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경] 96 러시아 가전시장 유통실태

【모스크바=김종헌통신원】 96년도 러시아의 가정용 전자제품시장은 도매시장과 소매시장이 명백하게 구별되고, 수입가전제품의 가격이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또 텔레비전시장이 어느때보다 활기를 보였으며, 점차 화면크기가 큰 대형 텔레비전 쪽으로 수요가 옮겨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모스크바의 경제전문지 「크메르산트 데일리」지가 가전 유통업체들을 대상으로 최근 조사한 「96년도 가전시장의 유통실태」에 따른 것이다. 이 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러시아의 대형 가전제품 유통업체들은 시중 상업은행의 잇따른 도산으로 자금난을 심하게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전자제품을 취급하던 유통업체들이 난립하던 혼란시대가 어느 정도 가고 도매업 위주의 대형 유통업체와 소매 위주의 소형 유통업체로 시장이 정리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미르」 「아피코」를 비롯한 모스크바의 대형 가전제품 판매법인들은 대략 하나의 상표로 한 달에 2백만∼3백만달러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함께 96년도에는 수입 가전제품의 가격이 전년도보다 크게 내려 이같은 가격하락이 수입 제품에 대한 수요를 부채질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피코사의 드미트리 글레크 부사장은 『보통때 같으면 가전제품의 수요가 전혀 없었을 여름에 오히려 판매 면에서 호황을 누렸다』고 전하고 『수입 전자제품의 가격이 러시아 소비자들이 구매의욕을 느낄 만큼 낮아져 호경기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다른 가전 도매업체인 스틸란사의 한 관계자는 『96년의 경우 봄에 때아닌 불경기를 겪었으나 여름철에는 오히려 판매가 늘어 이젠 일정한 틀의 판매유형을 얘기하지 못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전제품 가운데 96년 러시아에서 인기 있었던 품목은 단연 텔레비전이다. 오디오와 비디오시장은 3년 전이 전성기였고, 냉장고를 비롯한 세탁기와 전자 오븐레인지 등은 이전보다 소비자들이 많이 찾기는 해도 텔레비전에는 전혀 미치지 못한다고 유통업자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스틸란사의 영업담당 이사인 타치아나 프렌켈씨는 『특히 작은 치수를 찾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해 일년 내내 애를 먹었다』면서 『크기를 가리지 않고 텔레비전은 잘 팔리지만 14인치를 위시한 작은 치수는 세계적으로 생산량이 갈수록 줄어들어 러시아 소비자들의 요구를 앞으로는 충족시키지 못할 전망』이라고 아쉬워했다.

96년도 러시아의 텔레비전시장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모델은 25인치에서 28인치에 이르는 상대적으로 큰 대형 텔레비전으로 조사됐다. 20∼21인치가 가장 잘 팔리던 시절과 비교하면 소비자들의 입맛이 대형 텔레비전 쪽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20인치 안팎의 텔리버전을 선호하던 소비층의 일부가 그보다 약간 큰 25인치 안팎을 최근 들어 원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 모스크바의 가전 유통시장에서 가장 신용있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외국 텔레비전 상표는 네덜란드의 필립스로 나타났으며 그 다음이 삼성, 대우 등 한국상표인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의 소니와 파나소닉은 최고급 기술과 최고의 신용을 가진 것으로 인식돼 별다른 판촉활동이나 광고 없이도 이미 고소득층 사이에 가장 믿을 만한 상표로 자리를 잡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판매법인마다 고유의 히트상품이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예컨대 아피코사의 경우 한국의 대우 제품이 대표적으로 잘 팔렸고, 「파르티」사의 경우에는 역시 한국의 「골드스타」가 인기상품이었다는 것이다. 스틸란사는 TDK, 사브이사는 샤프 제품이 가장 히트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값이 싸면서 기술 수준은 고급 제품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지난해 모스크바 시민의 인기를 끌었던 일본제 후나이 텔레비전은 올해 모스크바를 비롯한 큰 도시에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했으나 지방의 군소 도시에서는 여전히 상당히 인기리에 판매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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