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어느 날. 전자업체의 중견간부인 김 부장은 국회의원 선거일이도기한이날 아침 아이들과 함께 대구 고향을 찾기로 했다. 교통체증을 우려해 아침일찍부터 서두른 김 부장은 투표는 고속도로 휴게소 근처에서 하기로 마음먹었다. 대전 근방의 휴게소에 도착, 아이들이 잠시 쉬는 동안 부인과 함께투표소를 찾았다.
우선 지난 1998년부터 전국민에게 지급된 통합 전자주민증을 은행 현금지급기처럼 생긴 단말기에 집어 넣고 투표소에 입장했다. 그 다음에는 선관위원들이 입회한 자리에서 지문 인식시스템을 통해 본인임을 확인받고 기표소로 향했다. 터치 스크린으로 운용되는 기표소내 모니터에는 벌써 자신의 지역구 출마 의원들의 사진과 간단한 이력이 담긴 화면이 떠올라 있다. 김 부장은 그중 한 명의 이름 밑을 손가락으로 간단히 짚어주는 것으로 기표를 완료했다. 그동안 걸린 시간은 불과 3분.
김 부장은 간단한 투표를 마치고 다시 고속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지만,부인이 갖고 있는 개인휴대단말기(PDA)를 보면서 불평을 터트렸다. 굳이 투표소를 찾지 않더라도 PDA를 이용하면 자동차 안에서도 똑같은 순서로 네트워크 투표가 가능한데 이를 허용치 않는 정부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순간라디오에서는 벌써 지역별 당선유력 의원의 명단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디지털」은 20세기와 21세기를 구분하는 「키 워드」다. 아날로그로 이루어졌던 기존 모든 문명의 모습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지렛대다. 전자분야에서 디지털 문화가 창출된 이래 정치적으로는 디지털 민주주의가 소생하고 그 꽃인 디지털 선거는 20세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제공하게 된다.
컴퓨터와 초고속정보통신망으로 대표되는 네트워크가 결합된 21세기 디지털 선거는 선거 운동과 투개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디지털」로 이루어진다. 이번 4.11총선에서도 디지털 선거의 「원시적」 모습이 보이고 있다. 일부 출마자들이 인터네트나 PC통신을 이용해 본격적인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 아직은 이용자가 한정돼 있지만 이들은 다가오는 「디지털 문화」를 앞장서 경험하고 있다.
21세기에는 기존 선거운동 방법은 더 이상 발 붙일 곳이 없다. 지금도 아파트촌에서 유권자를 접촉하는 것이 어려운 판에 디지털 시대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집집마다 양방향 통신이 가능한 케이블 TV가 갖추어져 있고 개인들은 휴대 단말기인 PDA를 확보하고 있다.
지정된 시간과 장소에서 일방향 운동만이 가능했던 아날로그 시대와는 달리 디지털 시대에는 이런 제약이 없다. 유권자는 자신이 필요한 시간과 장소에서 TV나 PC, 심지어 PDA를 통해 출마자의 정견과 이력을 검색, 조회할 수있다. 이런 하드웨어를 이용, 즉석에서 질문을 할 수도 있고 유권자들간에후보자의 자질에 관해 토론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선거운동의 열쇠는 디지털 환경의 이용 여부라고 지적한다. 이때의 선거운동본부는 인터네트로 치자면 웹 서버로 대치된다. 저마다 홈 페이지를 개설하고 유권자의 기호를 자극할 만한 프로그램 개발에 총력을 기울인다. 당락은 여기서 결정된다. 일당을 주면서 청중을 동원하고 여의도에 1백만명을 모아 유세하는 해프닝은 아날로그 시대의 유물이 된다는 것이다.
디지털 선거운동은 후보자가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을 충분히 홍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반대로 자신이 완전히 발가벗겨지는 상황을 감수해야 하는 단점도 있다.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통해 유권자들이 후보자에 관한 모든정보를 거의 무차별적으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네트를 이용하는 선거운동일 경우 후보자와 관련된 사항은 지역구민뿐아니라 전 국민 심지어 전 세계인이 접속한다. 예컨대 학력을 허위로 발표하거나 불명확한 과거경력을 숨긴다 하더라도 언제 어느 곳에서 네트워크를 통해 사실을 밝히는 내용이 되돌아올지 모른다. 정보의 공유라는 디지털의 특성은 그래서 후보자들에게는 「양날의 칼」이 된다.
이 때쯤이면 기존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후보자들의 프로그램 작성기준이나 검색을 담당하는 네트워크 관리자로 모습이 변하게 된다.
선거의 또 다른 축인 투개표의 경우 기술적인 발전과는 별개로 진전 속도가 늦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론적으로는 PDA로 자동차나 길거리에서 투표할 수도 있고 심지어 컴퓨터를 이용해 며칠전에 투표를 마치고 지정한 날에 전자메일로 송신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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