험기간이 짧다 보니 전체 승인기간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지 못할 정도여서 짧게는 2주, 전자파시험을 합쳐도 길게는 60일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품목으로 외국규격을 취득할 경우는 안전규격 2∼3개월, 전자파 3개월 등 총 5∼6개월이 소요되는 것이 보통이다.

시험료와 함께 지정 시험기관제도의 활성화가 미흡한 것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 현재 정부로부터 지정받은 형식승인 시험기관은 4곳이나 실제 이용기관은 전기전자시험연구원, 산업기술시험평가연 등이다. 이 때문에 국제 수준의 시험장비와 전문인력을 보유, 해외기관으로부터 인정돼 수출품목을 자체 시험하는 업체들도 형식승인만큼은 선택의 여지없이 극소수 지정기관을 찾는 불편을 겪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대기업들과 전문 사설시험기관에 대해 공공성이 낮다는 이유로 지정을 보류함에 따라 형식승인 시험의 질적 향상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이같은 시험체계는 선진국들로부터 무역장벽으로 비춰져 통상마찰을 일으킬 수 있으며 국제적인 추세에도 반하는 제도라고 전문가들을 지적하고 있다.

전반적인 시험과 시험기관 관리제도가 미흡하면 사후관리라도 철저히 실시해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내 전기용품에 대한 사후관리는 인력부족과 체계정립이 제대로 안돼 거의 유명무실하다. 더구나 형식승인 자체가 형식구분에 의한 카테고리 인증 형태를 띠고 있어 인증품목과 양산품목을 따로 정하거나 일정 형식구분 속에서 모델을 맘대로 바꾸어도 제재를 가할 명분이 없다.

정부는 특히 형식승인 취득의 기본조건이었던 제조업 등록부분에 대해 기업활동 규제완화 특별조치법을 개정, 5월부터 이를 전격 폐지할 방침이어서 부실한 사후관리 문제가 시급한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밖에도 현행 전기용품 형식승인제도는 불필요한 전문검토위원회의 최종 심사, 기술기준의 IEC규격과의 격차 등 크고 작은 숙제를 남겨놓고 있다.

<이중배 기자>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