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만 하더라도 외국 컴퓨터 회사의 한국 현지법인 지사장으로는 본사나 아.태지역 본부에 근무하는 직원이 순환근무 형식으로 부임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SDRC코리아나 인터그래프코리아 등 현지법인의 경우처럼 한국지사장이 한국법인은 물론 아시아 태평양지역 전체의 책임자 역할까지 맡게 되는 일이 예사로 벌어지고 있다. 그만큼 한국 현지법인의 위치가 높아졌으며 규모가 커졌다는 얘기다.
한국에 진출한 대부분의 외국 소프트웨어업체는 대규모 다국적기업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들 다국적기업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본사의 정책을 현지법인장을 통해 각국에 충실히 반영함으로써 국경과 체제와 민족을 뛰어넘는 세일즈에 성공하고 있다.
다국적 소프트웨어기업들이 영업.관리 및 인사 측면에서 한국의 현지법인을 관리하는 기법은 우리나라 기업들에는 낯선 구석도 없지 않다.
외국기업들의 기업경영방식은 기본적으로 목표지향운영방식(MBO:Management By Object)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자연히 영업이 중시될 수밖에 없으며 영업조직이 경영의 중심부로서의 역할을 떠맡는 것도 쉽게 이해된다. 현지법인 지사장의 역량도 과정이야 어떻든 매출실적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다.
현지법인의 경영평가 역시 철저하게 실적주의로 진행되며 이는 곧 지사장의 연봉 재계약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물론 회계연도내 매출목표는 본사와 긴밀한 협의절차를 거쳐 설정하게 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지사장의 의지에 좌우되는 문제다. 이같은 개인적 의지의 결과에 따라 국내에서도 최근 1~2년 사이에 수억원대의 연봉을 계약하는 지사장이 출연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철저한 프로의식이 뒷받침된 냉엄한 계약주의가 숨어 있는 것이다. 수억원을 받는 만큼 책임과 노력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연봉은 대부분 계약당사자가 신청하는 것인데 이같은 방식을 두고 어떤 이들은 포커 도박에서의 "배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그만큼 고액 연봉에 대한 책임이 중시된다는 얘기다. 연봉제는 지사장뿐 아니라 지사장이 관리하는 현지법인의 조직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CAD제품을 공급하는 현지법인 A사의 경우를 보자. 이 회사는 매년 2월말 회계연도 결산을 마치면 전직원을 대상으로 연봉 재계약 작업에 들어간다.
3월부터 시작되는 연봉협상 과정은 본사를 대리하는 지사장과 현지직원간 불꽃 튀기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이 전쟁은 미국 프로야구에서 구단과 선수들의 연봉협상을 뜻하는 "스토브리그"에 비유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다국적기업들과 마찬가지로 A사도 직원들과 "분기별" 계약조건 방식의 협상을 진행한다.
이 계약조건은 매회계연도초에 전체 연봉을 설정한 다음 분기별 실적에 따라 지사장과 동의한 한도내에서 자신의 급여가 변동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전자설계자동화(EDA)분야 전문인 C사의 경우는 연봉협상에서 실적과 전문분야를 중시하는 사례에 속한다. C사는 영업사원과 엔지니어에 대해 각각 다른 급여체계를 적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영업사원의 경우 50%가 기본급이며 나머지 50%는 성과급이어서 목표를 1백% 달성할 경우 이를 수령하게 되며 미달할 경우 이에 따른 책임을 지게 된다. 즉 자기의 월급 수령액이 자동적으로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목표 이상의 실적을 달성했을 경우 그에 해당하는 계약에 따라 인센티브가 지급된다.
반면 C사는 엔지니어에 대해서는 안정적인 근무환경이 중요하다고 판단, 기본급과 성과급의 비율을 90대 10으로 정해놓고 있다. 그러나 엔지니어들도 근무경력이 쌓이고 직책이 높아질수록 성과급의 비율이 10%에서 20%, 30%대로 증가한다. 전략과 정책 부서장일 경우 비율은 40%까지 상승한다.
이같은 사실이 바로 연공서열에 따른 급여 및 직책을 보장하는 국내 기업과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현지법인 지사장들의 경우 전직원에 대한 관리 관할권을 가지는 만큼 책임도 크다. 한 해의 실적에 대한 총책음은 일반적으로 지사장의 재계약 여부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지사장은 실적이 미달될 경우 스스로 자리를 물러날 수밖에 없어 1백% 책임경영체제의 선봉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A 및 C사의 사례에서 보듯 다국적기업들의 현지법인에 대한 경영과 관리는 한마디로 조직원간 연봉협상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다. 또 연봉협상은 성과급의 비중이 높고 고참일수록(연봉이 많아질수록) 책임이 무거워지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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