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생각] 고령사회..."원로방" 마련을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고령자· 고령사회라는 말을 가능한 쓰지 않는다.

노인들의 위상이 얼마남지않은 인생에 건강도 시들한 부담스런 존재로 비쳐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노인들을 일컬어 미국에서는 상류시민(Senior Citizen), 영국에서는 제3세대(The Third Age), 일본에서는 원숙한 세대(Mellow Age)라고 한다. 그들의 풍부한 경륜이야말로 사회발전을 위한 귀중한 자산이라는 존경의 뜻이포함된 말이다.

또 오랜 세월동안의 희생과 책임에서 해방돼 자아실현을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하는 세대라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국민소득이 늘고 의료혜택이 골고루미치면서 선진국에서는 부유한 장수노인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만 60세이상 연로층이 전국민의 20% 수준에 이르고 있는 나라는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영국 일본 등이다. 미국도 17%에 이르고 있다. 또 이들은 생활걱정이 없는 연금소득자가 대부분이라 만만챦은 구매력을 가지고 있다. 독립심도 강하고 자기관리에도 열심이어서 사회 각계각층에서 정열적인 현역으로 노익장을과시하는 이들이

여기에다 정보통신의 발전은 용의 날개를 붙여준 것만큼이나 왕성한 정보교류를 촉진시켜 사회전반에 걸쳐 무시못할 거대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노인당」이 만들어져 정치세력으로 발전하는 곳도 있고,왕성한 소비자활동으로 산업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주고 있다.

미국에서는 80년대부터 시니어네트(Seniornet)라는 노인들의 pc통신그룹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회원만도 2만여 명을 넘어서고 있어 매년 전국대회가 열릴때에는 「엘고어」부통령이 축하메시지를 보낼 만큼 영향력있는압력단체로 커가고 있다.

일본에서도 「원숙한 사회(Mellow Society)포럼」이란 법인체가 만들어져 그안에 멜로우네트(Mellow net)라는 노인용 PC통신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이미 7천여 명의 회원을 확보해 실버산업의 육성과 인생프로그램 설계등 활발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국내에도 컴퓨터통신을 하는 고령자 모임인 「원로방」이 「하이텔」안에만들어진 것은 92년이다. 그러나 만들어진지 4년도 안돼 60세 이상 회원이 3천 여명에 이르고 있다. 전국 12개 지역에 원로방이 결성돼 인정어린 노인사랑방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도덕성 회복운동을 펴는 이도있고 대학다니는 손자의 리포트를 깔끔하게 워드프로세서로 쳐주는 멋쟁이 할아버지도 있다.

터진 수도관물에 미끄러진 어느 회원은 이사실을 PC통신으로 항의해 해당구청장으로 부터 정중한 사과를 받아낸 이도 있다.

최근에는 인터네트에 원로방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미국, 일본의 노인들과도 교류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이는 PC통신에 푹빠져 사는 열성회원들과몇몇 선각자의 집념어린 노력이 이루어낸 결과다.

우리나라 60세 이상 노령인구는 약 4백만명, 전인구의 9%수준이다. 선진국에 비해 인구비율이나 컴퓨터 마인드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세에 있다. 더구나 젊은이들까지 전통적인 필기문화에 머물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70년대 노인이 PC를 자유롭게 조작한다는 것은 여간 고무적인 일이 아닐수없다. 최근 주요 일간지들은 키드네트(KIDNET)나 학교정보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인터네트 활용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주로 초중고등학생 대학생 등 청소년들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 공공기관 산업체와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참여도는 극성스러울만큼 대단하다.

그러나 노인들에 대해서는 놀랄만큼 무관심하다. 지원사업에서도 인색하다. 기껏해야 2020년 쯤 되면 연금이 거덜난다는 걱정스런 전망이 고작이다.

이러다가는 과거를 버리고 새것만 찾아 헤매는 뿌리없는 역사관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금년들어 정부는 신인구정책이란 것을 발표했다. 60년대 이후의 산아제한정책을 청산하고 노인중심의 인구정책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요내용을 보면 노인복지타운, 치매노인 요양시설, 전문병원 등 주로 병약한 노인을 위한 소극정책에 머물고 있다.

우리 원로방 노인중에는 「60봉오리, 70만개」란 우스개 소리가 유행되고있다. 우리사회에도 이제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한 노인들이 의외로 많다. 지적사회답게 노인에게 적합한 일거리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침체된 양로원에서 은둔해 살기보다는 국가경제와 고급문화발전에 큰 힘이될 수 있는 적극적인 생산인력으로 인정받기를 더 원하고 있다. 신기술사회에 익숙해진 청소년들에게 전통문화의 깊은 맛을 되살려 주며 문화경쟁력 향상에도 일조할 수 잇는 적극적인 노인정책 발굴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해지고있다.

이는 세대갈등 극복과 건강한 가족제도 회복이라는 부산물도 낳게할 수 있어 나라의 기반을 튼튼히 하는 상승효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백석기 정보문화센터 교육훈련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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