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각 행정기관을 하나의 망으로 묶는다는 행정전산망 개념이 나오기전까지 정부의 행정전산화는 각 부처 고유업무의 전산화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정부부처중 컴퓨터를 맨처음 도입한 곳이 경제기획원이듯이 행정업무전산화를 가장 먼저 시도한 부처도 경제기획원이었다.
70년 4월 경제기획원예산실은 박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KIST 전산실과 연결된 전용회선을 통해예산업무 전산화 시범운용을 실시했는데, 그것이 컴퓨터통신을 행정업무에 적용한 첫 케이스였다. 예산업무의 전산화에 이어 추진된 것은 체신부의 전화요금업무 전산화였다.
71년 6월 서울지역 가입자를 대상으로 실시된 전화요금업무 전산화는 대량의 행정업무를 전산처리했다는 점에서 행정업무 전산화의 효시라 할 수도 있다. 그 무렵 전매청.관상대.관세청.서울시 등 몇몇 행정기관에서도 자체 업무의 전산화를 추진했다.
이처럼 각 기관에서 산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행정업무 전산화를 하나의 국가적인 프로젝트로 묶으려 했던 것은 75년의 일이었다. 그해 3월 정부는 컴퓨터 시스템을 행정업무에 도입하기로 하고, 행정업무 전산화 추진 총괄기구로서 총무처에 행정전산화추진위원회를 두어 사업 추진에 필요한 근거 규정의 제정과 기본계획의 수립을 담당케 했다.
그 위원회는 전산화 대상업무에관한 실태조사를 실시한 다음 78년 2월에 제1차 행정전산화기본계획을 수립했다. 그리고 각 행정기관별로 기본계획의 범주안에서 업무전산화를 추진하도록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행정전산화는 각 기관이 필요에 따라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따라서 5공의 발족과 함께 청와대 경제비서실에서 일하게 된 오명비서관이 행정전산화와 관련해 관심을 갖게 된 문제는 각 부처 행정업무 전산화의 촉진과 컴퓨터 운용의 표준화였다.
각 부처에서 산발적으로 운용하고있는 컴퓨터 시스템은 기종이 다르고 포맷(format)이 달라 상호 소통이 안되고 있었는데, 이들 컴퓨터 시스템을 연결시켜 각 부처가 보유하고 있는 유용한 자료를 이용케 하자면 표준화가 시급한 과제였던 것이다. 국방부에의 파견근무 시절 국방부 전산의 표준화 방안을 검토한 일이 있던 그는 표준화를통해 각 부처에서 운용하고 있는 컴퓨간의 호환성을 확보하는 일에 신경을 썼다.
체신부차관으로 영전한 오명 비서관 후임으로 홍성원 비서관이 등장하면서 일이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육사 교관 시절인 80년 4월 뜻밖에도 당시의 최고 실력자인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보좌관으로 발탁된 후 전두환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해 10월 청와대 경제비서실로 자리를 옮겼다가 이듬해 5월 36세라는 연부역강한 나이에 경제비서관이 된 홍성원은 그 당시 국내에서는 몇몇안되는 컴퓨터 전문가였다.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의 유타대학과콜로라도 대학에서의 전공이 자동제어와 기계설계였기 때문에 쉽게 컴퓨터와친해질 수 있었고, 덕분에 귀국후에는 KAIST와 서울대에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컴퓨터설계와 컴퓨터그래픽 과목을 강의할 만큼 컴퓨터 전문가가 되어었었다. 풍부한 아이디어의 소유자로서 실무형이라기보다 이상주의자에 가까웠던 그는 경제비서관이 된후 정부부터 전산화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데이콤의 설립작업을 돕는 한편 행정기관은 물론 은행이나 학교 등전국의 공공기관을 각각의 전산망으로 묶으려는 국가기간전산망계획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애초에는 각 행정기관 업무의 전산화를 중심으로 구상했던 행정전산망계획은 그 범위를 금융업무나 교육.국방.안보 등으로 넓히다보니 국가기간전산망이라는 거창한 계획으로 확대되었던 것이다.
국가기간전산망계획과 관련하여 그는 "산업발전"과 "사회 발전"이라는 두가지 축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산업 발전"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와 같이 부존자원이 부족하고 수출의존적인 산업구조하에서는 컴퓨터.반도체.전자교환기가 중심이 되는 정보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산업정책이며, 이러한 정보산업을 육성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수요를 창출해주는 것인데, 그 구체적인 방안의 하나로 구상된 것이 국가기간전산망사업이었다.
"사회 발전"측면에서는 정보화사회로서의 진입을 중요한 정책 목표로삼았다. 컴퓨터의 보급과 이용을 확산하고 거기에 첨단 통신기술을 접목시켜고도의 정보화사회를 이룩하자는 것이었다. 그러한 과정에서는 행정기관이나은행등 공공기관 업무의 전산화가 필수적으로 선행될 것인데, 거기에 소요되는 엄청난 비용이 정보산업 육성의 밑거름이 된다는 부수적인 효과도 놓치지 않았다.
국가기간전산망이라는 거창한 그림이 거칠게나마 그려지자 홍비서관은 최종결정권자인 전대통령을 설득하는 작업에 나섰다. 물론 그에 앞서 직속 상관인 김재익 경제수석과 함병춘 비서실장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국가기간전산망 추진을 통해 정보산업을 육성하고, 정보화를 통해 사회를 개혁함으로써 선진국에 진입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논리의 요지였다.
그러나 당시는 정보화를 통한 사회 개혁을 외치기에는 우리 사회가 너무 복잡했다. 5공 정부는 출범 직후 사회 개혁의 일환으로 "정의사회 구현"을 외쳤으나 정권의 정통성 자체에 문제가 있는데다 장영자사건 등 대형 비리가 잇따라 터짐에 따라 그 구호는 공허한 메아리만 남기고 있었다.
따라서 대외적으로는정보화를 통한 사회 개혁보다는 국가경쟁력 제고와 복지국가 건설을 내세웠다. 즉, "행정업무를 전산화하여 공무원의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작은 정부를만들고 남은 돈으로 복지국가를 건설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던 것이다.
김수석과 함실장을 설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김수석과는 구상단계에서부터 자주 논의했고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져 있어 긴 말이 필요치 않았다. 함실장은 남의 일에 일일이 관여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는 두 비서관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는 터라 굳이 개념이 잘 잡히지 않는 행정전산망사업계획에 대해 토를 달려하지 않았다.
이제 남은 일은 전대통령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그에 앞서 홍비서관은 몇가지 사전 정지작업을 했다.
무엇보다도 컴퓨터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대통령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컴퓨터와 친해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기로 하고, 청와대 비서실 각 방에 컴퓨터 한 대씩을 설치해 주었다. 그 무렵 삼보컴퓨터에서 개발한 8비트 컴퓨터였다.
대부분의 비서관들은 낯선 문명의 이기를 외면했으나, 그것과 쉽게 친해진 사람도 있었다. 그중에서 컴퓨터를 가장 쓸모있게 이용한 사람이 의전수석비서관 김병훈과 의전비서관 홍순용이었다. 홍비서관은 애플컴퓨터를 이용하여 대통령 방문자를 관리했다. 그에 비해 김수석의 컴퓨터 활용 범위는 훨씬 넓었다. 수개의 외국어를 자유로이 구사할 줄 아는데다 타자를 잘 친 김수석은 워드프로세서 기능이 들어 있는 큐닉스 컴퓨터에 데이콤의 국제정보통신망을 통해 미국의 유명한 DB회사인 DIALOG와 연결, 필요한 자료를 뽑아쓰고 있었다. 특히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관련된 외국 인사들에 관한 자료를 자유자재로 뽑아 참고 자료로 활용했다.
컴퓨터의 위력을 어느 정도 감지한 전대통령이 어느날 불쑥 물었다.
"컴퓨터에는 무슨 자료든 다 나오는가?"
"자료가 정리돼 있는 한 다 나옵니다"
"그러면 미국 의회의 회의록도 뽑아 볼 수 있나?"
"네, 뽑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 의회 회의록 중에서 코리아(Korea)란 말이 1년에 몇번쯤 나오는지 알 수 있겠군"
"네, 알 수 있습니다"
자신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대답하고 난 홍성원 비서관은 데이콤의 도움으로 미국 의회도서관의 자료를 뽑아낼 수 있었고, "한국(Korea)"이라는 낱말이 등장하는 연도별 빈도를 정리할 수 있었다. 박동선사건 때 "한국"이라는 낱말이 가장 많이 등장했던 것이다.
홍비서관은 그런 식으로 전대통령에게 컴퓨터에 대한 신뢰감을 심어주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 사저에도 컴퓨터를 들여놓아 이순자여사로 하여금 컴퓨터 관심을 갖게 했다.
83년 7월 홍성원 비서관은 대통령 비서실장 함병춘, 경제수석 김재익과 함께 초벌구이 상태인 "국가기간전산망계획"을 전대통령에게 설명했다.
전대통령에게 보고한 국가기간전산망계획안은 간단했다.
첫째, 국내 전체 전산화체계는 종국적으로 국방망.정보망.행정망이 포함된 국가기간전산망을 중심으로 하여 구성.연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이때의 행정망은 일반행정은 물론 금융.교육.기술정보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나중에 확정된 행정전산망에 비해 훨씬 포괄적인 것이었다)
둘째, 이를 위하여 국가기간전산망의 기본계획과 실천방안을 정보산업육성위원회 주관하에 83년말까지 작성한다.
셋째, 전국망을 갖는 기존의 중요 전산화계획에 대해서는 자체적으로 국가기간전산망계획에 부합되도록 합리화작업을 촉진토록 한다.
보고는 홍비서관이 직접했다. 그 무렵 일반 비서관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를 한 경우는 드물었으나 홍비서관은 국가기간전산망계획이나 과학기술진흥확대회의 등 중요한 안건이 있을 때마다 한 달에 한두번씩 대통령을 직접만나 설명하곤 했다.
"전대통령 자신이 새로운 상품이나 아이디어 등 새로운 것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또 공고 출신 탓인지 전반적인 엔지니어링 워크에 대해 감이 빨랐어요. 따라서 전산화 자체의 중요성보다는 행정간소화와 행정쇄신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전산화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더니 당연하게 받아들였어요. 그처럼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어요"홍비서관이 주장하듯이 그의 설명에 대해 전대통령은 굳이 토를 달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석한 함실장과 김수석에게 지원을 당부함으로써 홍비서관을 격려했다.
"함실장과 김수석이 홍비서관을 도와주세요. 홍비서관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두 분이 밀어주면 큰 힘이 될 겁니다. 대통령이 직접 추진하는 사업으로 생각하고 밀어주세요"
그러한 전대통령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홍비서관을 도울 시간은 별로 없었다. 그해 10월 전대통령을 따라 동남아 순방길에 오른 그들은 미얀마의 아웅산묘소에서 불귀의 나그네가 되고 말았다.
아무튼 전대통령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홍비서관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차관회의와 국무회의에 참석하여 국가기간전산망계획에 대해 설명했고, 또 국무총리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기에 앞서공공기간의 전산망을 행정망.금융망.교육연구망.국방망.공안망 등 5개 망으로 합리화하는 방안을 마련하여 이를 2백여 공공기관 및 전문가들에게 돌려 그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이러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는 동안 국가기간전산망의 윤곽은 보다 구체화되었다. 그해 12월 정보산업육성위원회는 공공기관전산망을 행정망.금융망.교육연구망.국방망.공안망 등 5개의 기간전산망으로 구성하되, 행정망의 책임 추진기관을 데이콤으로 하는 국가기간전산망계획을 수립하여 전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행정전산망계획은 보다 구체화되었다. 84년 12월 국가기간전산망 조정위원회는 행정전산망사업을 각 부처별 추진방식에서 업무별종합추진방식으로 전환하기로 하고, 각부처에서 요구한 42개 대상 업무 중주민등록관리.부동산관리.고용관리.통관관리.경제통계.자동차관리 등 6개 사업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그 사업을 추진해 나갈 전담사업자로는 데이콤을 지정했으며, 소요자금은 전담사업자인 데이콤이 먼저 투자한 다음사업이 완성되고 나면 정부 예산으로 사용료를 지불하는 선투자 후정산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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