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TV산업이 급속도의 발전추세를 보이는 것은 그동안 방송을 독점해오던 정부가 90년대 초반 독점을 사실상 포기한 데서 비롯되고 있다. 이제 러시아에서는 자본만 있으면 누구나 방송국을 세우고 공중파 사업을 할 수가 있게 되었다.
러시아에서 방송산업을 시작하려면 우선 정보통신부의 허가를 받은 다음 중계기를 구입하면 된다. 이 때문에 중계기 업자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새로 방송산업에 뛰어든 업자들은 주로 지역 단위의 시청자들을 겨냥한 케이블TV 업자들인데, 대부분이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은 대개 20~25까지 효력을 미치는 1급 중계기를 사는 편이며, 이 정도의 용량이면 작은 방송국을 세우고도 남는다는 것이 업자들의 말이다. 중계기 가격은 대략 9만달러에서 12만달러. 중계기로부터 영상신호를 텔레비전 송신탑의 안테나까지 이어주는 연결 안테나 시스템은 가격선이 5만달러 안팎에서 다소 유동적이다.
대도시의 일부 지역을 상대로 케이블TV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한 신규 사업자는 24군데로, 이 숫자는 앞으로 수년 안에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방송 규제가 풀리면서 신규 케이블 방송이 성황을 누릴 조짐을 보이자 방송 관련기기를 취급하는 굵직한 외국 기업들이 이미 모스크바에 대표부를 차려놓고 새로운 시장에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프랑스의 톰슨을 비롯하여 일본의 NEC와 도시바, 미국의 해리스, 네덜란드의 필립스, 독일의 지멘스 등이 이들이다.
방송에 관련된 장비라면 새해 들어서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큰 수요가 있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예상이다.
공중파를 발사하던 기존의 방송국들은 시대 변화에 맞추어 신규장비들을 구입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고, 새로 방송 사업에 진출한 업자들은 정보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는 러시아에서 구식 장비로는 신규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TV장비 시장은 서구 시장과는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다소 다른 전략으로 접근해야 할 것으로 유통업계는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의 비디오 장비 시장은 이들 세 시장 가운데 두번째와 세번째, 즉 전문가 시장과 방송용 시장 사이에 경계가 없다는 점이다.
이들 전문가용 장비들이 좀더 첨단의 장비를 필요로 하는 러시아의 방송가에서 널리 사용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대답은 간단하다. 이들 장비의 값이 비싸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러시아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장비라도 비싸면 팔리지 않는다.
방송 비디오 시장에서 전문가 시장과 방송용 전문 시장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이같은 시장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이른바 「시장에서의 실패」가 없을 것이라고 유통 관계자들은 귀띔한다.
한편 러시아의 케이블TV 산업을 주도하는 조직체는 모스크바 텔레커뮤니케이션사인 약칭 「콤코르」사이다. 이 회사는 사기업 형태를 띄고 있지만 사실은 공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92년 6월에 창설된 이 공기업은 현 모스크바 시장인 루시코프가 주도하여 모스크바 시청안의 시재산관리국, 모스크바전화국, 러시아 국영의 라디오 및 텔레비전 센터, 국영 중소기업지원기금 등이 대주주가 되어 만들어졌다. 말하자면 관주도로 케이블 산업을 본격화해 보겠다는 계산이다. 이 콤코르가 앞으로 벌여나갈 사업은 수년 안에 24개의 케이블 채널이 가동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필두로 행정기관과 상업기관들 사이에 정보망이 구축되도록 기본설비를 갖추겠다는 것 그리고 전화 서비스의 내용을 지금보다 훨씬 발전시키겠다는 것 등 세가지로 요약되고 있다. 말하자면 광선로를 매설하는 등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려는데 필요한 정보고속도로를 빠른 속도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각오인데, 이미 네덜란드 필립스사의 일부 장비를 도입하여 설치중이고 필요한 운용인력도 교육에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정보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기반시설을 설치할 콤코르사의 한 관계자는 모스크바 시내의 주요 구역별로 지역국을 설치하고 이들 지역국에서 각 가정으로 케이블선을 연결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현재 3천만달러를 들여서 정보 전송을 위한 기본망과 간선 정보망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그동안 필립스가 동유럽에서 수주한 최대의 공사로 평가되고 있다. 케이블은 3백가 매설되었으며, 앞으로 2단계로 2천∼3천가 더 부설될 예정이다. 전체 공사를 책임지고 있는 콤코르사의 유리 프리파치킨 대표이사는 『첫단계 공사는 우리 힘으로 했지만 남은 공사는 15억에서 40억달러의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에 투자가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밝히면서 『그러나 이 공사가 21세기 러시아의 장래를 결정지을 국가적 공사이기 때문에 가능한한 외국의 자본가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국내에서 투자가를 찾아볼 계획』이라고 전했다. 프리파치킨씨는 이어 『외국의 굵직한 12개 투자 전문회사들이 러시아 정보산업의 미래를 내다보고 나름대로 합작 제안을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금의 TV방송이 보여주는 화면의 화질을 높이고, 방송과정에 쌍방향으로 시청자들이 참여하게 해달라는 사회의 요구가 방송장비의 현대화를 부추겨 방송산업의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새로운 케이블TV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신규 사업자들은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게 된다고 해도 일반 가입자들로부터 많은 징수료르 거둬들여 큰 돈을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는 않다. 이용료가 비싸면 이용자가 없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한편, 러시아의 방송산업이 다채널 위주의 정보산업으로 재편된다고 해도 그같은 새흐름은 당분간 중앙의 대도시에 국한될 분 지방으로 확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기술적으로는 지방으로 방송영역을 확대하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기는 하다.
다만 러시아는 워낙 지역이 넓기 때문에 위성 채널을 임차하는데 연간 약 10만달러가 소요되고, 위성으로부터 프로그램을 녹화하는 비용이나 다른 방송국에선 제작된 프로그램들을 사들이는데 돈이 많이 들어서 재정 형편이 좋지않은 각 지방의 사정에서 볼때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따라서 TV 민영화 붐과 작은 방송국들의 출현, 이에 따른 방송산업의 호황과 새로운 방송기자재의 범람 같은 현상 등은 당분간은 모스크바에서 한정될 것으로 일부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그런데 첨단 방송 기자재가 불티나게 팔리는 호경기를 맞이하여 가장 재미를 봤거나 앞으로 볼기업은 다름아닌 일본 회사들일 것으로 이곳 유통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특히 애널로그 준방식의 비디오 녹화기술을 채택하여 그동안 세계시장에서는 기대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한 소니가 러시아에서는 방송녹화기 시장에서 거의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기존의 텔리비전 방송국이 거의 소니의 애널로그 방식을 선호하여 소니 제푸 잔뜩 들여놓았는데, 이들 구 이용자들과 새로 생기고 있는 신 이용자들이 이번에는 디지틀 방식의 소니의 디지틀 베타캠을 앞다투어 구입하고 있다. 이전에 사들였던 애널로그 방식과 호환이 된다는 점과 전자분야에서는 무엇보다 소니의 기술력을 세계 최고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또 스튜디오들이 이전에 완성했던 비디오 테이프들을 새 기기에서 활용하려는 심리도 이같은 소니 붐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같은 이유로 러시아의 방송 구조 재편은 전자분야에서의 소니의 영향력이 자연스럽게 확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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