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45)

86년 교육용 컴퓨터회의에서 잡스는 대학 컴퓨터 관계자들에게 "우리는 여러분들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3천달러라는 가격에 그 모든 것을 바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라고 말했었다. 잡스는 넥스트가 3천달러라는 목표를 그대로 지킬 수는 없지만 그 가격에 근접하게 맞추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잡스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주위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이런 말을 했을뿐 입방체형 컴퓨터 개발활동은 계속 진행되었다.

넥스트가 설립되고 2년이 지난 87년 가을이 되어도 넥스트는 잠재 고객들에게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는 컴퓨터 시제품조차도 만들지 못하였고 대학측은 새로운 도전자에게 기회를 주려했던 그들의 뜻이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지나 않을까 우려하기 시작했다.

87년 교육용 컴퓨터 회의에서 넥스트는 입방체형 컴퓨터에 관련된 상세한 내용을 감추고 대신 넥스트의 로고가 만들어진 경위를 설명한 18페이지의 소책자를 만들어 배포했다. 그러나 비영리단체로서 절약하는 습관에 길들여져 있고 잡스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을 아껴쓰는 학계에서 10만달러짜리 로고에 대한 내용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현명한 처사가 못되었다. 회의 참석자들은 넥스트 소개책자를 화젯거리로 삼았다.

그날 궁지에 몰린 넥스트를 로스 페로가 유창한 언변으로 옹호하지 않았더라면 넥스트는 일말의 희망마저도 이 교육용 컴퓨터 회의에서 모두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잡스는 그의 특유의 스타일대로 그 회의에 초대된 대학 고객들에게 수준 높은 오락을 제공하는데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미술박물관은 사치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해 주었고 현악 사중주는 계속 음악을 들려 주었으며 로스 페로는 연설을 통해 사람들을 감동시켜 낙관적인 분위기를 창출했다. 그의 연설을들은 스탠퍼드 대학의 마이클 카터는 "그의 연설은 내가 들은 즉흥 연설 중에서 가장 훌륭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페로는 넥스트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왜 컴퓨터가 아직 완성되지 않고 있느냐는 질문이 쇄도한다고 회의 참석자들에게 말했다. 월가분석가들은 "넥스트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한다고 했다. 페로가 만일 책임자였다면, 그는 넥스트 사람들과는 부류가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벌써 제품을 선적했지만 완벽성을 추구하는 넥스트는 제품이 완벽해질 때까지 아무것도 선적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고무적이었고 페로는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넥스트를 좋아했다.

페로는 전혀 걱정하고 있는 것같지도 않았다. 그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걱정하시죠? 잡스와 내게서 돈이 떨어질까 걱정하시는 겁니까"라고 말했다. 그말을 들은 청중들은 웃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페로의 이런 자신있는 태도는 대학측이 점차 인내심에 한계를 보일 즈음해서 넥스트가절실히 필요로 했던 시간을 벌어주었기 때문에 넥스트도 내심 안도의 숨을쉴 수 있었다.

그러나 컴퓨터의 납기일이 거듭 지연되는 가운데 88년 넥스트의 판촉반이 대학을 방문하여 활동을 벌이면서 대학이 참아 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 넥스트가 파견한 사람들은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대학측은 넥스트의 제품 개발 진척도를 듣기를 갈망했기 때문에 넥스트가 보낸 사람들을 직접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만 해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잡스는 제품이 소개되기 직전까지 소비자들의 기대감을 최고로 고조시키고자 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은 채 겉도는 예기만 들려 주었다. "우리는 여러분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드렸고 여러분들의 의견을 들었습니다"라는 식으로 얘기가 진행되었다. 일반적인 내용만 오고갈 뿐, 컴퓨터의 모양이나 가격 책정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거론되지 않았다. 대학을 방문하여 마케팅 활동을 하던 넥스트 대표단은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계속 알맹이 없는 내용만 거듭하는 넥스트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는 대학 관계자들을 진정시켜야 했다.

대학 관계자로 구성된 자문 위원회만 넥스트의 내밀한 사정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잡스는 대학 계통에 관련된 사람중에서 가장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 위원회가 제품이 처음으로 소개되는 날 좋은 이미지를 줄수 있도록 미리 수주 활동을 하여 매킨토시가 처음으로 소개되는 날 수주기록을 밝힘으로써 매킨토시의 신용도를 확고히 했던 것과 같은 효과를 얻기를 기대하고있었다. 그러나 잡스는 터널 비전 때문에 매킨토시가 거두었던 효과를 넥스트가 똑같이 거둘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84년과 달리 88년에는 대학 및 학생들 대부분이 퍼스널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넥스트는 일찍이 애플이 경험하지 못한 문제, 즉 고객들로 하여금 현재 가지고 있는 컴퓨터를 교체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문제를 하나 더안게 되었다. 잡스가 앞서 만들어낸 작품은 지나치게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나중에 태어나는 제품이 설자리를 쉽게 찾지 못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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