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기범위 조정은 대국적으로

수출 부진과 불황이 겹치자 국내 전자, 정보통신업체들은 연초부터 경기회복을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지만 그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른바 고비용 생산구조와 기술수준 열세로 국제경쟁력이 떨어진데다 엔화 절하 등으로 82년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는 전자산업의 수출액 감소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런 흐름은 올들어서도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어두운 전망이 대세를 이뤄 관련업체들은 활로 모색에 주력하고 있다.

전자, 정보통신산업은 이제까지 우리나라 총 수출의 35% 정도를 담당해 왔고 앞으로도 수출증대를 선도해야 할 국가 전략산업인데도 불구하고 경기가 내리막이어서 우려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더욱이 21세기 정보사회에서 전자, 정보통신산업은 기술혁신과 품질개선 등을 통해 그 역할을 증대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최근 중견 전자업체들이 중소기업의 범위를 재조정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의 건의서를 관련부처에 제출했다고 한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를 통해 제출한 이 건의서에서 중견 전자업체들은 과거 노동집약적인 형태의 근무여건속에서 제정한 중소기업 범위를 조정해 첨단기술 개발과 공장자동화 및 정보화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중견 전자업체들은 현재 공정 고도화를 위해 설비투자를 할 경우 중소기업 범위에서 벗어나 사실상 대기업군에 속하게 돼 소규모 자본력으로 재벌기업과 경쟁할 수 없기 때문에 설비투자에 소극적이고 이로 인해 전자, 정보통신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현행 중소기업기본법 시행령은 지난 95년 1월 개정돼 상시 근로자와 자산의 규모로 중소기업 범위를 정하고 있지만 중견업체들은 현행 5백∼1천명 수준인 상시 근로자에 관한 중소기업의 범위를 인쇄회로기판 제조업의 경우 1천5백명으로, 컴퓨터와 주변기기 제조업은 1천2백명선으로 상향 조정하고 자산규모도 7백억∼8백억원 규모에서 1천5백억원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러나 중견업체들의 요구대로 중소기업 범위를 확대할 경우 상대적으로 중소기업들의 경영난이 가중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영이 어려운 중소업체들이 상대적으로 자금력과 기술력이 앞선 중견업체들과의 경쟁에서 계속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소기업 범위확대는 관련부처가 중견업체와 중소업체들의 진솔한 의견 수렴과정을 거쳐 결정해주기를 바란다. 이는 전자, 정보통신산업이 기술혁신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핵심산업이며 모든 산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관계로 만약 이 분야의 경쟁력이 떨어지면 우리는 선진국 진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국내업체들이 기술개발이나 설비투자에 소극적이라면 우선적으로 이를 해소, 적극성적으로 투자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술개발이나 설비투자 없이 품질개선이나 신제품 생산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고 중소기업 범위를 제한해 중견기업들의 설비투자가 위축되는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의 입장이 다소 대립되므로 우선 대국적인 관점에서 우리의 전자, 정보통신산업 발전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유리하며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인가를 검토해 방침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어느 특정그룹의 이해가 아닌 대국적인 관점에서 국가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방안을 모색해야 이 문제로 인한 소모적인 마찰이나 오해를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국가간 무역경계는 무너지고 오직 제품의 우수한 품질과 성능만이 세계 시장을 차지하는 무한 경쟁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점에 유념해 중소기업의 범위를 수출확대와 불황극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개선하는 데 관련부처와 해당업계는 지혜를 모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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