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전자업체들의 세계화

楊命信 새한전자 이사

얼마 전에 싱가포르에서 열린 「글로벌 트로닉스(Global Tronics」 전시회에 참석한 후 돌아오면서 우리나라 전자산업, 특히 전자부품산업의 현주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 전자산업의 현주소는 한마디로 완제품은 완제품대로, 부품은 부품대로 무언가 방향을 잃고 인도양과 태평양을 마구 표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전자제품과 부품의 세계적인 생산전진기지인 동남아시아에는 한국의 뿌리를 찾기가 힘들었다. 중국계의 틈바구니에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인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한국의 가전제품 생산공장도 전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지만 과연 얼마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고 있다. 「세계화」니 「현지화」니 하는 구호만 요란했지 실제로는 가장 보수적인 것이 바로 우리의 현주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 중국계열이나 일본계열 업체들은 발빠르게 자체 경쟁력을 갖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가격이나 품질, 납기만 맞으면 전세계 어느 구석에 있는 부품도 사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상담도 한번이 아니고 두번 세번씩, 무언가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정말 대단하였다.

그런 데도 한국과 관계된 회사들은 활동이 미흡해 상담은커녕 방문조차 하지 않는 것처럼 느꼈다. 그들이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를 하기 어려웠다.

바깥에 있으면서도 정보에 너무 어두운 국내 업체들을 보면 앞으로 한국전자산업의 앞날이 밝지 않다는 점을 느꼈다. 눈을 크게 뜨고 남보다 부지런히 뛰어 각박한 외국업체와의 경 쟁에서 이기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눈을 감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

전시회에 참가한 한국 부품업계의 실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산부품은 한결같이 가격경쟁력을 맞추지 못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국내 가격구조의 10% 정도를 싸게 하여도 상담자들의 입에서는 『한국제품은 역시 비싸군요』라는 말만 되풀이됐다.

『품질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으니 『일본, 대만, 중국, 말레이시아 제품이나 이젠 거의 같은 수준이네요』라고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그럼 납기는 어떻습니까』하고 물으니 『납기는 의욕적으로 행동하면 맞추는 것 아닙니까』라고 태연스럽게 되물었다.

한국은 수출하고자 하는 의욕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떨어진다는 것이 현지 외국인들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왜 그렇느냐고 다그쳐 물으니 한국은 한국내수만 하여도 회사를 운영하는 데 별 지장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정말 큰일날 일이다. 「우물안 개구리」격인 우리의 모습을 그들은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와 달리 대만, 일본, 중국, 홍콩관은 작은 부품 한가지를 펼쳐 놓고 가격이면 가격, 품질이면 품질, 납기면 납기, 무엇이든지 다 맞출 수 있다고 장담했다. 자신이 만든 제품은 세계에서 제일이라는 그들의 자만심을 어떻게 생각하여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더욱이 전시회를 주관한 한국무역진흥공사(KOTRA)나 전세계를 현지화한다는 한국의 전자업체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것 같았다.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 현지화를 위해 이제부터라도 정부나 전자업계가 제대로 방향을 설정해 뛰어야 한다는 게 나만의 느낌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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