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4주년특집] 정보인프라 점검-정보가전

지난 3월 미국과 일본에서는 세계 가전업체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새로운전자제품이 거의 동시에 등장했다.

미국 게이트웨이2000이 발표한 PCTV인 「데스티네이션 시스템」과 일본 반다이 디지털 엔터테인먼트(BDE)가 내놓은 네트워크 단말기인 「피핀아트마크」가 그것이다.

「데스티네이션 시스템」은 31인치급 대형화면에 TV수신을 비롯해 인터넷검색과 홈쇼핑, 게임 등의 기능을 갖춘 PC 및 TV 복합제품이다. 일반 TV보다화질이 뛰어난데다 VCR와 LDP 등과 연결해 쓸 수 있고 위성방송과 케이블TV신호를 수신할 수 있다.

컴퓨터로 쓸 때에는 대형 화면이기 때문에 먼 거리에서도 터치패드를 장착한 무선 키보드와 무선 마우스로 조정하면서 인터넷을 검색할 수 있다.

「피핀 아트마크」는 TV에 연결해 쓰는 네트워크 단말기다. 애플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피핀규격에 따라 상품화된 이 제품은 애플의 매킨토시 OS를기본으로 고급 PC에 버금가는 고속연산이 가능하고 키보드를 사용하지 않고도 간단하게 게임도 하고 인터넷을 검색할 수 있다.

두 제품 모두 이른바 정보가전이라는 새로운 물결을 타고 나온 첫 결실들이다.

정보가전은 컴퓨터와 가전이 서로 융합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AV제품의 멀티미디어화라는 새로운 추세를 뭉뚱그려 일컫는 말이다. 이는 정보처리를 주목적으로 한 컴퓨터를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발상을 바탕에두고 있다.

컴퓨터와 가전의 기존 경계선을 허물고 있는 정보가전은 특히 세계 전자산업계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혁명을 등에 업고 그 불길이 날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데스티네이션 시스템」과 「피핀아트마크」가 나온 올해는 바로 정보가전의 원년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디지털혁명은 컴퓨터와 정보통신은 물론 가전분야에서 최근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90년대 들어 미니디스크(MD), 디지털 콤팩트 카세트(DCC)등이 나오면서 오디오의 디지털화가 급진전하고 있고 영상압축기술(MPEG)을 바탕으로 영상재생기기도 급속도로 디지털화돼 디지털 다기능 디스크(DVD)와 디지털VCR 및캠코더 등이 새로 등장하고 있다.

방송과 통신의 디지털화도 점차 가속화하고 있다. 디지털위성방송과 디지털오디오방송(DAB) 등이 세계 각국에서 잇따라 도입되고 있고 종합정보통신망(ISDN)과 같은 통신의 디지털화도 이미 닻을 올렸다.

디지털기술은 영상과 음성신호의 열화현상을 없애고 손쉽게 작동할 수 있게 하며 압축기술을 응용해 전송의 효율성도 높이고 있다.

컴퓨터와 통신망 역시 디지털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단순한 데이터처리에서점차 영상과 음향의 영역을 포괄할 수 있게 됐고 서로 다른 표현수단(신호)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대화형(인터액티브)기술은 사용자의편리성을 더욱 향상시켰다.

이러는 사이 게임과 같은 오락에서부터 인터넷 검색과 같은 높은 수준의정보 욕구에 이르기까지 가정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정보신호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가정용 멀티미디어에 대한 구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정보가전이다.

정보가전은 통합화(Integration) 지능화(Intelligence) 대화성(Interactive) 등 3I의 특성을 갖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게임기를 비롯해 각종 AV기기를 모아놓아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게 통합화다. 정보가전에서 통합화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기능을 기본으로 하되 개별적으로 원하는 기능은 새로운 유닛을 장착하도록 하는 형태로전개되고 있다.

지능화는 컴퓨터와 같은 고속의 연산기능을 일반 가전제품에서도 수행할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컴퓨터에만 쓰인 고성능 CPU와 OS를 내장한 정보가전제품이 나오고 있는데 사용자 인터페이스(UI)는 소프트웨어로 구현한다.

대화성은 종합정보통신망과 연결되면서 양방향 서비스가 가능, 보다 사용자가 손쉽게 다양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정보가전의 등장으로 소프트웨어산업도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자기테이프는 광디스크로 대체되고 TV방송은 16대 9의 와이드화면이 정착되고 있으며 다채널과 다중방송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양방향 방송 등 시청자의 직접 참여가 가능한 새로운 방송프로그램이 쏟아져나오며 영화와 음악, 노래반주를 통신망을 통해 즐기는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도 활성화해대여시장에 의존한 기존 소프트웨어산업은 앞으로 크게 달라질 것이다.

훗날에는 신문을 집안의 TV로 전송받아보는 것도 나타날 것이며 교육과 학습 분야에서도 대화성이 더욱 곁들여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같은 정보가전은 아직 초창기이고 본격화하려면 2010년대에는 가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정보가전은 초고속정보통신망을 뿌리로 두고 있는데 이를 구축하려면 오랜시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 우리나라는 국책 과제로 정보고속도로라는이름 아래 초고속정보통신망의 구축을 서두르고 있지만 가정에까지 파급되려면 빨리 잡아도 10여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보가전이 제공할 수 있는서비스가 당분간은 극히 제한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 정보가전과 관련한 제품 기술도 아직 초창기여서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킬 만한 제품을 당장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가전업체로는 정보가전 제품을 만드는게 다양한 첨단기술을 동원해야 하기 때문에 제조원가 부담이 많은데 수요를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판매가격은 충분히 낮춰야 하는 이중고에직면해 있다.

「피핀아트마크」를 보면 통신속도가 1만4천4백짜리 전용모뎀을 채용했는데 인터넷을 제대로 검색하려면 적어도 2만8천8백급 이상의 모뎀이 필요하다. 이만한 모뎀을 달려면 그렇지 않아도 비싼 제품가격은 더 올라가게 된다.

세계 가전업체들이 개발에 열올리고 있는 인터넷 검색 등 정보통신단말기를 내장한 TV는 별도의 메모리와 OS가 필요한데 관련부품과 소프트웨어 값이아직 비싸고 질도 흡족한 수준은 아니다.

결국 정보가전은 초고속 정보통신망의 조기 구축과 제품기술의 발전이 동시에 이뤄지지 않으면 이른 시일안에 정착될 수 없다.

그렇지만 세계 가전업체들은 한계상황에 이른 기존 AV시장의 유일한 탈출구를 정보가전이라고 보고 있다. 정보가전은 이미 세계 가전산업계에 던져진새로운 화두다.

이를 반영하듯 세계 유수의 가전업체들은 최근 TV와 PC를 통합한 정보가전제품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가전업체인 톰슨은 내년초에 인터넷을 검색할 수 있는 인터넷TV를 출시할 예정이고 일본 소니 마쓰시타, 미쓰비시, 네덜란드 필립스도 TV와 PC및 인터넷단말기 등을 모두 통합한 제품을 곧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또 정보가전의 주변기기로 각광받고 있는 DVD는 올연말 상용화를 눈앞에두고 있고 정보가전용 영상표시장치인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와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도 선진국을 중심으로 활발히 개발되고있다.

이밖에 입체음향시스템 TV전화 고성능게임기 자동차 내비게이션시스템 등을 유닛형태의 정보가전 제품을 연구, 개발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우리나라는 가전3사를 중심으로 정보가전의 거의 모든 제품의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데 DVD와 인터넷TV 등 일부 제품은 선진국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상품화할 정도의 수준에 올라 섰다.

국내외 업체들이 당장 시장성은 없는 데도 불구하고 정보가전에 이처럼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만큼 이 시장의 잠재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일본 전자공업진흥회가 지난 94년에 내놓은 멀티미디어AV시장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15년께 정보가전시장은 이동용 기기까지 포함해 하드웨어부문에서 5백49억달러, 패키지 프로그램과 서비스 등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1천1백87억달러 등 모두 1천7백66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은 시장규모는 지금의 AV시장보다 하드웨어에서 3배, 소프트웨어에서5배 가까이 커진 것이다. 정보가전은 단순히 기존 AV제품을 대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지금은 나타나지 않는 전혀 새로운 수요도 창출할 것임을 미뤄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세계 가전업체들로서는 다소 멀리 있기는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황금시장을 향해 뛰지 않을 수 없다. 정보가전시대는 더 이상 미래형이 아니라현재진행형이다.

〈신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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