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롱(金大瓏)
83년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84∼92년 한국IBM 근무
92년 미국 SSA사 한국지점 초대 지사장
94년∼현재 (주)한국SSA 대표이사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적 문제는 이제 사회 전체를 위기의식으로 몰아넣고 있다. 기업구조 재조정 바람이나 명예퇴직,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는 이같은 사회적 현상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95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ERP)은 최근의 사회, 경제적 환경과 맞물려 적정 규모 이상의 제조업체라면 반드시 고려해야 할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고 있다. 하지만 성공적인 ERP 구축을 위해서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사항이 많다.
기존 생산자원관리시스템(MRP)을 확장한 개념인 ERP는 그 용어의 등장이 오래되지 않은 것처럼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성공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사례를 찾아보기란 매우 어렵다. 국내에서는 MRP의 클로즈드 루프(Closed Loop:기본흐름)조차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 기업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MRP시스템 도입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기준생산정보(BOM)의 정확도다. 하지만 국내 제조업체 중 규모의 대소를 막론하고 BOM의 정확도가 90% 이상 되는 곳이 얼마 되지 않는다. 더구나 고객의 수주에서부터 생산계획, 자재소요량 계획, 물류계획, 그리고 회계시스템간 업무 프로세스의 통합화 및 데이터의 무결성이 구현돼 있는 기업은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MRP시스템은 80년대 후반부터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초창기 도입업체들은 대부분 이 시스템의 구현에 대한 목표의식이 결여된 상태였다. 단지 패키지 소프트웨어를 빨리 개발할 수 있고 개발 툴의 활용성이 높다는 일부 장점에만 주목, 이들 소프트웨어의 자체 개발을 대체할 하나의 대안으로만 인식한 채 도입한 것이다. 따라서 패키지 소프트웨어를 자기 입맛에 맞게 뜯어고치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불행히도 패키지 소프트웨어가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유연성과 넉넉함을 갖추기란 당시로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는 최근 일부 ERP업체들이 객체지향기술(Object Oriented Technology)에 근거한 유연한 시스템(Agile System)을 준비하거나 출시하고 있는 현실에서도 충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사항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 기업들이 ERP라는 매우 상위의 개념을 받아들일 만 한 준비가 돼있는지 의심스럽다.
ERP시스템 구축의 정확한 목표정립과 구축전략을 세우고 기업 스스로 이를 추진해 나갈 의지와 준비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다.
ERP 프로젝트의 목표는 한 마디로 비즈니스 프로세스의 변화다. 비즈니스 프로세스의 변화는 조직, 업무절차와 기준, 기업문화, 그리고 작업자 등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ERP 프로젝트는 단순히 패키지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주요 요소들을 변화시켜 나가는 하나의 변화관리 프로세스인 것이다. ERP 소프트웨어는 이러한 변화를 담을 수 있는 하나의 그릇일 뿐이다.
ERP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기업 스스로 비즈니스 프로세스 변화를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외부업체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는 형태가 아니라 외부의 조언과 지원을 받아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추진력과 결과에 대한 책임의식 등이 요구된다.
기업은 또 관리자나 경영진이 새로운 프로세스와 문화를 받아들일 자세와 준비가 되어있는지 냉철하게 살펴봐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전산화가 오래된 대기업보다는 강력한 지도력과 변화에 대한 의지가 있는 중견기업 및 중소기업에서 이러한 가능성이 더욱 높다는 것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다음은 ERP 프로젝트가 전산실 위주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실사용자 중심의 프로젝트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실사용자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비즈니스 프로세스의 변화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구현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수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우선 최고경영진의 의지와 지원, 그리고 다양한 대상에 대한 지속적이고도 집중적인 교육 및 훈련이 필요하다. 또한 의사결정위원회를 포함한 프로젝트팀을 민주적이고도 효율적인 토론과 참여가 가능하도록 구성해야 하고 경영진의 적절한 의사결정 등이 뒤따라야 한다. 수작업적이면서도 비체계화하거나 또 권위주의적인 기존의 의사결정체계를 유지하려고 할 때 ERP 프로젝트의 추진은 어렵게 된다.
ERP를 성공적으로 구축하려면 구현방법론의 채택이 필수적이다. ERP 프로젝트는 그 특수성 때문에 항상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프로젝트의 진행상황을 투명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앞으로 일정과 해야 할 단위업무들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주요 단계마다 적절한 산출물을 통해 그때까지 진행된 부분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관계 구성원과 최고 경영진으로부터 합의와 승인을 얻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검증된 ERP 추진방법론의 채택은 매우 중요한 성공요건의 하나다.
마지막으로 ERP 소프트웨어의 무수정을 들 수 있다. 이는 특히 패키지 소프트웨어가 자체 개발 혹은 외주개발 시스템과는 달리 정해진 요건에 따라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개발돼 있는 시스템을 구현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부분에서 오해와 실수를 범할 수 있다. 많은 기업들이 기존 MRP시스템 구현에서 저질렀던 오류처럼 패키지 소프트웨어를 구현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기존의 프로세스를 고집하며 특히 기업 전반적인 프로세스의 변화에 대한 의지가 미약하다는 점이다. 물론 외국에서 개발된 소프트웨어가 한국기업의 여건에 완벽하게 맞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 변화에 대한 의지와 주도력, 그리고 과연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일 만한 준비돼 있는가 라는 매우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이것이 기업 고유의 프로세스를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과 상충될 때 현실적인 시급함과 의지의 부족에 가려 새로운 변화는 제대로 주장되고 관철되기 어려운 매우 미묘한 상황에 처해진다. 재차 강조하지만 ERP 프로젝트의 목표는 비즈니스 프로세스의 변화에 있다.
ERP 프로젝트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기업은 구축전략을 세워야 하며 가장 먼저 성공에 따른 구체적인 목표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예를 들면 몇 퍼센트의 재고감소, 특정 프로세스의 개선, 납기의 단축, 구매비용 절감 등의 기대효과나 혹은 프로젝트의 완료시기 및 예산집행 등과 같은 구체적이고도 측정 가능한 성공 판단기준을 미리 설정해 프로젝트팀은 물론 최고경영진의 승인을 받아놓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구축계획도 세워야 한다. 충분한 토의와 조사를 통해 가능한 인원계획과 예산, 프로젝트의 범위와 기간을 산정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단계별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ERP는 기업관리 프로세스의 근간이 되는 시스템(Backbone System)을 빠른 시간 내에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단계별로 구축해도 무리가 없는 추가적인 시스템은 기업의 역량을 넘어 무리하게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때를 놓치고 화를 자초하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팀의 입장에서는 최고경영진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내야 한다. 최고경영진의 지원과 의사결정은 ERP 프로젝트의 핵심요소다. 이는 ERP 프로젝트의 목표가 비즈니스 프로세스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적절한 인력배정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풀타임 및 파트타임 인력 모두가 해당된다. 따라서 많은 경우 인사발령과 같은 강력한 처방을 한다. 전사적 변화관리 프로젝트가 전산실 위주나 혹은 일부의 소극적인 참여로 성공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권하고 싶은 방법은 프로젝트팀이라는 이름 하에 초기에 너무 많은 인력을 배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인력의 낭비와 업무분담의 중복 및 의사결정과정의 비효율성을 초래할 수 있다. 프로젝트의 시작과 함께 ERP 추진방법론에 입각해 치밀하고도 강도높게 인력을 배치해 나가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이같은 구축방법론과 전략에 의해 진행된 성공적인 MRP 및 ERP 프로젝트는 많은 부분에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실제 美 생산재고관리협회(APICS)의 조사에 따르면 성공적인 ERP 프로젝트의 전형적인 기대효과는 주로 재고감소가 10∼40%, 이윤 29% 증대, 구매비용 5∼10% 절감, 주문처리기간 95% 이상 향상, 생산 리드타임 50% 이상 향상, 인건비 25∼40% 감소 등이다. 국내의 경험에 의하면 재고 감소효과가 가장 두드러지며 다음으로 주문처리기간의 감소 및 이윤증대 등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사회간접자본의 미약, 과도한 기업 금융비용, 재벌경제의 낮은 생산력과 저효율성, 그리고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등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많은 직간접적인 요소들이 산재해 있다.
이제 기업들은 제품의 품질향상과 아울러 관리체계의 세계화를 통해 기업 내 프로세스의 혁신을 통해 불필요한 낭비요소를 과감히 제거해야 한다. 우리경제의 거품을 제거해야 선진국 대열에 자신있게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명예퇴직제도의 무리한 강행보다는 ERP를 통한 비즈니스 프로세스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보다 합리적인 체질개선과 함께 국제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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