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생각] 영화법과 음비법

헌법재판소에서 영화의 사전심의를 규정하고 있는 현행 영화법이 사실상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전검열」이라며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언론에서 「가히 혁명적인 판결」이라고 하지만 이 일이 바로 우리의 현실임을 이제는 좀 더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 다시 한번 인간의 자유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감증이 얼마나 뿌리깊은 것이었는지 여실히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그동안 표현의 자유가 전적으로 보장돼야 하고 한편으로는 기술적인 측면에 너무 경사되어 있는 우리 나라의 멀티미디어 산업이 문화와 그 내용에 빨리 눈을 돌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누차 강조한 바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음비법에 대한 문제제기와 정부 및 기업체, 그리고 문화, 교육계 인사들의 인식 전환에 대한 촉구로 이어졌다. 물론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나의 작은 목소리 하나로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노릇이었겠는가. 그런 점에서 음반에 대한 사전심의 철폐를 위해 노력한 분과 영화법의 검열제도 철폐에 앞장선 분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우리 나라의 문화기구나 그에 대한 법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가장 먼저 제기되는 것은 역시 「정치적인 목적」이다. 실제 군사정권이 자신들의 통치방식 중의 하나로 「우민화 정책」을 구사한 것은 명확하다. 문학의 향기와 깊이와 아름다움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고, 어떤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는지를 자신들의 기준으로 재단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문화 전체에 대한 「가위질」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따라서 가장 일차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정치적 목적에서의 검열제도가 철폐된 것은 어쩌면 표현의 자유를 향한 싸움의 가장 커다란 성과일 수도 있고, 그 승리의 첫걸음일 수 있다. 하지만 절대 우리의 눈이 여기에 갇혀서는 안된다.

「정치적 목적」으로 문화를 규제하여 온 편에 섰던 사람들이 내세운 방어논리는 대부분 「성」의 지나친 묘사와 「폭력」의 지나친 연출로부터 청소년과 우리 사회 전반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얼마나 도덕적으로 타락한 생활을 했는지, 그리고 제도적 폭력을 마음껏 휘둘렀었는지 어렴풋이는 알고 있다. 많은 루머와 주간지를 도배하는 스캔들이 어찌 전부라고 할 수 있겠는가. 물론 모두를 매도하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감히 누가 누구를 계도하고 그 두 가지의 사회 암적 병리에서 보호하겠다고 나서는가. 그리고 그 인식의 저변에 깔려 있는 논리가 얼마나 일반대중을 우습게 보고 있고 자신을 엘리트로 착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잘난 체하는 스타일이 암묵적으로 사회의 도덕률로 번지면서 새로 자라나는 세대들과의 마찰 요소를 강화시켰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만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이외의 타인에 대해서도 믿음을 가져야 한다. 「성」과 「폭력」의 문제에 대해 염려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바로 자기 옆의 사람도 그것을 염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자기와 주변을 보호하기 위해 그 정도의 염려를 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그동안 그렇게 우습게 알던 이 사람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법적 규제 이상의 정화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까지 믿어야 한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다릴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새로운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원천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 악법적 요소가 있다면 심정적 연대를 갖는 모든 사람들이 그 싸움의 주역이다. 영화법과 마찬가지로 비디오물과 CD롬 타이틀을 비롯한 새 영상물에 대해 사전 검열을 하고 있는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 역시 그 위헌적 요소에 대해 명확히 심판받아야 할 것이다.

<이건범 아리수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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