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유통의 요람 전자상가 지상여행 (2);나진상가

「용산전자상가의 터줏대감」. 나진전자월드(나진상가)를 부르는 별칭이다. 청과물시장에서 최첨단 전자유통단지로 변신한 용산역사(?)의 산 증인이기 때문이다. 또 세운상가에서 시작된 전자유통이 뿌리를 내리고 꽃 피운 곳도 이 곳이다. 따라서 나진전자월드에서 처음부터 자리를 잡고 오늘까지 영업을 하고 있는 붙박이 고참사장들의 나진전자월드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88년 용산전자상가가 건립되면서 세운상가의 내로라하는 업체들이 대거 몰려왔다. 컴퓨터·가전·오디오·조명 등. 그렇게 시작된 용산전자상가가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차별화되어 갔다. 가전전문상가가 생겨나고 컴퓨터·부품전문상가가 태동했다.

「상가의 전문화바람」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꿋꿋하게 변하지 않은 곳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나진전자월드이다. 나진전자월드는 종합전자상가이다. 가전·컴퓨터·조명·오디오에서부터 게임기·공구에 이르기까지 취급하지 않는 품목이 거의 없다. 용산전자상가내 최대의 면적과 최대의 매장수를자랑하는 상가이기도 하다. 상우회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조직력이 나진전자월드가 자랑하는 강점이다.

나진전자월드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재미있다. 종로에서 용산으로 매장이이전되면서 사장과 종업원이 각기 다른 매장의 사장으로 변했다. 전자랜드매장이 주로 사장들이 입점한 상가였다면 나진전자월드는 주로 종업원에서사장으로 변신한 사람들이 입점한 상가이다. 「자수성가의 요람」이라고 할수 있다.

따라서 사장을 꿈꾸는 청운의 엔지니어들에게 「성지」와 같은 곳이기도하다. 청과물시장을 개조한 건물에서 풍기는 모습이 「첨단」의 이미지와는동떨어진 옛날 시장을 연상케 하지만 반대로 「싸다」는 이미지도 함께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이 곳의 전자제품은 다른 상가보다 비교적 가격이 싸다.

가전의 경우 중간도매상이라는 특색이 있다. 컴퓨터는 대부분 조립인 「맞춤PC」가 주를 이루고 있다. 88년 개장 이후 저가판매의 이미지를 굳게 심어온탓에 고정고객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곳 매장이 무조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기업 부침의 역사속에서 문을 닫는 자본력이 취약한 영세업체도 적지 않다. 초창기 설립멤버가 채 30%도 안되는 상황이 이를 반증한다. 그러다 보니 제품의 사후서비스가 제대로 되지 않고 이것이 상가 전체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따라서 요즘 나진전자월드는 「이미지 부흥운동」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이른바 「용산 르네상스」를 주창하며 이미지 개선활동에 상가 입주업체가발벗고 나서고 있다. 이 곳 매장을 지키는 원년멤버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용산 르네상스」는 각종 이벤트를 중심으로 고객만족을 최우선시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특히 나진전자월드 내 컴퓨터상가인 컴퓨터월드가 이같은 「용산 르네상스」에 가장 적극적이다. 6백개 업체가 밀집한 컴퓨터월드에서는 부도업체의제품을 구입한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공동 AS센터」 설립을 추진중이어서 이달중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또 오는 20일 벼룩시장을 개설해대대적인 할인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상우회에서 품질보증서를 발행해 컴퓨터 구입고객에게 믿고 살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우고 있다.

뿐만 아니다. 나진전자월드 입구에 고객의 쇼핑편의를 돕는다는 취지로 이미 안내소 건물을 세웠다. 영어회화가 가능한 도우미를 채용해 외국손님에게도 친절한 가이드가 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또 정품SW 사용을상우회가 앞장서 실천하고 있다. 「불법SW 단속 자경단」을 만들어 한때 불법SW의 온상으로 불리던 이미지를 말끔히 씻어내고 깨끗한 상가 만들기에 부지런히 뛰고 있다.

그러나 나진전자월드가 가장 자랑하는 것은 역시 싼 가격이라고 입주업체상인들은 말한다. 조립PC의 경우 같은 급의 메이커PC에 비해 30% 이상 싸다는 것. 필요한 기능에 따라 자유자재로 부품을 추가할 수 있어 웬만한 PC마니아들은 이 곳 컴퓨터월드를 자주 찾는다. 최근 부품과 컴퓨터 경기의 침체로 가격이 내려 「맞춤PC」를 원하는 고객에겐 더없는 쇼핑기회가 되고 있다.

2백98개 업체가 밀집되어 있는 가전매장 또한 중간도매상으로서의 역할이크게 부각되어 이 곳을 찾는 소비자들의 발길이 부쩍 늘고 있다. 공중방송장비(PA)도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19동과 20동을 중심으로 음향기기업체만 1백76개가 입주해 있다. 1백개 업체에 이르는 조명매장은 10동에서 15동에 이르기까지 고루 분포돼 있으며 전기기자재를 포함한 공구매장도 1백32개 업체가 활발한 영업활동을 벌이고 있다. 2만여평의 연면적에 총 1천4백60개 업체가 입주한 매머드급 상가로 용산전자상가의 30%를 넘는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관리사인 나진산업(대표 박희진)은 67년 설립돼 69년 용산 청과물시장 개설허가를 취득한 후 냉동·냉장업을 주력사업으로 해오다 87년 나진전자상가로 화려한 변신을 꾀했다. 무수한 젊은 엔지니어들이 꿈을 키워왔고 실패의쓴잔을 마셔왔던 오랜 역사의 상가인 만큼 이제 내부에서의 화려한 변신에온 신경이 집중돼 있다.

19동 컴퓨터월드 송일석 상우회장은 『나진전자월드 전체가 새로 태어난다는 각오로 분위기 쇄신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상우회를 주축으로 체계화된 업체관리와 각종 행사를 통해 고객과 더 가까운 상가로 존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신뢰가 바탕이 된 상품판매가 우선 전제돼야 함에 따라 각종 홍보를 통한 나진전자월드 「얼굴 알리기」에도 투자를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가는 이미지로 승부한다. 나진전자월드가 예부터 싼 가격으로 이미지를굳혀왔고 지금도 저가를 최대의 무기로 하는 만큼 이 색깔로 일관하겠다는것이 전자월드가 내건 「황색론」이다. 「황색론」은 나진전자월드 건물이전부 황색을 띠고 있어 황색 건물로만 들어가면 언제나 「싸다」는 인식을하게끔 하는 것이다. 결국 저가라는 무기는 어떤 서비스보다 강력한 구매흡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최대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나진전자월드가 주장하는 논리이다.

이와 함께 세계화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장기계획을 세우는 것도 동양 최대의 전자상가인 용산전자상가가 할 일이고 그중 최대의 상가인 나진전자월드의 역할도 그만큼 커지는 것이다. 영세한 점포들이 모여 이룬 나진전자월드는 흡사 「개미군단」을 연상케 하지만 전체가 「세계화」라는 철갑으로 무장했다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막대한 힘을 발휘할 것에 대해 의심하는사람은 없다. 이것이 지금 나진전자월드가 꿈꾸는 21세기 세계화전략이다.

〈이경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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