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의 고약한 젊은이들이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이들은 은행 전산망을 해킹해 거물 정치인의 비자금을 빼낸 다음, 해적 TV방송국을 만든다.9시 뉴스의 전파를 파고들어가 느닺없이 벌거벗은 여자를 내세워 깜짝쇼를 벌인다.또 뉴스시간에 부패한 거물 정치인의 불륜 장면을 포르노로방영해 세상을 발칵 뒤엎는다.
이정국 감독의 <채널 69>는 비꼬인 세상의 뚜껑을 열어젖혀 권모술수와사욕으로 뒤엉킨 그 세계를 마음껏 조롱하는 풍자극이다. 부도덕한 권력과거기에 빌붙는 방송, 부패의 먹이인 검은돈이 만들어내는 추악한 삼각관계를추적해 폭로하는 블랙 코미디의 성격을 띠고 있다.
전직 PD출신의 정보밀매업자 제하(신현준 분),컴퓨터에 미친 천재 해커 석기(홍경인 분),노출광인 포르노배우 지망생 미니(최선미 분)가당돌한 게임을벌이는 게릴라들이다. 이들의 무기는 몰래카메라와 해킹. 전산망의 보안장치를 파괴하여 비밀 정보를 빼내고 은밀한 장면을 몰래 찍어 해적 방영한다.
착상은 기발하되, 과연 몰래카메라와 해킹으로 저 철벽같은 이른바 제도권의 첨단장치들을 떡주무르듯이 할 수 있느냐는 현실성은 버려야 한다. 신출귀몰한 홍길동의 재주를 의심하면 <홍길동전>이 재미가 없듯이, 컴퓨터 시대의 홍길동 일당들에게도 다소간 신출귀몰함을 인정해 주어야 코미디가 성립하니까.
문제는 풍자극이 가져야 되는 집단 카타르시스 효과를 제대로 얽어냈느냐를 살펴보아야 한다. 비리와 부도덕을 까발려서 권력 있고 돈 많고 인기있는사회의 리더 그룹에게 망신을 톡톡히 주자는데 ㅂ서 그치면 극적 깊이를 가지기 어렵다. 조롱과 망신의 대상이 특정 인물에 그치지 않고 그인물의 비리와 부도덕이 뿌리박고 있는 구조악의 얼개를 드러내는 데 몰두하지 않으면자칫 해프닝에 멈추기 쉽다.
비록 <채널 69>가 사회 풍자극의 본분을 다하지 못했더라도 컴퓨터와영상문화가 일상화된 신세대의 풍속과 정서를 거침없이 드러낸 점은 높이 사고싶다. 또 신세대의 시각으로 기성세대의 어두운 부분을 조롱할 수 있다는 것자체가 영화의 영역 넓히기에 기여할 바가 크다.
깜찍하고 발랄한 포르노자키 역을 소화해낸 최선미와 음험하고 고독한 추적자 역을 맡은 신현준의 밀도 있는 연기에서도 방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느끼리라 믿는다.
<소설가 박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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