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연중기획 SW산업을 살리자 (23)

정부기관과 산하 공공단체가 필요로 하는 물품 및 용역의 수급관계에 의해형성되는 시장을 일반적으로 조달시장이라 한다. 조달시장을 소프트웨어산업(정보처리산업)과 연관지어 보면 물품은 소프트웨어 패키지, 용역은 소프트웨어 용역(SI)에 각각 해당한다. 소프트웨어 분야의 연간 정부조달시장 규모는 95년 기준으로 패키지 3백억원 용역 3천7백억원 등 모두 4천억원으로추정되고 있다. 96년에는 패키지 5백억원, 용역부문 5천억원 등 5천5백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95년 기준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산업 총 생산규모는 2조5천5백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여기서 정부·공공 조달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15.7%정도이다. 제조·금융·유통 등 민간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 70%에 비하면 적은 규모로 여겨질 수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정부·공공부문은 그 규모에 상관없이 우리나라처럼 관 중심 사고가 팽배해 있는 환경에서는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시스템 선정 등 입찰 과정이나구매 관행 등이 민간 수요 부문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데8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국내 컴퓨터산업을 좌우했던 주전산기는 정부·공공 부문 그 자체에서 촉발된 수요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민간 부문에미치는 영향은 엄청났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그동안 정부·공공부분시장 진입이 상대적으로 어려웠던 오라클이나 IBM과 같은 외국기업들이 주전산기용으로 이식한 소프트웨어를 국내 공급하면서 오히려 별다른 어려움없이 정부·공공 부문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공공 부문 수요가 보다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정부·공공단체등 관급기관이 갖는 보이지 않은 힘이다. 이를테면 물품공급이나 용역개발 업체는 정부·공공부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것 만으로 기업적인 능력이나 잠재력을 평가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정부·공공 부문에 대한 납품이나 프로젝트 수주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기업들은 이로인해 정부·공공부문 프로젝트에서 물품대금이나 용역대가기준에 대해서도 대단히 관대한(?) 입장을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공공부문에 대한 공급이나 개발 실적을 민간 프로젝트 입찰에 활용하면 낙찰에 유리하다는 관행이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간프로젝트 입찰에서 관급 프로젝트 경험은 상당한 효험(?)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을 꿰뚫고 있는 정부·공공기관이 민간업체에 대해 매사 고압적 자세로 일관하는 것은 이제 극히 당연한 일로 돼버렸다. 민간업체에 대한정부·공공기간의 대표적인 관행 가운데 하나는 소프트웨어패키지와 같은 물품의 무상기증 요구 행위이다.

지난 5월 정통부가 정부부처 전산시스템 구매 예산 책정시 10%는 무조건소프트웨어 구매에 배정해줄 것을 재경원에 요청한 것은 이같은 무상기증 요구관행을 근절시키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되고 있다.

규모가 큰 용역개발 부문에 대한 정부 시각도 궁극적으로는 소프트웨어패키지에 대한 입장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현재 정부 조달을 책임지고 있는 조달청이 용역개발 부문에 채택하고 있는 구매방식은 적격 심사낙찰제나 제한적 최저가 낙찰제 등이다. 이들 입찰방식은 모두 무제한 최저가 낙찰제에 대한 폐혜를 보완한 것들이다.

이를테면 적격심사낙찰제는 최저가에 입찰한 자로서 프로젝트 이행 능력이있는자를 심사한 후 결정하는 것이고 제한적 최저가 낙찰제는 최저가 입찰자가운데 예정가격의 88%에 접근하는 금액을 적어낸 자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낙찰제로 여겨질수 있으나 실상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이 두가지 방식의 낙찰제를 어떻게 구분해서 적용하느냐는 것인데 조달청이 적용하고 있는 기준을 보면 예정가격 10억원 이상은 적격심사낙찰제,10억원 미만은 제한적 최저가 낙찰제 식이다.

최근 왠만한 정부·공공부문 프로젝트 규모가 수십억∼수백억원에 이르고있는 것을 감안하면 현재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입찰방식은 사실상 적격심사낙찰제 뿐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적격심사낙찰제의 경우 소프트웨어산업 현실을 반영할 수있는 적격 심사 세부기준이 법으로 제정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한편 소프트웨어패키지 부문에서도 구매제도가 존재하고 있으나 그 규정이용역개발 부문처럼 비현실적이거나 아예 쓸모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소프트웨어패키지는 현재 변압기나 통신기기 등과 함께 지난 95년 8월 고시된 종합낙찰제 대상품목에 포함돼 정부·공공부문의 구매 원칙에 적용받고있다. 종합낙찰제는 품질·성능·효율성 등을 고려한 제조·구매계약 방식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으나 실제 선정 과정은 대상 품목에 대한 총 에너지소모비를 주된 평가항목으로 삼고있을 만큼 어처구니 없는 제도이다. 소프트웨어 패키지의 가격 결정은 기술동향이나 시장논리에 따라 이루어져야하는 것인데 종합낙찰제에서는 이같은 세부기준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고있는 것이다.

정부·공공부문의 소프트웨어패키지 구매는 일반적으로 총무처가 마련해시행하고 있는 행망용 소프트웨어 선정 및 구매절차에 따르고 있다.

이 절차는 종합시행계획(총무처)> 신청제품 접수(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시험인증(한국전산원)>제3자 단가계약(조달청)>최종 확정(총무처)>사후관리(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등 6단계로 돼 있다.

이같은 단계를 거쳐 선정돼 정부·공공기관에 공급할 수 있는 행망용소프트웨어는 모두 29종에 이른다. 그런데 29종 가운데 28종이 현재 컴퓨터환경의 대세와는 무관한 도스용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 제품 선정 작업은 93년 이후 현재까지 단 한번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점은 29종의 소프트웨어 가운데 지금 당장 정부·공공기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구매절차가 국내 소프트웨어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라는 것은두말할 나위가 없다. 행망용 소프트웨어 구매절차를 대폭 개선하거나 폐지를주장하고 있는 업계의 요구가 설득력을 갖고 있는 것은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서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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