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DX 교환기에는 TDX 1X, TDX 1, TDX 1A, TDX 1B, TDX 10 등 여러가지 이름이 있다. 새로운 버전(version)이 나올 때마다 이름이 조금씩 바뀌었던것이다. 용량을 늘리고 우수한 성능을 추가하여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낼 때마다 새로운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통신기술연구소가 발족한 후 78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시험용 전자교환기 를개발했는데, 그 중 3차 시험기의 제작이 완료된 것은 82년 봄이었다. 그해7월 연구소는 500회선짜리 이 시험기를 용인군 송전우체국에 설치하고 362 명의 가입자를 수용해 시험운용을 했다. 이 교환기는 원래 실험실 모델로 개발한 것이었으나 TDX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전화국 현장에 설치하여 실제로 가입자와 통화를 하며 성능을 시험해본 것이었다. 이 시험용 교환기 는처음에는 고장이 잦아 형편없는 불합격품으로 취급되었으나, 83년 12월말 까지 1년 6개월의 시험운용 기간을 거치면서 여러가지 성능이 보완되어 교환 기로서의 구색을 갖추게 되었다.
이 교환기는 3차 시험기로 개발될 당시만 해도 이름을 갖지 못했다. 그런 데송전우체국에 설치하여 개통식을 가질 무렵 연구소에서 개발하고 있는 한 국형 디지털교환기의 명칭을 TDX로 하기로 한 후, 이 교환기의 명칭을 TDX 1이라 했는데, 그 후에 새로운 모델로 개발되어 가평. 전곡. 무주. 고령에 설치된 9,600회선 용량의 시범인증기를 공식으로 TDX 1이라 명명함에 따라TDX 1X라 불리게 되었다.
TDX 1X의 시험운용이 진행되는 동안 그것의 시험운용 결과를 토대로 하여83년 10월부터 농어촌용 교환기로 알맞는 9,600회선 용량의 교환기 모델 개발에 도전했다.
TDX 1X에 비해 용량을 9,600회선으로 대폭 늘리고, 교환기의 신뢰성을 높이고 유지보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시스템의 구조와 설계를 대폭 강화하며 TDX 1X의 시험운용에 드러난 문제점을 개선하는 이 교환기의 개발작업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어 이해 3월에는 새로운 모델을 제작할 수 있었다.
84년 1월 한국통신 TDX사업단장으로 부임한 서정욱은 이 시험기를 "시범인 증기"라고 명명하고, 전화국 현장에 설치하여 시험운용을 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그해 4월부터 서대전전화국에 2,500회선, 유성분국에 500회선을 설치해놓고 전자를 모국으로, 후자를 자국으로 하여 모국과 자국 개념으로 운용해 보았다. 이 모델의 교환기는 개발 당시부터 TDX 1이라 불렀다.
82년 3월 연구소는 금성반도체통신 동양정밀 한국전자통신 등 3개 교환기 생산업체와 실무교육협정을 맺고 각 업체로부터 10여명씩의 연구원을 받아들여TDX의 공동개발에 참여케 했다. 그 결과 금성에서 10명, 동양에서 11명, 삼성에서 7명 등 총 28명의 연구원들이 파견되었으나, 그들은 대학을 갓 졸업한 햇병아리들로서 연구개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무렵 3개 업체 중 어느 업체도 TDX 개발에 열을 올리지 않았다. 개발의 실익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아날로그 교환기인 M10CN을 생산하고 있는 삼성은 한국전자통신(주)을 인수할 때 투자했던 막대한 비용을 뽑는 일이 우선급했다. 또한 M10CN 교환기로는 라이벌인 금성의 №.1A와는 승부를 내기가 어렵다고 판단해 대용량 디지털교환기인 S1240의 도입을 서두르고 있었다.
금성 역시 이제 막 생산이 시작되는 №1A의 본전을 뽑는 일이 급했다. 또 한금성은 AT&T의 제품인 №1A로 삼성의 M10CN과 경쟁하는 것은 비교적 용이하다고 생각하기때문에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다만 삼성에서 대용량 디지털 교환기인 S1240의 도입을 서두르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역시 대용량 디지털 교환기인 AT&T의 5ESS의 도입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한편 스트로저교환기 이후 고유의 시내교환기를 갖지 못한 동양정밀은 농어촌용 교환기로 AXE 10이 선정되자, 83년 10월 기술도입선인 스웨덴의 에릭슨과 합작투자로 동양전자통신(OTELCO)을 설립하고 AXE 10의 생산에 돌입 했다. 따라서 동양정밀은 앞으로 상당한 기간 AXE 10을 가지고 재미를 볼수있는 입장이었다.
이처럼 세 업체는 각기 지향하는 바가 달라 한국형 전자교환기의 개발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국산 교환기의 개발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과실을 따먹을수 있는 나무가 있으므로 적극성을 보일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정부의 입장에 정면으로 반대할 수도 없어 햇병아리 연구원들을 보내 다리를 걸쳐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연구소와 기술전수계약을 맺는 것도 가급적미루고 있었다.
그러자 체신부 윤동윤 통신정책국장이 한가지 꾀를 냈다. 그는 TDX 개발에 의참여를 희망하는 제삼자를 끌어들이기로 하고, "국가의 능력을 총동원한다 "는 명분을 내세워 "국설용 교환기건 구내 교환기건 교환기를 생산하는 모든 업체를 TDX개발에 참여시키겠다"고 발표해 버렸다. 물론 교환기 생산업체 3개사는 기득권을 내세워 그러한 결정에 결사 반대했다.
그러자 윤국장은 3개 회사 대표를 체신부로 불러들였다.
"여기 모인 3개사만이 TDX개발에 참여하게 되면, 이미 막대한 기술료를 들 여기술을 도입해서 합작생산을 하고 있는 기종이 있는데 그 기종을 생산해서 나눠 먹으려고 하지 TDX를 개발하려고 하겠습니까. 또 여러분들이 개발하겠다고 해놓고 도저히 개발할 능력이 없다고 나자빠져 버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 체신부로서는 다른 업체를 참여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정곡을 찌르는 말에도 동의하지 않자 윤국장은 비장의 카드를 내밀었다. 즉, 금성과 삼성이 도입하고 있는 대용량 디지털 전자교환기인 5ESS와 S1240의실용시험 을 허용해 주지 않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실용시험을 거치지 못할 경우 한국 통신은 그들 전자교환기를 구입할 수 없게 된다. 그러자 3개 회사대표는 항복하고 말았다.
공동 개발에 참여하겠다고 손을 든 업체는 대우였다. 83년 9월 대한통신을 인수하여 발족한 대우통신은 크로스바 방식의 구내교환기를 생산하고 있을뿐이어서 국설용 전자교환기 생산에의 참여를 애타게 바라고 있었다.
그 보도가 나가자 나머지 3개업체가 후끈 달기 시작했다. 금성.삼성.동양 은서둘러 시험용교환기를 개발한 다음 그때부터 연구소와의 협조체제를 강화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제작된 4개 업체의 시험용 교환기를 서대전전화국과 유성분국 에설치해 놓고, 연구소가 제작한 교환기를 모국으로 하여 4개월 동안 시험한 결과 3자통화 등 세가지 기능 외에는 모두 합격했으며, 그들 제품 2만 4,000 회선을 가평.전곡.무주.고령 등 4개 지역에 설치했다는 전술한 바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발한 전화국용 디지털교환기로서 TDX 1이라 불리게 되었다.
농어촌용 교환기로 개발된 TDX 1은 개발 자체의 성공 여부가 문제였기 때문에 양산체제를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4개 지역에 설치한 TDX 1이별다른 이상 없이 운용되자, 시제품은 개통된 후 6개월 내지 1년 정도 운용 한다음 신뢰성 여부를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통신은 TDX 1을 실제 로운용할 교환기로 공급하기로 결정하고 그것의 양산모델을 만들어 이듬해인 87년부터 대량공급을 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86년에 새로운 모델의 교환기 시스템 구조 및 설계규격을 확정하고, 이듬해인 87년에 20만회선을 공급하기 로 했다.
TDX 1의 가입자 회선 용량은 9,600회선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모델의 회선용량은 1만회선은 넘어야 한다는 서정욱 단장의 주장에 따라 1만 240회선 으로 용량을 늘리고 몇가지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여 만든 것이 새로운 모델 인TDX 1A였다.
"TDX 1은 회선 용량이 9,600이라는 게 문제다, 1만은 넘어야 되지 않겠느냐해서 용량을 1만 240회선으로 늘리고, 또 몸체의 높이도 구식이다, 운용자 측면에서 볼 때 좀 더 낮춰야 되겠다고 해서 50cm 낮춰 보다 컴팩트하게 만든 게 TDX 1A죠." 박항구 연구원의 설명이었다.
1만회선짜리 TDX 1A가 개발되는 동안 2만회선짜리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자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농어촌용으로 개발된 TDX 1은 수용 능력이 부족해 도시지역에 보급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며 운용이나 유지보수면에서도 보완 해야 할 사항이 많았다. 그렇다고 91넌까지 개발하기로 되어 있는 TDX 10을 기다리기에는 국내의 전화 사정이 그렇게 여유롭지 못했다. 그 대안은 아날로그 교환기로 공급하거나 외제를 수입하는 길밖에 없는데, 일단 어느 지역 에 외국 교환기가 설치되고 나면 TDX 10이 개발된다 해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게 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다. 때문에 도시지역에 알맞는 교환 기로 2만회선짜리 중용량 교환기를 개발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때 전자통신연구소는 TDX 1A의 개발을 마치고 TDX 10의 개발에 착수하고있어 TDX 1B의 개발에 손댈 여력이 없었다. 그러자 서정욱 단장은 TDX 1B만큼은 자신의 주도하에 4개 업체가 분담 개발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한국 통신과 4개 업체 실무책임자들로 실무위원회를 구성했다. 이에 따라 86년 7월TDX 1B의 개발계획이 확정됐는데, 그 계획에 의하면, TDX 1B는 TDX 1의골격을 그대로 유지하되, 일부의 프로세서를 8비트에서 32비트로 하여 회선 용량을 증대시키고, 최대용량을 2만2,528회선으로 하며, 개발기간은 86년 7월부터 88년 12월까지로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4개업체에서 개발해야 할 품목과 소요인원 및 예산까지 분담했다.
TDX 1B는 업체의 젊은 연구원들이 정열을 바쳐 열심히 개발했는데, 그 결과89년 4월 주문진.경산.안중.칠곡 등 4개 지역에서 동시에 개통할 수 있었다. 그것은 연구소가 아닌, 한국통신의 주관하에 업체가 직접 개발한 최초의 전자교환기였다. TDX 1의 개발계획은 예정대로 5차5개년계획 기간인 82년에 시작해서 86년 에끝났다. TDX 1의 개발에 이어서는 TDX 1A, TDX 1B의 개발이 진행되었으나그것들은 TDX 1의 연장에 불과할 뿐이며, 6차5개년계획이 시작되는 87년 부터는 TDX 1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교환기를 개발하기로 했는데 그것이바로 TDX 10이었다.
TDX 10은 우선 그 개발 목표가 뚜렸했다. 2000년대에는 우리나라의聖 聖 화시설이 2천만회선을 넘을 것인데, 그 방대한 시장을 국산교환기로 공급하려면 10만회선 규모의 대용량 교환기의 개발이 필수적이며, 2000년대 고도정보사회의 핵심이 될 종합정보통신망을 우리 기술로 실현하기 위해 대영량.
다기능의디지털교환기의 개발이 필수적인 것으로 판단되었다.
따라서 87년부터 시작되는 6차5개년계획 기간에 총 5백60억원을 투입하여 5만회선 이상 규모의 새로운 교환기를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 계획 은 86년 10월 체신부의 6차5개년계획으로 확정되었다.
개발 주체는 전자통신연구소였으며, 연구소가 4개 기업체와 공동개발 협약 을체결하여 공동개발을 하기로 했다. 연구비용의 출연은 한국통신이 담당하기로 했다. TDX 10의 개발은 새로 TDX개발단장에 임명된 박항구의 책임하에 진행되었다. 그런데 첫해인 87년에는 TDX 1A의 개발작업이 끝나지 않아 연구인력을 절반으로 나눠 각각 TDX 1A와 TDX 10의 개발을 담당토록 했으나, 그동聖나 기술력이 향상된 결과 그해말에는 하드웨어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그리하여88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할 시점에 하드웨어의 완성을 TDX 10의 개발로 착각한 탓인지 연구소와 한국통신 양쪽에서 동시에 책임자의 교체가 있었다.
즉, 연구소의 TDX개발단장은 박항구에서 이원웅으로, 한국통신의 TDX사업 단장은 서정욱에서 이정욱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통신이 기업체 와함께 개발하기로 한 TDX 1B개발사업에 기업체가 따라 주지않아 문제가 생기자 한국통신에서는 그일을 연구소로 떠넘겼다. 따라서 연구소는 연구인력 을절반으로 쪼개 TDX 1B와 TDX 10에 분담시켰다. 그러자 일이 비꾸러짐을 깨달은 서정욱이 특유의 추진력과 설득력을 발휘하여 TDX사업단장으로 복귀 하는 한편, 박항구를 다시 TDX개발단장으로 불러들였다. 그결과 TDX 10은 연구소가, TDX 1B는 한국통신의 주도하에 산업체가 담당하는 체제로 환원되었다. 그후 89년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공히 짝이 맞는 골격이 형성되었고, 90년에는 실용시험을 마무리하여 예정대로 91년에 4개 전화국에 설치하여 개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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