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PC유통업체 부도 도미노 이렇게 극복하라 (1)

컴퓨터유통업계가 중견업체들의 연속적인 부도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IPC, 멀티그램, 아프로만, 세양정보통신, 한국소프트정보통신 등 연간 매출액 1천억원 안팎의 큰 업체들이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4일까지 채 20일도 안되는 기간에 잇따라 쓰러지면서 컴퓨터유통업계는 89년 시장형성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연쇄부도의 직접 피해를 입은 컴퓨터관련 업체는 총 1천여개에 이르며 피해액은 4천억원을 훨씬 웃돌고 있다.

관련업계는 이번 부도 파문이 지난 80년대 후반 이후 지금까지 왜곡되어 온 컴퓨터유통구조가 올바른 방향으로 전면 재조정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면서도 시장구조 재편과정에 따른 도태를 우려해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뚜렷한 묘안을 찾지 못하고 전전긍긍해 하고 있는 실정이다.

컴퓨터유통업계의 잇단 부도로 피해를 입은 업체들은 거의 개점휴업 상태이다. 사장을 비롯해 대부분의 임원과 영업부서 사원들이 자체 영업을 중지하고 부도를 낸 업체에 상주하거나 채권단 모임에 참석해 본사와 각 영업매장에는 여직원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IPC와 멀티그램의 부도로 12억원의 피해를 입은 K사장은 『부도 이후 여사원을 제외한 20여명의 전 직원이 부도업체 사무실로 직접 출근하거나 채권단 모임에 참석하며 부실채권 해결에 매달려 있다』며 『3개 직영 유통매장과 본사 업무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라고 밝혔다.

유통업체의 부도로 납품처를 잃은 수많은 부품 및 주변기기 공급업체들은 수요처가 없어 제품생산을 대폭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요처가 없어 재고물량은 오히려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는 형편이다.

PC월드의 송일석 사장은 『최근 전자상가의 전체 매출액이 한달 만에 30% 정도 감소했다며 제조업체의 컴퓨터관련 제품이 대형 컴퓨터유통업체를 통해 상당부분 판매됐는데 이들 업체가 연이어 사라짐으로써 결과적으로 제품 과잉공급현상을 초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엎친데 덥친격으로 한보사태 이후로 얼어붙은 금융기관의 자금대출은 이번 컴퓨터유통업체들의 연쇄부도로 거의 중단된 상태이다. 시중은행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컴퓨터관련 사업은 호황을 구가하는 유망산업으로 간주해 앞다퉈 대출을 해줬으나 지난달 말부터 컴퓨터 관련업체라면 담보확보에 관계없이 일단 자금대출을 꺼리고 있다.

혜성컴퓨터의 고광철 사장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용산 등 4∼5개의 전자상가업체들이 연합해 지급보증을 서면 시중은행에서 손쉽게 자금대출을 해주었으나 지난달부터 갑자기 각 시중은행에서 이를 꺼리고 있다』며 『최근 상가업체들의 자금대출 신청은 생각도 못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각 컴퓨터유통업체와 전자상가업체들은 금융기관의 자금대출이 거의 차단된 데다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업체간 신용거래마저 뚝 끊어져 친척 등을 대상으로 자금확보에 나서고 있으나 심각한 자금난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SMC의 조경완 사장은 『일반적으로 제조업체와 총판 유통사업자는 보통 거래액의 80%가량을 어음으로 주고받고 있는데 최근 신용거래가 줄면서 제조업체로부터 물품반입이 30% 가량 줄어들어 일선 유통점들이 사실상 신제품 판매를 할 수 없는 상태이다』라고 말했다.

컴퓨터유통업체의 부도태풍은 시중 유통점은 물론 제조업체에도 「직격탄」이 되고 있다. 자체 생산품목을 소화해 주는 대형 주수요처가 사라짐으로써 생산량 축소에 돌입하는 등 대책강구에 몰두하고 있으나 당장 매출액 감소와 마진축소로 이어져 경영악화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니터 제조업체인 대선산업 관계자는 『그동안 대기업등에 주문자상표부착(OEM)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해오다 최근 자사브랜드 제품을 출시했으나 유통업체들의 부도로 일반 수요가 늘지 않아 주력을 다시 OEM사업으로 전환해야 할 판』이라고 밝혔다.

국제전자센터, 서부전자월드 등 신흥 대규모 전자상가사업자들도 부도여파로 심한 후유증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상가의 입주신청률은 70% 정도에 이르고 있으나 유통업체들의 부도로 1백% 입주가 건물완공 이후까지 제대로 달성될지 의문이다. 입주업체들의 신청 취소사태까지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아무튼 컴퓨터유통업체들의 부도 파문을 그냥 두고봐서는 안될 것 같다. 컴퓨터유통이 산업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꺾기, 매출 부풀리기 등 구조적인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지만 유통망을 재정비하고 제조업체들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통해 잘못된 관행을 개선해 나간다면 이번 같은 연쇄부도의 파문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신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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