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컴퓨터 파노라마 (19);도약기 (5)

컴퓨터 국산화의 세가지 갈래

70년대 중반이후 컴퓨터 국산화는 대략 세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하나는 동양기술전산(OCE) 등이 미국 디지털이퀴프먼트(DEC)의 CPU보드 등핵심부품을 들여와 미니컴퓨터를 조립생산하는 방법이었다. 이를테면 DEC에서 공급받은 핵심부품에 국내에서 생산된 부품을 결합, 국산화율을 높여나가는 것이었다.

두번째는 당시 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던 인텔사의 8080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들여와 8비트 마이크로컴퓨터 또는 마이크로프로세서 내장 주변기기를개발, 생산하는 일이었다. 마이크로컴퓨터 생산은 70년대 후반 한국전자기술연구소, 80년대 초 삼보컴퓨터로 이어지면서 오늘날 마이크로프로세서에 기반한 PC산업을 일구는 기초가 된다.

세번째는 가장 활발했던 분야로 중대형 컴퓨터용 CRT단말기를 한글화하는작업이었다. 한글정보가 단말기 화면에 표시될 때 자모 모아쓰기 형태로 단번에 나타나는 기술이 개발된 것도 이때부터다. 한글 CRT단말기 개발은 우리나라 컴퓨터 이용률을 폭발적으로 증대시키는 요인이 됐고 컴퓨터 한글처리기술의 토양이 되기도 했다.

동양전산기술이 시도한 미니컴퓨터 국산화는 상당히 모험적이었을 뿐 아니라 그때는 획기적인 작업이었다. 동양전산기술은 DEC측과 두종류의 거래를하고 있었는데 하나는 당시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있었던 미니컴퓨터 「PDP 8」·「PDP 11」 등 「PDP」시리즈를 국내에 공급하는 총대리점 역할이었고또 하나는 PDP 11을 국내에서 직접 조립생산, 자기상표로 공급키로 한 일이었다.

당시 국내 최고의 컴퓨터 기술자들이 몰려있던 동양전산기술의 DEC 총대리점 사업은 매우 탁월한 것이었다. 70년 중반에서 70년대 말까지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기종이 PDP시리즈였다는 사실은 이를 잘 입증해준다. 참고로 75년 2월 설립된 동양전산기술은 79년까지 4년 동안 모두 58대의 컴퓨터를 국내 공급했는데 이 수치는 67년 진출한 한국IBM이 79년까지 12년 동안 공급한75대에 이어 종합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동양전산기술이 PDP 11을 조립생산하기로 결정한 것은 바로 이같은 판매실적에서 얻은 자신감에서 비록됐다. 동양전산기술은 초기에는 주요부품을 모두 DEC등 미국회사에서 조달해 PDP 11을 조립생산할 작정이었다.

예컨대 DEC의 PDP 11용 CPU보드 장치, 메모렉스사의 디스크장치, 컨트롤데이터의 CRT단말기, 데이터프로덕츠의 프린터, 도큐먼테이션사의 카드판독기등을 각각 별도로 구입, 이를 완제품으로 조립해내는 일종의 OEM방식이었던셈이다. 자기상표는 회사의 영문명칭 「Oriental Computer Engineering」에서 딴 「오리콤(ORICOM)」으로 정해졌다.

이렇게 해서 76년 처음 조립생산해낸 것이 바로 「오리콤540」이다. 오리콤540 시리즈는 기억용량에 따라 32에서 1백92까지 모델이 다향했던 것으로전해지고 있다. 오리콤540의 초기고객으로 동양나이론과 인하대학교 등이 기록에 남아있다.

오리콤540 개발 당시 동양전산기술에 재직했던 인물들을 보면 이윤기(전엘렉스컴퓨터 사장)·권순덕(현 한맥소프트웨어 사장)·김천사(현 두산정보통신 사장)·김병각(현 한국디지탈 전무)·김주현(현 삼성전자 전무)·김영한(현 하이테크리서치 소장)·김영식(현 엘렉스컴퓨터 사장)·최규대·이정희(현 삼보컴퓨터 사장)·김의현 등 20~30대의 젊은이들이었다.

오늘날 이들이 하나같이 우리나라 컴퓨터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위치에 올라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이 동양전산기술에서 추진했던 컴퓨터 국산화의 목표는 상당히 원대하고 체계적인 것이었다. 이들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라는 두가지 측면에서단계별로 접근하고 있었는데 예컨대 하드웨어의 경우 기기단위OEM→부품단위OEM→부품생산을 거쳐 완전 국산화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또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응용프로그램 개발→응용프로그램 패키지화→운용체계 개발에 이른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동양전산기술의 미니컴퓨터 중장기 국산화 추진계획은 그러나 첫작품인 오리콤 540 시리즈가 동급 외국산 기종에 비해 가격 경쟁력에서 현격한 열세를면치 못하면서 1년도 되지 않아 위기를 맞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거액을 투자한 오리콤540의 판매난이 가중되면서 사세가 기울었고 마침내는 회사경영권이 80년을 전후해 서서히 두산그룹으로 넘어가 이 계획은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하지만 동양전산기술의 신화는 다른 기업에 그대로 이어져 70년대 후반 삼성전자와 금성사가 각각 미국의 휴렛패커드와 하니웰 기종을, 효성그룹의 동양나이론은 일본의 히타치 기종을 각각 국내 조립생산키로 하는 결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금성전기가 미니컴퓨터보다 한단계 아래인 마이크로컴퓨터나 프린터 등 주변장치의 국산화를 시도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동양전산기술의 오리콤 540영향을 받은 결과라 할 수 있다.

금성전기는 76년 11월부터 77년 7월까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수체제어연구실과 공동으로 국내최초 마이크로컴퓨터 「GSCOM80A」와 역시 최초의국산 잉크제트프린터 「GS JET1200」 개발에 성공하게 된다.

금성전기와 KIST가 이때 GSCOM80A의 CPU로 장착했던 것이 바로 미국의 인텔사가 75년 발표한 8비트용 8080마이크로프로세서였다. GS JET1200 프린터제어에는 모토롤러의 6800마이크로프로세서 기술이 채용되기도 했다.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컴퓨터 CPU나 주변기기 제어에 처음으로 채택되는 순간이었다.

GSCOM80A는 특히 국내처음으로 디스크 오퍼레이팅 시스템 즉 도스(DOS)운용체계를 채용한 컴퓨터로 기록되고 있기도 하다. 이때 사용된 도스는 「MSDOS」의 할아버지격인 미국 디지털리서치사(92년 노벨사에 합병됨)의 「CP/M80」이었다. GSCOM80A는 또 응용프로그램 개발언어로 포트란이나 코볼이 아닌베이식이 처음으로 사용됐다.

77년 7월 6일 서울역 럭키빌딩 종합전시장에서는 GSCOM80A 마이크로컴퓨터와 GS JET1200 잉크제트프린터, 「GSM 2000」도트매트릭스 프린터 등 3종의국산컴퓨터 발표회가 열렸는데 보기 드문 성황을 이뤘다.

당시 두개의 중앙일간지는 금성전기가 이날 발표한 3종의 컴퓨터 신제품에대해 『일반 사무용, 교육 및 과학기술용, 전자통신 및 산업기계제어용, 중대형 컴퓨터의 지능형 단말기용 등 그 용도가 무한해 국산컴퓨터 개발역사에획기적인 전환점을 이루게 됐다』고 적고 있다. (GSM80A·GS JET1200·GSM 2000 등은 80년대에 우리나라 컴퓨터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다음 호에서 더욱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보기로 한다)

한편 당시 업계에서 가장 활발했던 모아쓰기 한글CRT단말기의 개발은 78년부터 삼성전자와 금성사 등이 주도했다.

CRT단말기란 음극선관(Cathode Ray Tube)을 이용해 컴퓨터 처리결과를 화면에 출력하는 장치로 최근까지도 중대형 컴퓨터용 단말기로 가장 많이 사용됐다. 이 단말기는 자체에 처리장치를 갖지 않는 대신 키보드를 통해 주컴퓨터에 명령어를 보내고 그 처리결과를 화면으로 출력해주는 역할을 했다. 중대형 컴퓨터는 보통 수십대에서 수백대의 CRT단말기를 접속해 사용자들이 주컴퓨터의 자원을 시분할(Time Sharing) 방식으로 공유할 수 있었다.

CRT단말기의 한글화는 주컴퓨터에서 불러오는 정보를 CRT화면에 한글로 표시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한글CRT단말기는 IBM·컨트롤데이터 등에서개발돼 상품화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단말기에 출력되는 한글정보는 한글자모 한 자에 영문 알파벳 한 자를 대응해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많」이나 「옳」처럼 복자음 받침이 오는 한글 한 자를 표현할경우에는 영문 알파벳 넉 자를 한꺼번에 묶어 복잡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글자들은 화면상에 자모 단위로 출력돼 영문출력에 비해 처리속도가 크게 떨어졌고 인자품위도 형편이 없었다.

이같은 한계를 극복, 78년 3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한글 모아쓰기 CRT단말기를 개발한 곳은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는 당시 판매에 호조를 보이고 있는 휴렛패커드의 미니컴퓨터 기종 「HP 3000」에 접속해 사용할 수 있는 한글 모아쓰기 CRT단말기 「ST 101」을 동방생명빌딩(현 삼성생명빌딩)에서 발표, 화제를 모았다.

뒤이어 코트로닉스사가 78년 7월 당시 미국 미주리대학 교수이던 김현영의도움으로 두번째 모아쓰기 한글CRT단말기를 개발했다. 코트로닉스 제품의 특징은 모아쓰기용 한글문자 생성기 프로그램을 롬(ROM)에 내장함으로써 시스템 안정성이 뛰어나다는 점이었다. 또 롬 속에는 초성 3벌과 중성 2벌 및 1벌의 종성이 들어있어 인자의 품위를 한층 높였다는 평가를 받아냈다.

78년 10월에는 국내에서 세번째로 금성사가 컴퓨터사업부 출범과 함께 모아쓰기 한글CRT단말기 「GDT9720」 개발에 성공했다. GDT9720은 최초로 자음과 모음만의 2벌식으로 키보드자판을 지원한 한글CRT단말기로 기록되고 있다.

모아쓰기용 한글 CRT단말기의 개발은 따지고 보면 한글처리를 소프트웨어적으로 구현한 결과였다. 한글 모아쓰기 처리 프로그램을 개발해 주컴퓨터의기억장치에 설치하거나 롬 반도체에 구워 본체에 내장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한글처리 기술은 80년대 중반에 등장한 청계천한글카드 등 일반 컴퓨터의 한글처리용 확장카드 개발기술로 이어졌고 워드프로세서 등 한글소프트웨어 개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뿐만 아니라 주민등록 조회나 영수증 발행 등 공공기관의 행정전산화 도입시기를 앞당기는 데도 커다란 역할을 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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