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정보통신 비사 소리없는 혁명 (21)

일반적으로 TDX는 매우 탄탄하고 실속있는 교환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유명한 교환기들의 좋은 점을 골라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것이다. TDX 1의 경우 독자적인 설계에 의한 독자적인 작품이었다. 그 당시개발 요구처인 한국통신측의 요구가 스트로저교환기 정도의 성능을 가진 교환기를 개발해 달라는 것이어서, 나중에추가될 부가기능을 고려하지 않고, 꼭 필요한 기능만을 발휘할 수 있게끔 구조를 간략하게 잡았다. 진짜 토착 실력을 발휘하여 자동차로 치면 일종의 포니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TDX 1의 개발이 끝날 무렵, AXE 10, 5ESS, S1240 D 70 등 세계 적으로 유명한 기종들이 완성된 제품으로 쏟아져 나오며, 관련 문헌이 풍부 하게 입수됐다. 따라서 외국 기종의 장점을 충분히 캐낼 수 있었고, 그것이바로 TDX 10의 개발에 반영되었다. 때문에 가장 실속있고도 값싼 교환기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남들이 겪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할 필요가 없었어요. 남들이 실수한 것, 남들이 고생한 것은 피하고 그들이 잘한 것, 좋은 것만 가지고 따르다 보니 아주 융통성있고 실속있는 교환기가 된 거죠." 경상현 소장의 주장이었다.

"만약에 아주 공정한 입장에서 국제입찰을 실시해서 값을 따진다면 TDX 10이 제일 유리할 겁니다. 왜냐하면, 딴 기종은 1985년을 전후해서 개발이 완료됐고 TDX 10은 1991년에 완료됐으니까 6년 차이가 나는데, 6년 사이에반도체 기술이 발전하여 가격이 하락된 것은 엄청나거든요."박항구단장이 덧붙였다. 그렇다면 한국통신의 재래식 기술자들이 성공할 경우 손가락에 장을 지지 겠다며 극구 반대했던 TDX의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연구 소측에서는 그것을 신념의 차이라고 했다. 실제로 교환기를 구입해서 운용해 야 하는 한국통신의 입장에서는 디지털교환기라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개발 경험이 없기 때문에 개발 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가질 수 없었다. 더구나 실제로 교환기를 운용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또다른 걱정이 앞섰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미국의 AT&T나 ITT의 제품을 갖다 놓아도 고장 때문에 쩔쩔매는데, 국산품일 경우 오죽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연구원들은 어느 정도 자신을 갖고 있었다. 디지털교환기술이란교과서에 나오는 원리이고 널리 알려진 기술이었다. 따라서 개발에 필요한 인원과 장비를 어떻게 확보하느냐는 점이 문제일 뿐 우리나라의 기술 기준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1978년부터 시작해서 3차에 걸쳐 개발해 놓은 시험기로써 이미 터전은 닦아 놓지 않았던가.

"디지털교환기술은 노벨상을 받을만한 새롱룬 이론이 아니고 교과서에 나와있는 잘 알려진 기술입니다. 디지털교환기술이란 결국 소프트웨어기술인데 그 반대한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하면 정해진 시간내에 많은 사람을 투입 해서달성할 수 있느냐가 문제일 뿐 우리라 해서 못만들 이유가 없었죠."TDX 개발의 실무책임자 유완영은 그렇게 주장했다.

"TDX의 개발이 기본적으로 되어 있던 것을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판가름을 해야 할때 서정욱 박사가 인증제도를 도입해서 쓰게 만듦으로써 성공할 수있었던 겁니다. 그 제도를 도입했건 안했건 기술 내용은 같은 거였죠. 양승택 단장이 덧붙였다.

이처럼 TDX는 연구소의 연구개발 결과가 곧바로 생산업체로 전해져 생산으로연결되었고 생산업체의 제품이 인증제도를 통해 바로 수요자인 한국통신 과연결됨으로써 상품화에 성공할 수 있었고, 그러는 과정에서 서정욱 단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기술한 바 있다.

TDX가 성공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의 개발자와 수요자가 사실 상같기 때문이었다. TDX의 개발 주체는 전자통신연구소였다. 그러나 240억원 이라는 연구개발비를 전액 부담하면서 개발을 부탁한 것은 한국통신이었다.

또한개발한 제품을 사용할 대상도 한국통신이었다. 이처럼 사실상의 개발자 이자 수요자인 한국통신이 TDX의 개발을 기피했던 이유는 고장이 두려웠기때문인데 그러나 그것의 개발이 정책으로 확정된 이상 품질 불량 문제는 스스로 눈감아 주며 소화시키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한 사정을 당시의 한국통 신이우재 사장으로부터 직접 들여보자.

"TDX가 성공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개발하는 사람과 쓰는 사람이 어떻게보면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었어요. TDX개발을 반대했던 이유가 고장이 많기때문이었는데 개발한 사람이 우리 팀이다 보니까 바로 보완이 됐어요. 교환 기라는 게 처럼 개발되면 고장이 나게 마련인데, 사용하는 사람이 한국통신 이니까 양해가 됐지, 딴 사람에게 팔았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고장이 잦아 못쓰겠다면 그만이니까요. 1년쯤 지나니까 고장 문제가 완전히 해결돼 서 여기저기서 TDX 좋습니다 하는 얘기가 계속 나왔어요."막강한 구매력을 갖고 있는 한국통신이 수요처가 되다 보니 다른 분야의 연구개발에 비해 연구소와 산업체, 또는 산업체 상호간에 협력이 잘 되었다. 초반에는 연구소와 의 협력을 기피하던 산업체들이 후반에는 적극적인 협력 자세를 보였다. 또한 TDX개발에 참여한 4개 업체는 평소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사이임에도 TDX개발에 있어서는 엔지니어들이 기술적인 문제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이며 따뜻한 협조체제를 유지했다. 그 결과 TDX는 관.산.학.연이 서로 협조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는 본보기가 되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TDX개발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통신기기중 핵심이 되며, 첨단기술에 해당하는 전자교환기를 반드시 개발해 내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정책의지였다. 국가의 명운을 첨단기술의 개발에 걸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전통적인 기술관료는 물론 산업계에 서도 반대하는 전자교환기 개발사업에 착수할 수 있었고, 24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을 수 있었다. 정부의 관료 중에서도 오명체신부차관 의의지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사면초가라 할 반대 여론 속에서 외로운 결단 을내릴 수 있었다. 이러한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에 전자통신연구소의 젊은연구원들의 강렬한 개발의지가 가미돼 TDX라는 개발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TDX개발이 성공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체신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였다고 생각합니다. TDX개발에 있어서 산업체는 피동적으로 끌려 왔어요. 그러니까산업체에서 이끌려 오도록정책적으로 유도해서 꽃을 피웠던 거죠".

1983년 7월부터 4년 동안 체신부 통신정책국장으로서 도약 연대의 통신정책을 좌지 우지 했던 윤동윤의 주장이었다.

"오명차관처럼 앞을 바라보고 과감히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게가장 중요한 요인이고, 어려운 일이지만 최선을 다해 개발해 내겠다는 연구 원들의 의지도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그들 둘이 잘 맞아떨어져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자들은 실패를 겁내기 때문에 과감성이 부족합니다. 기술 개발이라는 게 선진국에서도 100% 된다는 보장이 없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는실패할 경우 제도적으로 책임을 묻고 처벌을 하고 하거든요. 그러나 오직 이길밖에 없다는 절박감을 가지고 과감히 추진한 덕분어있죠."최순달 장관의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TDX는 순수한 우리 기술의 힘으로 개발되었을까?1981년 체신부는 시외교환기의 디지털화계획의 일환으로 외국의 중요량 교환기를도입하기로하고 미국의 ITT, 스웨덴의 에릭슨, 캐나다의 노던 텔리컴, 서독의 지멘스, 일본의 NEC등 5개 회사를 상대로 국제입찰을 실시한 결과에릭슨이 선정되었다. 에릭슨은 AXE 10 기종은 성능 및 가격면에서 유리할뿐만 아니라 차관조건이 유리하고, 특히 우리측이 요구하는 한국형 디지털교환기의 개발 기술과 반도체의 생산 기술을 제공한다는 이점 때문에 선정되었다.

입찰조건에 따라 1982년 3월 한국통신과 에릭슨 사이에 통신기술 전수계약 이체결되었다. 그 후 통신기술 전수계약 이행에 관한 모든 관리.의무가 전기 통신연구소로 이관됨에 따라 그해 12월 연구소와 에릭슨 사이에 수정계약이 맺어졌다. 기술 전수사항은 교환기의 설계 및 시험기술, 망계획및 품질관리 기술, 소프트웨어의 설계 및 관리기술, 쌍극형 반도체의 설계 및 제작기술 등상당히 광범위함 분야의 핵심기술이었다. 또한 이 계약에는 교육훈련계획 도포함되었는데, 에릭슨으로부터 6명의 강사를 초빙하여 국내교육을 실시하는한편 28명의 연구원을 파견하여 해외교육을 실시했다. 기술 전수기간은 계약체결일로부터 1985년 12월말까지였고, 그 대가로 우리는 미회 250만불을 지불했다. 이러한 기술 전수와 교육훈련의 결과 연구소는 어떤 순서로 개발하느냐는 개발 순기와 투입되어야 할 인력, 순기별로 나와야 할 문서 등 개발방법론을 배웠고, AXE 10에 관한 모든 기술문서를 인수하여 세부설계를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TDX 1A를 개발할 때부터 AXE 10의 개발체계와 적용되기 시작했다. TDX 1의 경우 아이디어의 창상으로부터 에릭슨의 제품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순수한 국내 독자기술이었는데, TDX 1A로 발전할 무렵에는 용어로부터 기술문서에 이르기까지 AXE 10을 모방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 동안 연구 소에는 개발방법론에 관한 노하우가 쌓여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개발체계를 개발해 놓고 있었다.

"전자교환기는 워낙 큰 시스템이기 때문에 카피를 할 수도 없고 카피를 해봤자 무용지물이예요. 소화를 할 수가 없으니까요. 또한 각 교환기마다 카피 를할 수 없게 하는 장치가 되어 있어 카피를 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개발체계를 모방할 수 있는 거죠." TDX 10의 개발 책임자인 박구 단장의 주장이었다.

TDX의 개발로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열번째의 디지털교환기술의 보유국이 되었으며 여섯번째의 수출국이 되었다. 그 결과,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전국 전화의 자동화, 1가구 1전화의 달성과 함께 우리나라는 갑자기 통신선진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러한 형식적인 성과를 젖혀 놓더라도 TDX의 개발이 몰고온 파급효과는 엄청났다.

전자통신산업은 자원 및 에너지 절약산업으로서 부가가치가 높은 기술집약 산업이다. 특히 디지털교환기는 통신.컴퓨터.반도체기술이 융합된 전자통신 산업의 핵심기술로서 관련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 80년대 후반 이후TDX가 양산체제에 접어듦에 따라 컴퓨터.반도체.부품 등 전자산업과 소프 트웨어산업이 더불어 발전할 수 있었다.

TDX개발이 가져온 경제적 효과를 계수적으로 정확히 제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어림잡아 계산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92년말까지 한국통신에서 구입한 TDX는 600만회선이며, 이를 금액으로 따지면 1조원 가량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TDX의 개발로 그때까지 1조원에 해당하는 외화를 절약한 셈이된다. 게다가 전에는 회선당 4백달러대에 이르던 교환기의 단가가 TDX 개발로 150불대로 떨어졌으므로 그 효과는 두배 이상이 된다고 하겠으며, 그러한 효과는 앞으로 갈수록 커진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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