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설계...최고 경영자에게 듣는다] 한국통신 이계철 사장

한국통신은 우리나라 통신산업의 중추다. 한국통신을 뺀 국내 통신산업을 생각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가입자망을 보유한 유일한 기간통신 사업자이면서 동시에 엄청난 규모의 통신장비 수요를 발생시키는 거대한 장비구매업체이기도 하다.

한층 거세게 밀어닥치고 있는 통신시장 개방파고에 맞서 말 그대로 무한경쟁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통신서비스시장에서 한국통신이 해야 할 일은 태산처럼 쌓여 있다. 안으로는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는 신규 사업자들과의 경쟁이 「발등의 불」이고 밖으로는 내로라 하는 선진기업들과 맞서야 하는 엄청난 책무를 한 몸에 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통신이 정통 정보통신 전문 관료출신인 이계철 전 정보통신부 차관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영입, 경쟁시대에 걸맞은 종합 기간통신 사업자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 마련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부임한 이후, 업무파악에 여념이 없는 이계철 사장을 만나 앞으로의 경영방향과 국내외 통신시장에 관한 의견을 들어봤다.

-한국통신 사장취임을 축하드립니다. 부임한 지 일주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만 30여년간 정보통신 관료로 재직했던 기간까지 감안한다면 한국통신에 대한 나름대로의 경영철학은 가지고 계실 것 같은데요.

아직 업무파악이 덜 된 상태에서 구체적인 경영계획을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한국통신이 정부투자기관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 충실하게 이끌어갈 생각은 갖고 있습니다. 정부투자기관은 무엇보다 국민의 편익과 이익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눈 앞의 이익, 또는 경쟁사업자와의 시장다툼에 힘을 소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시외전화부문에 경쟁이 도입된 것을 시작으로 올해와 내년에는 30여개에 가까운 경쟁사업자들이 새롭게 시장에 진입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공익성만을 강조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텐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한국통신이 존재해 온 이유와 지난해 정부가 수십개의 신규통신사업자를 새로 선정한 이유는 같습니다. 바로 국민에게 품질좋은 정보통신서비스를 보다 저렴하게 보급하기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국내 통신사업 및 통신산업의 국제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것입니다. 경쟁격화로 인한 사소한 마찰은 생길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흐름에서는 큰 문제로 비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국통신에게 가장 시급한 현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통신은 그동안 음성중심의 가입전화 확충작업을 통해 통신시설의 현대화라는 막중한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해 왔습니다.이제는 이 음성 중심의 통신망을 멀티미디어시대, 초고속 정보통신시대에 어울리도록 네트워크 자체를 고도화하는 일에 힘을 집중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특히 범국가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초고속 정보통신기반 구축사업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네트워크 고도화라는 것은 장기적으로 적지않은 투자를 필요로 하는 사업입니다. 반면 단기간 내에 투자수익을 거두기는 어렵습니다. 네트워크 고도화에 대한 집중투자계획이 그동안 수익성있는 사업을 중심으로 다각화를 추진해 온 한국통신의 경영방향이 바뀌는 것으로 이해해도 됩니까.

한국통신은 기본적으로 가입전화망을 비롯한 다양한 네트워크로 수익을 얻는 통신망 사업자입니다. 전화망은 그런 의미에서 한국통신이 가진 가장 중요한 밑천인 셈입니다. 때문에 네트워크의 고도화라는 것은 상품의 고품질화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투자는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지 몰라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는 반드시 추진돼야 하는 과제라고 봅니다. 또한 사업다각화 역시 망의 고도화라는 전제가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죠. 결국 망의 고도화와 사업다각화는 서로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망의 고도화를 통한 사업다각화」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업의 우선순위가 바뀐다는 점에서 전체적인 경영전략의 변화가 불가피하지 않을까요.

이제는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통신서비스시장의 흐름을 염두에 둔 경영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통신이 가입자망을 가지고 있는 기간통신사업자이기는 하지만 이제 더이상 가입전화를 중심으로 한 마케팅만으로 살아남기는 힘듭니다. 물론 가입전화에 대한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향상시키는 노력은 분명 필요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고객의 의미를 보다 적극적으로 확장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에 하나 둘씩 진입하는 신규통신사업자들을 단순한 경쟁 상대가 아닌 고객으로 대하도록 분위기를 바꿔나갈 계획입니다. 다른 사업자들이 수월하게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국통신이 가진 회선이나 설비를 제공하는 데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그들의 사업이 잘되면 결국 한국통신의 수익이 늘어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경쟁체제에서는 어차피 시장점유율 다툼이 불가피하지 않겠습니까.

부분적으로 점유율경쟁은 생기겠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큰 의미는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한국통신은 국내 정보통신분야의 중추입니다. 동시에 눈 앞의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장기적으로 국민들의 편익을 우선시 해야 하는 공익기업입니다. 한국통신이나 여타 통신사업자들 모두 국내 통신산업의 미래에 책임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불필요한 소모전은 줄어들 것입니다.

한국통신에 필요한 것은 마케팅입니다. 저 스스로가 먼저 통신사업자들을 찾아다니면서 한국통신의 시설을 이용해달라고 부탁하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통신은 단순한 서비스업체라기 보다는 「사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자(Carrier’s Carrier)」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한국통신의 전반적인 체질개선이 선행돼야 하는 것 아닙니까. 체질개선을 위해 조직을 손질할 계획은 있는지요.

조직의 문제라기보다는 운용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한국통신 조직은 개편한 지 1년도 안된 것입니다. 단지 몇 개월 동안의 운용만으로 조직개편을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앞으로 반드시 필요한 소규모의 조직개편은 언제나 단행하겠지만 조직 전체에 손을 대는 대규모 개편은 현재로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향후 한국통신의 연구개발정책은 어떻게 끌어가실 생각인지요.

정보통신부문의 연구개발 역시 정부와 통신사업자 및 통신기기 제조업체 등과의 철저한 협조 아래 추진한다는 기본적인 생각만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통신은 매년 총 매출의 8% 정도를 연구개발에 투자해왔고 앞으로 연구개발비중을 점진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다만 연구개발체계와 관련해서는 기초, 기반기술은 정부투자연구소나 대학에 맡기고 통신사업자들은 상용화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력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 발신전용휴대전화(CT2)사업을 시작으로 연말이나 내년 초에 개인휴대통신서비스(PCS) 등 그동안 시장진입에 제약을 받아왔던 무선통신분야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신규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어떻습니까.

CT2나 PCS 등 신규 사업은 한국통신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선분야에서 무선통신분야로 서비스영역을 확장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유무선을 통합하는 종합통신사업자로 발돋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신규 사업 역시 국민에게 값싸고 품질높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기본적인 목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한국통신이 가진 또하나의 현안이 바로 자회사를 어떻게 운용할 것이냐는 점입니다. 일부 자회사의 경우에는 완전민영화가 거론되고 있고 현재 한국통신의 일부 업무를 자회사화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자회사 운용방침은 무엇입니까.

이 문제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할 사안입니다. 한국통신의 이익에 부합되고 국민에게 편익을 제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처리한다는 원칙만을 밝히고 싶습니다. 다만 자회사가 가지고 있는 우수한 인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모기업인 한국통신과 자회사간의 인력교류를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지난해부터 한국통신은 해외사업에 무게를 실어오고 있습니다. 일부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합니다. 향후 해외사업의 전개방향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경쟁력 강화라는 것은 국내에서의 경쟁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정경쟁을 통해 안에서 쌓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해외에서의 경쟁력을 키우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사업자들이 국내에 진출하는 것만 신경쓰지 말고 외국으로 진출하려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한국통신은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조그만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세계 통신시장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려고 합니다. 그만큼 섣부른 해외진출 시도는 위험하다는 의미입니다. 국내 통신업체들이 세계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업체간 상호 협조가 필요합니다.

한국통신은 향후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통신장비를 생산하는 대기업, 중소기업, 공사업체는 물론이고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서비스업체와의 협력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최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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