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컴퓨터 파노라마 (27);방황기 (2)

80년대 초반,그러니까 5공화국 초기 정부의 컴퓨터 국산화에 대한 열의와맹신은 3~4공화국 때에 못지 않았다. 당시 신문·잡지의 관련 기사나 관계자들의 회고를 들어보면 그 강도가 오히려 훨씬 강했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한번 정해진 정부의 업무처리규정이나 시행령 같은 것도 정부의 컴퓨터국산화 의지 실현에 필요하다면 심지여 개정 보름여 만에 다시 개정해 버리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회(21회)의 본란에서는 70년대 말 「전자계산 도입 심의기준」에 이어 80년 11월 과기처가 새롭게 마련한 「전자계산조직 도입 승인 기준」에대해 적은 바 있다. 또 이 기준이 일정한 조건만 갖추면 누구나 컴퓨터 도입(수입)이 가능케 한 일종의 자동 승인 체제였다는 것도 설명한 바 있다.

당시 과기처에는 「전자계산조직 도입 승인 기준」 말고도 이 기준의 시행세칙격인 「전자계산조직 도입 업무처리 규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는 컴퓨터의 도입 승인 신청서 제출 요령이나 양식 업무 또는 수입 추천업무 등의규정을 골자로 하는 것으로서 77년 제정 이래 81년 6월 8일 까지 모두 3번의개정이 이뤄졌다. 그런데 이 규정이 3차 개정이 있은 후 정확하게 16일만인6월 24일 순식간에 4차 개정이 이루어 지는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정부의 4차 개정에 대한 뜻은 몇 달만에 곧이어 2가지 결과로 나타났다.

그 하나는 같은 해 7월3일 정부가 86년까지 1백35억원의 연구개발 자금을 민간 업체에 지원하는 등 컴퓨터 국산화를 국책사업으로 설정했다는 발표였다.

또 하나는 그로부터 2개월 뒤인 9월4일 컴퓨터 국산화 지원에 대한 첫 조치로서 컴퓨터도입 심의 기관인 이전자계산조직개발조정위원회는 이날 열린제5차 도입심의회의에서 한국은행·한국전력 등 공공 기관이 신청한 87대의CRT터미널과 64대의 데이터 모뎀의 도입을 전격 중단시킨 것이다. 이들 제품은 IBM·후지쯔·NCR 등 외국계 회사로부터 도입하려던 것이었는데 중단 이유는 이 품목들이 국산화를 추진하는 회사들에 의해 국산화됐거나 국산화 중이어서 이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이었다.

「전자계산조직 도입 승인 기준」에서 공급자(수입자)와 수요자(사용자)가일정한 조건만 갖추면 도입 자동 승인된다던 것이 엇그제의 일이었던 터라외국 컴퓨터 공급 업계·국산화 업계·사용자 등 3자가 일희일비할 수 밖에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전자계산조직 도입 업무처리 규정」의 3차 개정의 골자를 보면 도입 심의 기준에서 국산화 여부에 관련,3개 조항을 추가 보완하는 것이었다. 도입기종이 표준화와 공동 활용 목적에 부합하지 않거나 국산 대체가 가능한 것은 심의를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불과 16일 만에있은의 4차 개정에서는 여기에 다시 공공기관과 민간업체에 대한 심의 기준을 달리 적용한다는 것이 추가된 것이다.

3차 개정 때만 해도 공공·민간 구분이 없이 30만 달러 이상 컴퓨터에 대해서만 일률적으로 심의 기준을 적용했는데 4차에서는 공공기관의 경우 10만달러 이상으로 그 대상을 대폭 낮춰버린 것이다.

엄격한 심의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은 그 대상에 국산화 품목이 있을 경우는 외국 기종의 도입을 사실상 금지한다는 의미였다. 한국전력 등이 도입 신청했다 기각당한 CRT터미널과 데이터 모뎀은 동양나이론(효성컴퓨터)·대한전선·동양정밀·삼성전자 등에 의해 국산화가 진행되고 있는 분야 였다.

이와관련 당시 우리나라 정보산업 정책을 실무 총괄 과기처 정보산업국장최영환은 한 신문 인터뷰에서 『국산화 진전도에 따라 공공기관에 대해서는국산제품을 활용토록 조치할 것이며 민간 부문에 대해서도 이 조치를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언급,파문을 일으킨다. 국산화 품목들을 성능이나 안전성에관계없이 우선 통제 가능한 공공기관부터 반 강제로 공급함으로써 정부의 컴퓨터 국산화 시책을 강력하게 밀어부치겠다는 방침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당시 언론들은 「전자계산조직 도입 업무처리규정」에 대한 3~4차 개정에대해서는 직접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한국은행 등이 신청한 CRT터미널과 데이터 모뎀이 전자계산조직개발조정위원회의 결정에 의해 도입 중단됐다는 뉴스에 대해서는 대서 특필하는 열의를 보였다.

이같은 결정에 대해 언론들은 외국컴퓨터공급업계·국산화 업계·사용자등 3자의 서로 다른 입장을 대변하는 내용들을 싣고 있어 흥미롭다. 당시 신문·잡지 내용을 재구성하여 각각의 입장을 들어보자. 당시 정부정책이 얼마나 강성이고 독단적이었나를 그대로 보여준다. 우선 외국컴퓨터 공급업체들의 입장.

『(비록 외국제품을 수입해오긴 하지만) 우리도 CRT분야에 국산 시제품을갖고 있다. 국산화 시책은 찬성하지만 이번 조치에 앞서 어떤 경과조치 같은것이 필요했었다고 본다. 권고사항이었던 것이 갑자기 의무사항으로 바뀌면사용자 입장에서도 크게 당황할 것이 아니겠는가...』동아컴퓨터(NCR공급선),R전무

『이 시점에서 완전히 국산으로 대체한다는 것은 기술과 노하우 측면에서무리이다. 앞으로 1∼2년 후 정식제품이 나온다고 하는데 그때까지는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니냐. 국산화 조치는 찬성하지만 컴퓨터를 국산화 한다는 명목으로 국산화 업체만 보호하는 결과만을 낳을까 우려된다』스페리코리아(현한국유니시스),K상무

『이번 조치는 국가에서 여러 면을 고려한 조치로 생각되기 때문에 (성급하다느니,너무 늦었다느니) 가타부타 애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책은 사용자들이 전산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수 있는 방향으로 정해져야 한다는 것이 내개인적 소견이다』한국IBM,K상무

『이번에 한국전력에서 도입키로 한 CRT는 더미형이 아닌 인텔리전트형이다. 물론 국산대체가 불가하다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그럴 경우 더미터미널에 고가의 미니컴퓨터를 붙여야 하는 2중 낭비가 발생한다. 무조건 묶어둘 것이 아니라 기술적·기능적으로 세분해서 조치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화콤코리아(현 한국후지쯔),H상무

사용자 입장 역시 공급업체들과 대동소이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른 은행과 달리 우리는 이번 도입 금지 결정에 묶인 품목이 CRT 3대 밖에 않돼 큰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여 일단 다행스럽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1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뒀으면 하는 생각이다. 업계나 사용자들이 준비할 수 있도록 정책에 대한 사전 홍보가 필요다는 것이다』한국외환은행 K부장

반면 국산화 업체들은 외국 공급사들을 의식,적어도 겉으로는 침착한 태도를 일관하고 있으나 정부조치가 매우 흡족함을 굳이 숨기지는 않고 있다.

『터미널이나 마이크로컴퓨터 수입을 전면 금지하라고는 할수 없다.그러나컴퓨터산업을 육성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이번 조치는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국산이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고 미국 등에 비해 크게 뒤졌다고는 하나 한번만든다고 결심하면 어떤 것이든 해낼 자신이 있다』대한전선,K부사장

『우리 회사 제품은 지금 당장 적용 가능하다. 따라서 이제는 사용자들의인식 제고와 이에 대한 정부의 홍보 등 후속조치만 남아 있다. 선진국의 기술개발 사이클 때문에 우리가 전면적으로 도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이번처럼 가능한 범위부터 설정,추진하면 해결할 수 있다』동양나이론,K상무

『국산에 대한 선입관은 무서운 것인데 누구를 탓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문제가 있다면 IBM 등 외국회사들이 본체에 자사가 개발한 터미널만 부착할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펴왔다는 것이다. 이번 조치를 계기로 국산 사용자에대한 세재 혜택등 현실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동양정밀,K전무

한편 80년대초 국내 업계의 컴퓨터 국산화 움직임은 분야별로 다양하게 시도됐던 70년대의 그것과는 달리 보다 구체화되고 있음을 볼수 있다. 예컨데70년대 중반이후 부터 본격화된 국산화 움직임은 대략 3가지 방향으로서 하나는 동양전산기술이 미국 디지탈(DEC)사의 핵심부품을 들여와 미니컴퓨터를조립 생산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금성전기 등이 중심이 돼 당시 급부상한인텔사의 8080 마이크로프로세서 기반의 8비트 마이크로컴퓨터를 개발하는일이었다. 세번째는 중대형컴퓨터용 한글CRT단말기의 개발이었다. 이 세번째움직임이 바로 80년대 초반 컴퓨터 국산화 움직임에 직접적인 뿌리가 닿고있다고 볼수 있다.

80년대 초반 업계는 정부의 강력한 국산화 시책에 힘입어 CRT와 모뎀등우선 가능한 분야부터 파고 들었는데 이때부터 유행한 말이 이른바 『국산고유 모델의 개발』이라는 말이었다.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오리콤(동양전산기술의 후신)·삼성전자·금성반도체·동양정밀·삼성전관 등이었는데 이들은 70년대 말 모방 단계에서 벗어나정부 시책을 토대로 선진 원천기술을 그대로 국산화하겠다는 의지에 불타 있었다.

<서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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