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

피터 그린어웨이의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원제 The Draughtman`s Contract)은 그의 유명한 영화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의 장치와 상당히 흡사하다. 제한된 공간, 전반부의 긴대화, 끝장면에서 비로소 일어나는 사건, 도착된 성과 성욕, 성과 권력, 인육(남성기)생식 등등이 그러하다.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은 영국의 한 귀족을 다루고 있다. 백작과 백작부인의 관계는 소원하며, 그들은 그러한 불만족한 애정을 보상받는 오래된 방법을 또다시 반복한다. 백작이 집을 나가 있는 12일 동안, 백작부인은 제도사를 고용해 계약을 맺고 정원그림 12장을 그리게 한다. 기괴한 것은 그 계약이다.

그림을 그리는 12일 동안 제도사는 최고의 권력자가 되어 정원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으며, 백작부인은 그에게 성적 서비스를 해준다는 내용이다. 이같은 계약은 집사의 참석하에 이루어진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제도사는 권력이 주는 쾌감을 맛보며 오만하게 성욕을 행사한다. 백작이 살해당했다는 정보가 주어지는 것도 이때이다.

기혼녀인 백작 딸의 유혹과 위협에 굴복한 제도사는 그녀의 어머니와 맺은 똑같은 계약서를 작성하고 그녀와도 관계를 한다. 영지를 떠났던 제도사가 13번째의 정원그림을 그리기 위해 다시 귀족의 영지로 들어오면서 사건은 급전된다.

그는 자신이 그린 12장의 그림과 예전에 그리려 했으나 금지당한 구역에 관한 13번째의 그림을 완성함으로써 백작살해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고 싶어한다. 그림속에 있는 "정체 불명의 셔츠" "2층 창턱에 걸쳐진 사다리" "검은 칠을 한 남자" 등이 살인해명의 열쇠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13번째의 그림이 그려지는 순간 그는 복면한 귀족들에게 살해당한다.

이 영화에는 두 종류의 살인이 있다. 보여진 살인과 보여지지 않은 살인이 바로 그것이다. 소문으로만 떠돌 뿐 확인되지 않은 백작의 죽음을 규명하려던 제도사가 그 미스터리를 파헤쳤다. 싶은 순간 오히려 살해당한다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비밀이 있다.

"요리사, 도둑..."이 그러했듯이, 이 영화에서도 도착된 성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자가 권력자이다. "요리사, 도둑..."이라는 긴 제목은 사실 도착된 성 때문에 가지게된 권력의 순서였다. "도둑(독재자)-그이 아내-그녀의 정부"에서 독재자로 갈수록 권력은 커진다. 문제는 독재자 앞에 어떻게 요리사가 있느냐는 것인데 관객에겐 비밀의 코드로 제시된 독재자의 도착된 성에 대해 요리사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풀린다.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에서는 "정원에서 벌어진 미스터리"가 비밀코드이며 이에 대해 가장 자세히 알고 있는 자가 권력자이다. 누구일까? 사위? 제도사? 딸? 아내? 집사? 사위쪽으로 갈수록 조금 알고 있고 집사 쪽으로 갈수록 많이 알고 있다. 집사보다 더 많이 알고 싶어했던 제도사는 살해당한다. 직접 살해자는 사위와 친구들이다. 간접 살해자는 딸.아내.집사 모두가 포함된다.

이제 마지막 질문을 해야 한다. 뿔뿔이 존재하던 이들을 갑자기 한통속으로 연합시켜 잔혹행위를 하게 만드는 권력은 어디서 나왔는가. 아니 이 영화에서 가장 잔혹한 자, 가장 도착된 성을 즐기는 자는 누구인가. 그가 바로 최고의 권력자이다.

<채명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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