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컴퓨터 파노라마 (35);방황기 (10)

정보산업 육성과 대통령의 관심

지난회 「정보산업의 해와 전산망조정위원회의 탄생」에서 언급했듯이 1983년이 「정보산업의 해」로 선포된 것은 정부가 비로소 정보산업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산업으로 인정했음을 의미했다.

정보산업의 해가 선포되자, 정보산업에 대한 관심은 범국가적으로 급속하게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청와대의 관심은 유별났다. 어느날 전두환 대통령이 비서관에게 『정보화사회가 무엇인가』라고 물은 적이있었다. 물론 급작스런 질문은 아니었다. 평소 대통령이 관심을 가져오던 터라 이 비서관은 준비해 뒀던 답변이 있었다.

『경제사회 발전의 중추적인 원동력은 이제까지는 물질과 에너지라는 2대요소였습니다.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여기에 정보라는 것이 추가돼 3대 요소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궁극적으로는 정보가 물질과 에너지보다 상위 개념으로 부상하게 돼 결국은 정보화사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보화사회를 추진해야 하는가?』『정보산업을 육성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사료됩니다.』『정보산업이 무엇인가?』

『컴퓨터와 관련된 산업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컴퓨터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하며 전달시키는 분야가 있을 수 있습니다.』

『컴퓨터를 알기 쉽게 설명해 봐, 요즘 학생들 교과서에는 컴퓨터나 반도체 얘기가 나오나?』

대통령의 정보산업이나 컴퓨터에 대한 관심은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그가 취임 직후부터 전자산업과 함께 정보산업에 대해 유별난 관심을 가졌다는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박정희 대통령 역시 정보산업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데다 82년 이후 관련 부처 장관들도 부쩍 정보산업을 경제 발전에 연동시켜 한다는 식의 동향 브리핑이 늘고 있던 때였다.

대통령은 취임 초기 컴퓨터에 대해 호기심에 가까운 궁금증을 갖고 있었던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담당 비서관은 틈이 나는 대로 『컴퓨터는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성돼 있으며...』 하는 식의 별도 교양시간을 마련하곤 했다.

87년 퇴임을 몇 달 앞둔 어느 날 대통령은 총무처가 주관한 한 행정전산업무개발 시범 행사장에 참석했다가 퇴임 후에는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배우고싶다며 퇴임 후 포부를 밝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컴퓨터에 대해 대통령이 그처럼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담당 비서관의 교양 때문이었다는얘기가 농반진반으로 전해지고 있을 정도다. 컴퓨터에 대한 대통령의 지대한관심 때문에 일어난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83년을 정보산업의 해로 선포한 83년 1월 28일 기술진흥확대회의에서는 그후속조치로 2개월 이내에 정보산업 육성방안을 마련, 대통령에 보고하기로돼 있었다. 과기처, 체신부, 상공부 등 관련부처 실무자들 비롯해서 한국과학기술원 연구원들과 업계 전문가들이 이 보고서 작업에 함께 참여했다.

보고서 작업은 그러나 쉽지 않았다. 최대 난제는 무슨 내용을 담아야 할것인가가 아니라 내용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였다. 그도그럴 것이 보고서팀이작업에 앞서 청와대 비서실로부터 받은 지시사항은 무조건 이해하기 쉽게 작성하라는 것이었다. 보고서팀에 참여했던 K씨의 회고.

『난감했습니다. 사무자동화니 교환장치니 하는 용어들은 그런대로 가능했지만 예컨대 컴퓨터의 표준화니 정보교환용 코드니 하는 용어들은 표현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표준화라는 용어는 보고서 내용의 핵심이었는데 정보산업 육성을 위한 선결과제로 컴퓨터의 표준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었죠. 당시 국내에는 한글코드만 38종, 키보드 배열종류만 34종이나 되는 등 규격이 납립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대통령이 이 말을 이해할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도를 찾았지요.』

K씨는 이때 표준화라는 용어를 설명하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를 제안했다. 서로 언어를 달리하는 각국의 민족 대표들이 모여 국제회의를 하는가상적인 상황을 통해 표준화 개념을 설명하자는 것이 K씨가 낸 아이디어였다. 이어지는 K씨의 설명.

『가령 한, 미, 일, 중 4개국 대표가 국제회의를 연다고 칩시다. 언어소통문제가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는데 이의 해결에는 2가지 방안을 생각해볼 수있다는 것죠. 우선 1안은 모든 언어를 1대1로 통역할 수 있는 한영, 한일,한중, 영일, 영중, 일중 등 6명의 통역사를 두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회의가엄청나게 복잡해집니다. 2안은 표준 공용어를 두는 방안이죠. 유엔총회나 올림픽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방식인데 예컨대 한글을 공용어로 할 경우 한영, 한일, 한중 등 3명의 통역사만 필요하게 되며 회의 절차나 시간도 훨신 단축할 수 있지요... 또 공용어를 모국어로 삼는 한국의 입장은 얼마나 강화되겠습니까.』

컴퓨터 표준화 개념을 설명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서 K씨의 아이디어는 즉각 보고서팀에 채택됐고 최종 마무리된 정보산업육성방안 보고서 내용에 그럴 듯한 그림으로 그려져 83년 3월14일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그러나 이 보고서 내용이 대통령을 얼마나 이해시켰는지는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현재 전산망조정위원회가 국가기간전산망사업 정책문서로 보존하고 있는 정보산업육성방안 사본의 맨 끝장에는 이 문건을 보고받은 직후에 쓴 것으로 보이는 대통령의 자필 메모가 첨부돼 있는데 이 메모내용으로 미루어 그 이해 정도를 가름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일반 용지(A4기준)크기의 백지에 1백여자 내외 분량의 이 메모에는 컴퓨터나 정보산업에 관련된 문구로는 정보산업기술위원회 위원장을 (과학기술비서관에서) 비서실장으로 격상하라(9월5월 본란 34회 참조)는 대목 외에 전자(정보산업), 콤퓨터, 하드(하드웨어의 약자인 듯), 소(소프트웨어의 약자인듯) 등 단지 4개의 단어만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나머지는 대부분 반도체나부품 관련 용어로 채워져 있었다)

한편 전두환 대통령의 정보산업에 대한 관심도는 대내외에 과시되는 형태로 나타내 보이곤 했는데 아무튼 자의든 타의든 그는 재임기간 동안 전시회등의 행사 현장에 대규모 수행원을 대동하고 참석하는 일을 꽤 즐긴 것으로전해지고 있다. 80년 취임 2개월여 만에 찾았던 한국전자전(KES)을 거의매년 관람했던 일은 관련업계에 잘 알려져 있다.

대통령의 이같은 관심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 가운데 하나가 84년 4월22일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제1회 전국퍼스널컴퓨터경진대회」장에서의 정전사건이었다.

제1회 전국퍼스널컴퓨터경진대회는 과기처가 83년 정보산업의 해 선포와관련, 정부의 정보화실현 시책의 하나로 기획된 행사였는데 국내 최초의 컴퓨터경진대회였다는 점에서 이미 1년여 전부터 범국민적인 관심을 모아오던터였다.(제1회 전국퍼스널컴퓨터경진대회에 대한 내용은 다음 회에서 다룬다) 이날 행사는 경진대회 본선으로서 3백여명의 참가자들은 오전 9시 개회식에 이어 9시20분부터 체육관 바닥에 설치된 각자의 PC 앞에서 경시에 임했다. 예정된 시간(3시간)동안 제시된 규정대로 특정 프로그램을 작성하는내용이었다. 그런데 경시 시작 1시간이 지난 10시 20분경 체육관 전체에 갑자기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불과 1분도 못되는 정전 기간이었지만 경시장은난리가 났다. 1시간 동안 작업했던 프로그램 결과가 정전으로 깡그리 지워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초등부에 참가한 일부 어린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목놓아엉엉 울기 시작했다. 경시장내 참가자들의 아우성과는 아랑곳 없이 10시30분경 또한번의 정전이 있었다.

참가자들은 대회본부 측에 강력하게 항의했고 본부 측은 결국 경시 마감시간을 12시20분에서 오후 2시20분으로 늦췄다. 이날에 벌어진 촌극의 또 다른하일라이트는 12시30분경 경시장 내에 공급된 빵과 우유상자들이었다. 참가자들이 경시시간의 연장으로 대회본부 측에 점심을 요구했고 본부 측이 이를수용, 참가자마다 식사대용으로 빵과 우유를 지급했던 것이다.

역사적인 컴퓨터경진대회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체육관 정전사태는 어이없게도 청와대 경호실의 무지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이날의 정전은청와대 경호원의 소행(?)으로 드러났다. 그날 아침 예정에 없던 대통령의 경시장 방문이 계획되자 경호원들이 대회본부 측의 양해없이 안전 점검을 위해체육관 전기실의 전원스위치를 시험삼아 차단해본 것이었다.

경진대회의 실무책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A씨의 회고. 당시 A씨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개발센터 소속 책임연구원으로서 행사용 장비와 기술 지원을 담당했었다.

『대통령의 방문을 통보받은 것은 당일 10시경이었습니다. 잔뜩 긴장하고있었는데 갑자기 정전이 되는 거예요. 그당시는 설마 경호원들이 전원 차단시험을 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그후 두번째 정전 때도 제가 장비지원 등을 담당했는데 1회 때의 악몽이 생각나곤 해서 안정적인 전원공급을 위해 한전에 몇 차례씩 공문을 보냈던 일이 생각납니다.』

<서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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