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프로세서 혁명과 마이크로컴퓨터
미국의 벤처기업 인텔이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 「4004」를 개발한것은 1971년이었다. 「4004」는 외부와 데이터를 주고 받는 버스 단위가 4비트로서 현재의 64비트 펜티엄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단순 비교해 보면 그 단위가 16배나 적은 것이다.
「4004」는 70년대 후반의 마이크로컴퓨터, 즉 PC혁명의 발단이 됐던 「8088」마이크로프로세서의 할아버지뻘이 되는 제품이다. 「4004」가 「8088」로 가기 전에 거쳤던 단계가 바로 아들뻘인 「8080」이다.
미국에서 「8080」 또는 그 계열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로 채택한 마이크로컴퓨터가 출현한 것은 75년 MITS라는 소기업에 의해서였다. 국내에서는 77년 7월 금성전기(현재는 LG전자·LG산전 등으로 분산합병됨)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공동 개발한 「GSCOM-80A」가 그 효시이다.
「GSCOM-80A」는 순수 국내 기술진에 의해 개발된 최초의 국산 마이크로컴퓨터였고 장차 마이크로프로세서 전성시대를 예고했다는 점에서 국내외 관심이 집중된 제품이었다.
「GSCOM-80A」는 그러나 성대한 발표행사까지 치뤘지만 경험부족으로 실전배치나 상업화에는 실패했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때문에 「GSCOM-80A」보다는 81년에 발표돼 상업화에 성공한 삼보전자엔지니어링(현 삼보컴퓨터)의 「SE 8001」이 최초의 국산 마이크로컴퓨터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다시 인텔의 「4004」에 관한 얘기로 되돌아 가자. 「4004」에 집적된 트랜지스터수는 2천2백5개로 알려지고 있다.(참고로 펜티엄은 4백만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돼 있다) 인텔은 「4004」를 이용해서 「마이크로컴퓨터시스템4」라는 마이크로컴퓨터를 개발했다. 이 컴퓨터는 그러나 오늘날 숫자계산전용의 전자계산기(Calculator)정도의 성능을 발휘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마이크로컴퓨터시스템4」의 CPU로 채택된 「4004」의 계산능력은 46년에개발된 세계 최초의 컴퓨터 「에니액」보다 나았다. 1만8천개의 진공관으로구성된 「에니액」은 무게만 30톤이었고 전체 외형은 왠만한 덤프트럭만했다. 반면 가로세로 4x3mm였던 「4004」는 실제 크기가 「에니액」의 영문자인 ENIAC에서 첫자와 두번째자인 E자와 N자를 합친 것에 불과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4004」는 단순히 크기가 작고 성능이 뛰어나다고 해서 주목을 받은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전문가나 다른 반도체회사 관계자들만의 관심사였겠지만 「4004」개발이 갖는 진짜 의미는 다른 데에 있었다.
「4004」는 프로그램을 기록된 칩과 데이터 입출력 통로가 되는 칩 등 2개의 메모리칩으로 구성돼 있었다. 프로그램 칩 부문은 CPU로서 마이크로프로세서 자체를 구동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입출력 통로는 처리를 위해 외부로부터 불러온 데이터를 호출해놓는 곳으로서의 역할이었다. 이를테면 컴퓨터의 중앙 처리과정과 단계를 그대로 축소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인텔은 「4004」후속으로 74년 트랜지스터 집적도가 4천5백에 이르고 데이터를 주고 받는 단위가 8비트인 「8080」을 발표하게 된다. 「8080」은 「4004」보다 20배나 빠른 연산속도를 자랑했다. 인텔이 홀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가운데 75년에는 모토롤러가 「8080」에 대응하는 8비트 「M6800」을 발표했고 텍서스 인스트루먼트(TI)와 제너럴 인스트루먼트(GI) 등이 잇따라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에 뛰어들었다.
벤처기업 MITS이 사상 최초로 「8080」을 탑재한 마이크로컴퓨터 「알테어」를 발표한 것은 모토롤러가 「M6800」을 발표할 즈음인 75년 이었다. 「알테어」는 75년 한해 동안에만 2천대가 제작돼 모두 팔려나갔고 MITS사는 졸지에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그런데 MITS의 창업자가 누구였을까. 바로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게이츠와 그의 친구 에드 로버츠였다. 「알테어」의 성공을 처음부터 지켜본본 빌 게이츠는 최근에 출간한 한 전기에서 『마이크로컴퓨터의 장래가 매우밝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꼈다』고 술회하고 있다.( 「빌게이츠의 왕국」).
그해 4월 선배인 폴 알렌과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한 것도 이같은 직감에 의해서였다고 밝히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첫 소프트웨어 작품은 「알테어」에서 실행할 수 있는 베이식 언어였다.
75년 말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 뷰에 「바이트숍」이라고 이름 붙여진 최초의 마이크컴퓨터 소매점이 등장했다. 컴퓨터를 텔레비전 수상기처럼거리의 쇼윈도에 전시해 놓고 판매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마이크로컴퓨터의 양대상맥인 애플이 탄생한 것은 76년이다. 널리 알려진얘기이지만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우즈니액이 함께 설립한 애플사는 같은해4월 「M6800」을 CPU로 탑재한 「애플Ⅰ」을 발표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1년만인 77년 4월에 발표한 「애플Ⅱ」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세계는 바야흐로마이크로컴퓨터((당시까지는 PC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았다) 열풍에 휩싸이게된다.
일이 이쯤 되자 시장조사회사들은 75년 당시 5천만 달러에 불과했던 반도체시장 규모가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가세로 76년에 1억5천만 달러로 3배 팽창했다고 발표했고 80년에는 4억5천만 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알테어」에서 「애플Ⅱ」에 이르는 마이크로컴퓨터 열풍은 76년부터 국내에도 몰아치기 시작했다.
한국의 「알테어」를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는 76년 11월 금성전기 전산실과KIST수치제어연구실 공동으로 시작됐다. 금성전기 측은 주로 자금을 대고 KIST 측은 실질적인 연구개발 인력을 투입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인물들은 KIST 측에서 구지회(전 가인시스템사장)·이만재(현 숙대 교수)등 당시명성을 날리던 20∼30대 젊은 두되들이 주를 이루었고 금성전기 측에서는 유황빈(현 광운대교수)등이 가세했다.
이들이 개발한 것은 8비트 마이크로컴퓨터 「GSCOM-80A」와 이 컴퓨터에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는 잉크제트프린터 「GSJET-1200」와 도트매트릭스 방식의 한글지원프린터 「GSM 2000」등 주변장치였다.
「GSCOM-80A」은 「8080」계열로 인텔이 76년 발표한 「8080A」를 CPU로탑재하고 있었다. 「8080A」는 64KB의 메모리를 지원할 수 있었고 「8080」보다 약간 작은 4천개의 트랜지스터 집적도를 갖고 있었다. 클럭속도는 2MHz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주기억용량은 8KB였고 사이클 주기가 5백ns(나노秒)나 되는 램(RAM)이 기억장치로 사용됐다. 8KB의 주기억용량은 당시 디지탈이큅먼트(DEC)나 휴렛팩커드의 미니컴퓨터 기종들이 주로 16~32KB를 채용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많은 편에 속하는 것이었다.
「GSCOM-80A」에 채택된 데이터 버스는 미국에서 「8080」용으로 설계돼인기가 높았던 「S-100버스」였다. 「S-100버스」는 1백개의 유니버셜 형 버스와 22개의 슬롯(장치 연결구)을 갖고 있었다. 「GSCOM-80A」가 순수 국내기술진에 의해 제작됐다는 것은 바로 이 「S-100버스」에 마이크프로세서·기억장치 등 핵심부품과 각종 입출력장치 등을 논리적으로 배열시킨 것을 의미한다. 즉 핵심부품의 배열을 독자적으로 설계해낸 것이다. <그림 참조>
「GSCOM-80A」의 디스크운용체제(DOS:Disk Operating System)로는 76년 미국 디지탈리서치사가 발표한 「8080」시리즈용 「CP/M-80」이 채택됐다. 프로그램 개발언어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알테어」용 베이식으로 결정됐다.
「CP/M-80」의 주요 명령어로는 editor·assembler·assign·list·sysgen·ddt·pip·basic 등으로 81년 발표된 「MS-DOS」의 명령어에 그대로 채용됐거나 큰 영향을 줬던 것들이다.
베이식은 당시까지 주력 프로그램 언어였던 포트란이나 코볼 등을 능가하는 고급언어로서 과학기술 및 일반사무용 응용프로그램 작성에 탁월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으로 꼽혔다.
77년 7월 럭키빌딩 종합전시장에서 발표된 「GSCOM-80A」는 용도 및 주변장치의 구성에 따라 일반 사무용, 교육 및 과학기술용, 중대형 컴퓨터 단말기용, 계측제어용 등 4종류의 모델로 나눠졌다.
일반 사무용은 다양한 주변장치를 접속할 수 있어 관공서·일반기업체 등에 설치할 수 있도록 한 모델로서 플로피디스크드라이브와 카세트테입레코더를 보조기억 장치로 사용할 수 있었다.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주된 사용자층으로 한 과학기술용 모델은 베이식언어를 얹어 과학기술 계산을 쉽게 처리할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었다. 모뎀을내장한 단말기용 모델은 스탠드얼론 기능을 가지면서 중대형 컴퓨터에 접속되면 배치터미널로도 사용이 가능한 인텔리전트형 컴퓨터였다.
계측제어용 모델은 관련 인터페이스장치를 부착, 공작기계·전자통신·의료기기·측정기의 컨트롤러로 사용할 수 있었다.
「GSCOM-80A」와 함께 개발된 잉크제트 방식의 「GSJET-1200」프린터 역시「8080」시리즈는 아니었지만 제어장치로서 별도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장착하고 있었다.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내장은 이 프린터가 어떤 컴퓨터에도 온라인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장착한 마이크로컴퓨터나 주변장치의 잇따른 출현은바야흐로 마이크로프로세서 전성시대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만해도 마이크로프로세서나 마이크로컴퓨터에 대한 대형컴퓨터공급회사들의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70년대 후반당시 IBM·스페리·컨트롤데이터 등 기업관계자들이나 교수들의 기고문을 보면 마이크로프로세서나 마이크로컴퓨터를 대형 컴퓨터의 경쟁자로서보다는새로운 단위 부품 쯤으로 여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역사의 아이로니였을까, 과학기술의 진보였을까. 그로부터 20년쯤 지난 오늘날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대형 컴퓨터의 위상은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서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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