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베일벗는 북한 정보산업 (6);통신 (하)

북한은 45년 일본으로부터 통신시설을 인수받은데 이어 46년을 통신시설의 정비 및 건설 준비기간으로 정했다. 또 47년 이후를 본격적인 발전시기로 정하고 계속적으로 통신체제를 정상궤도에 올려놓는데 주력해 왔다고 한다.

제1차 5개년 기간(57~61)에는 중앙과 도, 도와 군, 그리고 하부 리단위에 이르기 까지 시내 전화능력을 1.4배로 증설했고 이어 63년에는 전국적인 통신 업무를 집중적으로 관장하는 체신부가 설립됨으로써 통제의 집중화가 이루어졌다. 또한 북한은 71년부터 시작된 6개년 계획에서는 방송출력의 증가, 통신의 다중화 통신시설의 확장, VHF중계시설의 설치 등을 목표로 했으며 통신의 국 제화와 다중화를 위해 위성통신 지상국 건설과 1천9백20회선의 마이크로웨이브 시설을 일본으로 부터 도입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섰다.

이에 따라 북한은 최근 10여년 동안 전신전화회선이 수십배로 증가해 수십만에 이르고 세계 15개국과 전화, 텔렉스 및 우편물을 교환하고 있는 것으로알려졌다. 유선통신 기술부문을 보면 중소도시 전화교환시설은 70년까지 소련.동독.중 국.네덜란드 등 주로 동구권으로부터 수입해 설치, 사용해오고 있으며 그 종류는 자석식.공전식.자동식 교환기 등이다.

또한 북한은 부족한 전화기 대수를 보충하기 위해 89년에 중국으로부터 전화 기 1만대를 수입해 대도시에 보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4년 일본으로부터 초단파 무선통신기를 수입해 소통신 용량의 초단파 통신중계망이 일부 설치되었으며 73년에 일본으로부터 반송 전신전화장치 수십대와 시외 통신선로 용 케이블을 수입해 부분적으로 케이블화를 실시했다.

텔렉스는 60년에 동독으로부터 수입해서 개조해 쓰기 시작했으며 74년과 75 년에 일본에서 인쇄 전신기 수십대를 도입했고 팩시밀리는 71년에 일본에서 수십대, 74년에는 동독에서 수십대를 수입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 지고 있다.

북한의 무선통신 기술부문을 보면 무선통신기 생산은 단파 통신기가 일부 조립 생산되고 있고 기타 초단파 통신기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군용과 특 수용 무선기기는 트랜지스터 및 중요 부품 등을 수입해 조립 생산하고 있다.

70년대에는 서독에서 1백회선용 영문 텔렉스 자동교환 시설을 도입해 74년1 월에 개통했다.

한편 북한의 통신기자재 부문을 보면 북한은 일찍이 기계공업을 핵심으로 하는 중공업 우선 정책을 추진해왔기 때문에 전자통신산업은 오랫동안 소홀히해왔다. 이로 인해 이 분야는 아직도 가장 뒤떨어진 분야로 남아 있다.

통신기자재는 해방후 소련의 원조로 46년까지 복구정비했으며 47년부터 시설 확충작업 개시와 함께 통신기자재의 자체생산보급에 주력해왔다. 47년에는 통신기계제작소를 설립해 48년에 자석식 교환기, 전화기, 고성기, 확성기, 증폭기, 유.무선 기계부품 80여종 등 1천여종의 통신기계 및 부분품을 생산 했다. 58년 이후 통신기자재공장 건설을 서둘러 체신기자재 공장, 건전지 공장 등 전기자재 공장을 건설하고 각 지방에는 리단위의 소규모 공장을 신설했다.

그해의 생산실적은 교환기 3백대, 전화기 9백대, 유선방송 4백대, 고성기 7천대 등이었다. 60년대 들어와 7개년 계획기간중에는 주민의 생활 필수품 증산을 촉구, 지방산업의 육성으로 소규모 공장들이 신설됐다.

61년 평양 통신기계 수리공장에서 최초로 원거리 반송기와 중량 9백g정도의 만능 케스터기를 제작했다. 53년 3월 착공된 평양전선 공장이 61년 10월 16 일 체코의 기술과 경제원조하에 완공, 62년부터 전력 및 통신선 직장, 절연 선 직장 등 5개 직장이 조업을 개시했다. 같은해 북한은 최초로 전력 케이블 을 생산하고 통신케이블, 고무절연선, 에나멜 동선 등 약 6백여종에 달하는각종 통신선을 개설하게 됐다.

또한 남포통신기계공장에 조립공장이 신설됐고 평양전구공장이 건설됐으며 각 지방에 소규모 부품공장이 계속 건설됐다. 이중 대규모공장인 남포통신기 계공장은 라디오와 유선방송용 고성기를 생산했는데 고성기의 부품으로서 에나멜 동선과 페라이트 자석을 모두 자급하게 됐고 1백회선 자동교환대, 전화 기, 무전기, 마이크 증폭기 등 2백여종의 통신기 제품을 생산했다.

한편 평양통신기계공장에서는 반송전화기를 생산하고 67년에는 전화기 1만여 대를 생산했으며 69년 박천통신기계공장이 건설돼 통신용 기계를 생산했다.

6개년 경제계획기간인 70년대에는 산업현대화의 중추역할을 담당하는 자동화 공업을 발전시킬 필요성이 증대돼 자동화 부품의 자체수요가 매년 증대되었다. 이에 따라 계전기, 개폐기, 각종 계기류의 부속품을 생산하는 소규모 공장인 평양전기공장에 72년 신호기구공장 등을 신설했으며 각 지역에 자동화 계기 기구분 공장 60여개소와 소재공장 8개소를 건설했다.

70년 부터 희천전자관 공장의 본격 가동에 들어갔는데 여기서 생산되는 진공 관은 급진적으로 발전하는 반도체 소자와 집적회로소자에 비하면 낙후된 것들이다. 2차 7개년 계획기간에는 전자공업과 자동화기지 확장 강화, 자동화 요소생산 을 위한 전자관, 반도체 소재, 집적회로 등 현대적인 전자부품 개발과 자동 화 기기 및 계기등 소재 생산품목의 다양화, 질적향상을 목표한 전자공업 발전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전자공업위원회 발족 이후 현재의 대안자동화종합공장, 평천자동화종합공장등에서 산업용 로봇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아직 소형 단계이기는 하지만 평 남 평성에 UNDP의 기술지원으로 설립된 평성 반도체공장에서 집적회로등의 시제품도 생산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최신 반도체 기술개발촉진을 위해 87년 4월에 과학원전자공학 집적회로 시험공정을 UNDP기술지원을 받아 완성 각종 소규모 IC개발과 과학자.기술자.기능원 등의 인력양성을 시도하고 있다. 컴퓨터 기술에 대한 필요성이 87년 김일성교시와 89년의 김일성 교시에서 강조되고 있는 점도 두드러진다. 즉 컴퓨터 생산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중형컴퓨터와 초소형 컴퓨터를 대대적으로 생산해 북한경제 각 분야에서 요구하는 컴퓨터 수요를 북한 자력으로 원활히 보장하자고 주장했다. 이에따라 평양 동부지역의 1만2천여평의 컴퓨터 제작공장을 설립중이라고 일조무역 87년 7월호에 밝히고 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에 초기 개발단계에 들어선 반도체 기술의 낙후성이나 소프트웨어 기술의 취약성으로 컴퓨터기술의 성취는 가까운 시간내에 성취하기 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구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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