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101)

『남조선 괴뢰들은 일부 보도계를 매수해 우리 최고지도부를 헐뜯는 전대미문의 대죄를 저질렀다. 우리의 최고지도부에 대한 비방중상은 파멸의 벼랑 끝에 몰린 자들이 꾸며댄 허황하기 짝이 없는 치졸한 모략이다. 우리 최고지도부를 악랄하게 헐뜯는 놀음을 벌여 놓은 것은 우리에 대한 전면도전과 대결을 선언한 것과 같다.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필요한 시기에 정정당당한 수단과 방법을 다해 보복조치를 취할 것이다. 우리의 보복은 빈말이 아니며 무자비하고도 철저한 것이다.』

북한의 강경하고 위협적이었던 발언들이 김지호 실장의 뇌리를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최근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체제붕괴를 막기 위해 밖으로 시선을 돌리기 위해 또 다른 만행을 저지를 수도 있다.

현세의 하느님이라고까지 불리는 김정일에게 자기 여인에 관련된 일이 남한에서 대대적으로 거론된다는 것은 이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겠는가. 데이트를 하는 평양의 젊은 남녀들을 괴롭힌다는 깡패들에 대한 보고를 받고 그들은 보는 족족 사살하라고 지시했다고 하는 김정일. 김일성과는 달리 즉흥적이고 불안전한 성격의 김정일이 어떤 일을 벌일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역사는 개인의 감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개인의 욕구와 개성, 개인의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김지호 실장은 김정일 개인의 감정이 무릇 역사적 비극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김지호 실장은 만일 전쟁이 벌어진다면 가장 먼저 파괴의 대상이 되는 것이 바로 통신시설일 것이라는 생각을 늘 해왔다. 그것은 옛날의 전쟁의 결과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통신을 장악하는 쪽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기 때문이었다.

전쟁? 김지호 실장은 이미 전쟁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전쟁의 승리를 위해 공격과 방어를 계속해온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전자통신전쟁이었다. 이제까지 사람들은 전쟁이란 말을 들을 때 총을 메고 포화 속을 누비는 카키색 군복의 병정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제 전쟁의 양상은 달라졌다. 포화와 불꽃은 영화 속에서나 재현되는 구시대의 유물이 될 것이다. 앞으로의 전쟁은 누가 강력한 전자통신에 관련된 첨단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느냐 하는 하는 것이며, 그것이 곧 전쟁의 승패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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