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도체관세" 꼭 필요한가

우리나라는 반도체 대국의 하나로 해마다 D램 메모리를 중심으로 많은 양의반도체를 수출하고 있는 반면 엄청난 양의 반도체를 수입하고 있다.

반도체산업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반도체 수요는 총 34억달러에 달했고 이의 76%를 외국에서 수입했다.수입 반도체의 대부분은 우리나라에 서 생산되지 않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비롯한 "비메모리" 반도체다. 비메모 리 반도체는 생산을 위한 기초기반기술이 부족하고 설계 기술인력 또한 태부족해 지금으로서 국산화는 어렵다. 물론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올해부터 비메모리 분야를 집중 육성하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으나 계획이 제품의 본격적인 개발.생산으로 이어지려면 빨라도 오는 2천년 전후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CPU를 비롯한 기술집약적이고 신규참여에 대한 위험부담이 큰 제품의 경우는 국내업체가 독자적으로 개발해 상품화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핵심 반도체의 수입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정부가 수입 반도체에 대해 8%의 관세를 부과, 이를 수입해서 사용하는 관련업체와 이들이 생산한 제품을 구매하는 국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킴 은 물론 불법 유통을 자극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컴퓨터가 많이 보급돼 있고 또한 컴퓨터를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나라들은 대부분 컴퓨터 핵심부품에 대해 관세를 물리지 않는다. 현재 미국.일 본.캐나다 등 선진국은 물론 대만.멕시코 등도 수입관세를 물리지 않고 있다. 각국이 외국제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 이유에서라고본다. 하나는 세원확보에 있고 또 다른 하나는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불필요 한 제품의 수입을 억제하고 유사한 제품을 생산하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세수목적이라고 봐야 하는데 이로 인해 국내 PC관련 산업과 국민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음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컴퓨터의 핵심 두뇌인 CPU의 경우는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PC나 주기판에 사용하는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전량 외국제품이다. 거의 대부분이 인텔사 제품이고 나머지도 미국계업체들에서 생산한 제품들이다. 문제는 우리가 수입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는 CPU 등 PC관련 핵심부품들이 고가이고 PC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이며 더욱이 경쟁 상대국은 물리지 않는 관세를 우리나라만 부과해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에서는 수출용 제품에 대해서는 나중에 관세환급을 통해 세금을 돌려주기 때문에 수출제품에는 부담이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환급에 필요 한 작업을 위해 소요되는 인력과 시간도 적지않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국제가격과 국내가격에 차이가 생겨 CPU밀수가 성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CPU가 고성능.고가화 돼감에 따라 국제 유통가격과 국내 시판가격의 차이는 커질 수밖에 없고 자연히 이같은 차액을 노린 불법수입이 성행하는 것이다.

이달 초 용산상가의 한 컴퓨터부품 판매상이 홍콩으로부터 수십억원대의 CPU 를 밀수입해 시중에 유통시킨 혐의로 구속됐다. 이들은 홍콩으로부터 국제우편 등을 통해 밀반입해 용산전자상가와 컴퓨터 부품상 등에 팔아온 것으로드러났다. 물론 이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지난해에만도 CPU 밀수가 87건이 적발됐고 1백50억원 상당의 4만9천2백여개가 압수됐다고 한다.

밀수품이 국내 CPU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밀수 업자들이 충분한 마진을 붙여 공급해도 정식 통관제품보다는 싸기 때문에 수요가 있는 것이다.

CPU등 반도체의 수입관세를 대폭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동안 줄기차게제기돼왔다. 정부당국은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제품과의 형평성 문제 가 있고 분류체계도 세분화돼 있지 않아 곤란하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나 관세제도 개선을 미루는 진정한 이유는 누구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기때문이다. 필요한 조치이기는 하지만 이로 인해서 파생될지도 모르는 문제에 대한 부담을 지기 싫은 데다 세입을 줄이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고 싶지 않은것이다.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중시하는 풍토에서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있다. 국가 전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찾기 보다는 이전에 해오던 방식대로 조용히 지내고자 하는 분위기를 쇄신하지 않고서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정부당국에 지금 반도체에 대한 관세가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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