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인 95년 12월11일자에 첫 회를 내보냈던 「컴퓨터파노라마」가 45회째인 이번 회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 시리즈는 지난 67년부터 86년 말까지 20년 동안의 우리나라 컴퓨터산업 역사를 연대별로 41개 사건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67년은 「IBM 1401」이라는 컴퓨터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입된 해다. 또 86년은 87년부터 시작된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추진 계획이 갖가지 역경을 딛고 완성된 해다. 국가기간전산망사업 추진은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나라 컴퓨터산업이 20년 동안의 방황기를 끝내고 비로소 정착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사건이다.
이제 97년이면 국내에 컴퓨터가 도입된 지 꼭 30주년이 되는 해다. 본지가 이 시리즈를 기획하게 된 것은 바로 이 30주년의 뜻을 되새기기 위한 의도였다. 나아가서는 과거를 되살펴봄으로써 새로 시작될 역사의 징검다리로서 기록을 남기기 위한 욕심도 없지 않았다. 국내에서 아직 이렇다 할 컴퓨터도입 역사가 없었다는 사실은 특히 이같은 욕심을 더욱 강하게 자극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41개의 사건들은 95년 12월11일 게재했던 첫 회 『「IBM 1401」에서 「한글윈도우95」까지』에서 밝혔던 것처럼 객관적인 고증자료나 관련인물의 인터뷰 또는 당시의 보도기사들을 근거로 재구성한 것들이다.
이들 사건은 다시 도입기(67~69), 적응기(70~74년), 도약기(75~79년), 방황기(80~83년), 정착기(84~86년) 등 5개의 주제별 연대기로 다시 분류했다. 도입기는 「IBM 1401」이 도입된 직후 국내외적인 상황을 다루는데 역점을 두었다. 정부, 기업, 일반인들 모두 「컴퓨터는 만능기계」라는 식의 맹목적인 이해 속에 컴퓨터를 바라보던 시각들이 4개의 사건으로 정리돼 있다. 국내에 처음 도입된 컴퓨터가 IBM의 「IBM 1401」인가 후지쯔의 「파콤222」인가를 놓고 벌여온 업계 논쟁도 다뤘다.
적응기에서는 70년 이후 정부기관과 민간기업들 사이에 컴퓨터 도입이 늘어나면서 「컴퓨터를 어떻게 활용했는가」라는 주제 속에 벌어졌던 사건들이 9개로 정리했다. 이 시기에 컴퓨터는 중학교 무시험추첨이나 대학 예비고사 채점작업 등 현실과 가까운 곳에서 아주 편리하고 긴요하고 사용되지만 아울러 AID아파트 부정 추점사건 등에도 깊숙하게 개입됨으로써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혼선을 가져다준다.
도약기는 비로소 외국에서 만들어져 외국의 문화습관대로 사용돼온 컴퓨터를 「어떻게 국산화할 것인가」가라는 물음이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이 물음은 정부차원에서 집중적으로 거론됨으로써 행동에 옮겨졌는데 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10개의 사건으로 묶어졌다. 컴퓨터의 진가를 파악한 3공화국이 컴퓨터 중심의 전자입국 정책이 시도되고 미약하나마 정보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표명됐다. 성기수 박사가 이끄는 KAIST전산센터가 우리나라 컴퓨터산업의 거의 모든 기술적 기반을 떠받치던 시기이기도 했다. 민간에서는 컴퓨터 국산화를 놓고 삼성과 금성의 별들의 전쟁이 시작되고 이를 지원하게 될 한국전자기술연구소 등의 출연연구소가 등장한다. 국산 컴퓨터 1호 「세종」이 이 때 탄생한다.
방황기에서는 80년을 전후한 정치적 혼란이 자생력이 취약한 컴퓨터산업분야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11개의 사건을 통해 다뤘다. 이 시기의 주제는 「컴퓨터가 어떻게 정권안보에 도움이 될 수 있느냐」였다. 국산화에 배치되면 산업적으로 당장 필요한 컴퓨터도 수입이 금지되는 수난시대였다. 5공화국 후기에 완성된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추진 계획도 사실은 이때부터 긴밀하게 논의되던 것이다. 「정보산업의 해」가 선포됐고 전시 행정의 극단을 보여준 교육용컴퓨터 5천대 보급계획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시기의 컴퓨터 기술은 이미 총선 당락을 예측할 수 있을 만큼 세련돼 가고 있었다. 이같은 상반된 평가 속에서도 정보산업정책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과기처, 상공부, 체신부의 밥그룻 싸움은 본격화됐다.
정착기는 우수한 엔지니어들의 대규모 배출과 관계에 진출한 정통 테크노크라트들의 부상에 힙입어 정부 차원에서 대규모 컴퓨터 프로젝트들이 기획되던 시대다. 86아시안게임 및 88올림픽전산시스템 개발이 본격화됐고 행정전산망을 포함한 초대규모 국가기간전망망사업 추진계획이 확정됐다. 모두 6개 사건을 다뤄진 이시대의 주제는 「90년대 이후를 위한 정보산업의 육성」이었다. 6개 가운데 특히 청와대가 직접 추진한 국가기간전산망사업 계획은 미래 전략산업으로서 정보산업의 육성과 효율적인 행정부 구축이라는 2대 과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범국가적인 관심을 보인 사건이었다. 물론 이같은 프로젝트들의 추진과정에서 돌출되곤 했던 과도한 정치적 긴장감 때문에 나타난 폐혜도 적지 않았다. 5개의 주제별 연대기를 일지로 정리하면 <표>와 같다.
필자가 지난 1년 동안 「컴퓨터 파노라마」를 연재하면서 새삼 깨달은 바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컴퓨터는 정직하다』는 사실이었다. 30년 동안을 이어 내려오면서 컴퓨터의 모습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컴퓨터를 다루거나 통치하려 했던 사람들과 정책은 시간에 따라 무수하게 바뀌고 변질된 것은 참으로 안타끼운 일이었다.
대학에서 사용되는 컴퓨터 원론 교과서에는 지금도 이런 명언이 통한다.
「Gold in gold out, Garbage in Garbage out」 (컴퓨터에 금을 입력하면 금을 출력하고 쓰레기를 입력하면 역시 쓰레기를 출력한다). 이 말은 컴퓨터가 오로지 사람이 시키는 일만 처리할 수 있는 융통성 없는 기계라고 비꼬는 것이지만 또 그만큼 오차가 없는 정직한 기계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지난 30년을 돌이켜보건대 우리 정부나 기업들은 컴퓨터에 대해 경쟁적으로 지나친 애정(?)을 보여왔다. 그 결과는 자신에게만 가치가 있는, 그래서 결국은 남들에게는 허섭쓰레기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들만 컴퓨터에 입력한 꼴이었다. 이제와서 그 허허실실이 드러나고 있는 컴퓨터 국산화정책이나 교육용 컴퓨터 보급계획 등은 애정이 넘쳐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사건들이었다. 바로 이런 것을 되짚어보기 위해 우리는 과거의 기록들을 중시하는 것이다.
「컴퓨터 파노라마」를 끝까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컴퓨터 파노라마」는 독자 여러분의 격려에 힘입어 내년 1월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또 훗날 이 시리즈의 속편격인 1987년 이후를 정리할 계획임을 밝혀둔다. 자료제공과 인터뷰에 협조해주신 여러분께 고마움을 표한다. 끝으로 이 자리를 빌려 지난 1월 8일자(3회) 본란에서 필자의 부주의로 생존을 바꿔 표기했던 원로학자 최형섭 박사에게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서현진 기자>
<>국내 컴퓨터도입사 연대기(1961~1986)
->도입기
1961년
3월, 내무부 통계국 천공카드시스템(PCS) 1백30대 도입
1964년
5월 , 이만영 박사 전자관식 아날로그 계산기 개발
1966년
2월 ,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출범
1967년
1월 한국생산성본부 전자계산소 발족
4월 경제기획원 국내 최초 컴퓨터 IBM 1401도입
과학기술처 출범
한국IBM 창립
5월 생산성본부, 파콤222 도입
6월 KIST 전자계산실 발족 및 CDC 3300 도입
9월 과기처, 전자계산조직개발위원회 설치
컨트롤데이타코리아(CDK)창립
10월 재단법인 한국전자계산소 발족
1968년
4월 과학기술처 공무원 전산교육 실시
5월 유한양행, IBM 1401 도입(민간 최초)
10월 한국유니백 창립 1969년 1월
서강대, 유니백 SS-80도입(대학 최초)
1969년
10월 금융단전자계산본부(KBCC)발족
서울 홍릉에 KIST단지 준공
->적응기
1970년
2월 중학교 컴퓨터 무시험 추첨
3월 숭실대 전자계산학과 설치(대학 최초)
4월 과기처산하 중앙전자계산소(현 정부전자계산소) 발족
1971년
3월 스페리랜드코리아(현 한국유니시스) 창립
12월 KIST, 대학예비고사 채점 전산화
1972년
10월 치안본부, 유니백9400도입,주민등록전산화
11월 외환은행, 서울-부산자점간 온라인 개통(국내 최초)
1973년
2월 한국정보과학회 출범
KIST, 국산 컴퓨터 1호 세종 완성
10월 반포AID아파트 부정추첨사건(최초의 컴퓨터 범죄)
1974년
2월 화콤코리아(현 한국후지쯔) 창립
->도약기
1975년
1월 박대통령, 행정전산화 추진 지시
9월 동양전산기술, 「오리콤540」개발(최초 국산 OEM기종)
1976년
2월 한국전자공업진흥회 창립
11월 KIST와 금성전기, GSCOM-80A(최초 국산마이크로 컴퓨터) 및 잉크젯프린터 개발
12월 한국전자기술연구소(KIET), KIST부설 한국전자통신연구소(KCRI), 한국전기기 기 시험연구소 발족1977년
10월 문교부, 전국 8개 국립대학에 HP기종 보급
12월 한국통신기술연구소(KTRI)발족
1978년
2월 총무처, 행정전산화 기본계획 발표
3월 삼성전자, 한글모아쓰기 CRT단말기개발(국내 최초)
7월 행정전산 시범사업 추진(충북도청)
8월 금성사 컴퓨터사업부 신설
1979년
2월 전경련, 정보산업협의회 발기
9월 KIST, 후지쯔에 국산 소프트웨어 수출(국내 최초)
->방황기
1980년
6월 공업진흥청,컴퓨터와 주변기기에 대한 표준설계 기준 마련
1981년
1월 KIST와 KAIS가 KAIST로 통합
10월 한국전기통신공사 발족
1982년
1월 행정업무 전산화 추진규정 제정
3월 한국데이타통신 발족 10월
공업진흥청, 컴퓨터 표준화 KS규격고시
12월 행정전산화 기본계획 수립
1983년
1월 정보산업의 해 선포
3월 정보산업 육성방안 보고(정보산업육성위원회 구성)
7월 국가기간전산망계획관련사항 보고
9월 KAIST와 고려시스템 공동으로 명필 워드프로세서 개발
->정착기
1984년
3월 국가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 발족
4월 한국데이타통신, 전자사서함 서비스 실시
6월 국가기간전산망 계획 추진 보고
1985년
5월 국가기간전산망 중간보고 및 행정망 추진계획(안)
한국전자통신연구소( ETRI)발족
12월 제1단계 행정망 추진계획 중간보고
1986년
1월 다기능사무기기 보급계획(안)발표
5월 전산망 보급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제정
12월 전산망 보급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사행령 제정
공업진흥청,정보교환용 한글표준코드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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