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재난의 시대 (22)

"뭐라고? 지금 너 뭐라고 한 거냐?"고비는 갑자기 엄한 표정이 된다.

"안에 있으라고 대체 몇 번이나 말을 해야 알아듣겠니? 절대 시스템 밖으 로나가면 안된다고 하지 않았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보딩하는 게 얼마 나위험한 일인지 몰라?" "그래도 아빠……." 아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도는 없다. 안에 있거나 안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알겠니? 리얼 타임에 착륙하겠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야. 또 한 번 그러면 이젠 용서 않는다. 한바탕 난리를 치르겠지만 이것만은 물러설 수 없는 문제이다. 임마누엘 채널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말도 안되는 소리! 어이가 없다는 듯 입 이벌어진 트레보르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나간다. 하지만 아빠가 저렇게난리시라면 하는 수 없지. 그래도 화면의 그 남자가 얘기하던 거기에 대해서만은 얘기하고 싶다. 뭐라 그랬더라? 그래, "불모의 땅"이었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사님." 기모노를 입은 아가씨가 미닫이 문을 닫고 나가자 기무라가 입을 연다. 아가씨가 차와 다과를 올려놓는 동안 두 사람은 명함을 교환하고 서로 들여다본다. 이곳은 나니와 놉힐 호텔의 꼭대기 층에 있는 개인용 다실이다. 라카 탁자 가놓여 있는 다다미방에 부드러운 고토 음악이 흐른다.

넓은 화면창 너머 금문교의 건물들이 무거운 안개 사이로 보인다. 호버 크 라프트가 회색 물위를 스쳐지나간다.

고비는 기무라의 명함을 다시 본다. 기요시 기무라, 사토리 인터액티브사 북미 지역 마케팅 부사장. 명함 아래쪽에는 사토리의 국제 증권시세가 나와있다. 1006793-. 주가가 조금 떨어진 것 같다.

"일시적인 현상 아니겠습니까?" 고비는 뜨겁고 향기로운 녹차를 음미하며 입맛을 다신다. 기무라는 고비의 찻잔에 차를 따른다.

"썩 좋은 상태는 아닙니다. 이미 사토리시의 차기분 예상 임대율이 22%나 떨어졌습니다. 임마누엘 채널 사고로 가상현실의 신용도가 심각할 정도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접속을 끊고 있지요.""그렇군요." 고비는 고개를 끄덕인다. 기무라는 무엇 때문에 그를 불러낸 것일까? 곧본론이 나오겠지. 기무라가 다리를 폈다 오무리자 얇고 반들거리는 양말이 보인다. 양말을 보자 이유없이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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