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경] 경쟁력 상실 위기 봉착한 유럽 IT 산업

『유럽기업들은 정보기술(IT)에 대한 열의부족으로 인해 국제경쟁력을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다.』

세계 PC산업을 지배하는 인텔의 앤드루 그로브 최고경영자는 지난 3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 경제포럼」에서 유럽을 향해 우려섞인 경고를 했다.

그는 현재 유럽기업의 경영방식은 10년 전 미국의 기업이 했던 것과 유사하다고 평가하면서 특히 전자우편 등 인터넷 기반 프로그램의 채택에서 유럽이 크게 낙후돼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 IBM, 컴퓨터 어소시에이츠 등 미국의 다른 IT업체들도 그로브 회장의 이같은 대유럽 평가에 동조하고 있다. 미국기업들의 이같은 평가는 일면 유럽 IT산업의 성장속도가 더뎌 자신들의 상품을 많이 팔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적다는 불평을 담고 있지만 다른 한편 유럽이 미국이나 일본과의 기술경쟁에서 갈수록 뒤처지고 있는 현실을 꼬집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유럽연합 각료회의에 제출된 보고서에서도 유럽은 공중통신 장비를 제외하면 미국 및 일본과 비교해 IT분야 경쟁력이 크게 뒤져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례로 유럽은 소프트웨어산업 성장률이 미국의 5분의 1에 지나지 않고 정보기술 관련 하드웨어 및 가전 등의 분야에서도 세계시장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것.

보고서는 이어 유럽의 경제성장과 고용확대를 위해 이 분야 경쟁력 회복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유럽의 IT산업이 미국 등에 비해 뒤처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비관할 정도는 아니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파이낸셜 타임스는 최근 유럽 IT산업이 경쟁국을 따라잡기 시작했다는 긍정적인 신호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 신문은 미국 시장조사회사인 IDC가 지난해 유럽의 PC 판매량이 전년대비 5% 신장에 그치면서 처음으로 아시아, 태평양지역 판매량에 미치지 못했다고 발표하는 등 유럽의 IT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는 듯한 지표가 있긴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오히려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융서비스분야의 대기업들이 컴퓨터 시스템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IT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도 원활한 자금조달, 마케팅 장벽의 극복, 새로운 기업문화의 창출 등으로 경영조건이 크게 개선되고 있는 등 IT산업의 성장여건이 좋아지고 있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

일례로 영국의 부동산 담보부 대출업체인 핼리팩스빌딩 소사이어티는 대출수익성 평가를 통한 대출결정 업무에 신경망 컴퓨터기술을 활용하고 있으며 일부 보험업체는 잠재고객 선별을 위해 첨단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를 활용,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웰스 파르고 등 이미 첨단 IT기법을 활용하고 있는 미국 금융기관들이 유럽지역 은행의 메인프레임 현대화 작업의 경험을 배워가는 사례도 유럽이 IT 후진국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독일의 SAP가 만든 재고관리기능의 소프트웨어가 정유, 화학, 제약분야 세계 주요 업체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나 영국의 벤처기업이었던 전자화폐 개발업체인 몬덱스의 성공담, 휴대전화분야에서의 노키아, 에릭슨 등의 기술수준 등에 비추어 봐도 유럽업계의 실력이 과소평가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미국의 벤처 자금제공업체들도 유럽업계의 기술수준을 높이 평가, 이들의 신기술 상품화를 지원하기 위해 최근 들어 유럽으로 몰려들고 있다. 어드벤트, 바르버그 핑커스, 뉴엔터프라이즈 어소시에이츠, 오크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 등이 대표적인 업체로, 이들은 단지 돈뿐만 아니라 과거 미국에서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들을 일으켰던 기술적 경험까지도 유럽업체에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미국의 장외주식시장인 나스닥을 모방, 벨기에의 에스닥이나 영국의 대체투자시장 등의 등장은 IT분야 유럽 벤처기업들의 꿈과 야망을 키워주는 또다른 힘이 되고 있다.

인터넷의 세계적 확산도 그동안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려웠던 유럽 각국의 IT 업체에 호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자국시장만으로도 엄청난 시장을 갖고 있는 미국업체들과는 유럽업체들은 상대적으로 규모의 경제 실현이 어려워 시장경쟁력이 떨어졌으나 인터넷 사이버시장의 등장으로 이같은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최근 유럽업체들의 콘텐트 사업에 대한 높은 관심도 이같은 상황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업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보수적인 색채가 강했던 유럽기업들이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찾기 위해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방향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평가다.

유럽 투자은행의 한 관계자는 이를 두고 『(IT산업에서) 유럽의 기업가 정신과 기술력의 부흥을 목격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세관 기자>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