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TV방송사, 새로운 시청률조사방법 논란

미국 TV시청률 및 시장조사 전문업체 AC닐슨사가 일본의 TV방송사들과 광고 주 사이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AC닐슨의 일본현지법인인 AC닐슨 저팬사가 다음달부터 새로운 "피플미터(pe ople meter)" 방식을 도입해 TV시청률조사를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어 이를 둘러싼 격렬한 찬반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TV광고시장매출은 1조5천8백90억엔(약1백64억달러)으로 지난해 전세계 2위규모를 기록하고 있지만, 시청률집계면에서는 시청가구수기준으로 산정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몇 안되는 후진국가 중의 하나다.

이러한 가운데 "피플미터"라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 좀 더 과학적인 TV광고 요율 산정근거를 제공하겠다는 AC닐슨사의 발표는, 이의 도입을 저지하려는 TV방송사와 이를 도입해 좀 더 상세하고 시의적절한 정보를 원하는 광고업계 사이에 심각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광고주들은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엔고현상에 따른 수익성악화로 광고지출부 담이 커지고 있어 효율적인 광고비운영을 위해서는 어떤 계층의 사람이 어느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다. 일례로 일본 도 요타 모터사는 현재 광고지출을 90년도에 비해 30%나 감소시켰다. 따라서보다 적은 비용으로 예전과 동일한 광고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가구시청률 보다는 개인시청률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시급한 것이다.

일본의 시청률집계방식은 전국의 3천6백여 조사대상가구의 시청률이 자동으로 기록되고 있으나 특정 연령 및 성별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주에 대해서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가구당 2~4대의 TV수상기를 보유하고 있는 요즘에는 가구시청률방식은 더더욱 부정확하다는 것이 지배적 인 여론이다.

최근에는 이 방식에 대상가구의 시청자가 일지를 기록해 개인시청률 보완을 시도하고 있지만 한달 가운데 1주동안만 기록하며 그나마 시청자의 기억력에 의존해 작성되므로 신빙성이 없다.

그러나 AC닐슨의 피플미터는 시청자가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마다 매번 TV수 상기위에 놓인 단추를 눌러 성별을 입력하는 방식으로 집계된다. 조사대상가구의 성원수대로 버튼이 마련돼 있어 입력된 시청자수와 적외선센서가 감지 한 시청자수가 일치하지 않을 때는 경고음이 울리는 것은 물론이다.

TV방송사들은 피플미터를 이미 사용하고 있는 미국 방송사들도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사례를 들어가며 새로운 방식의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또한 피플미터도 시청자가 단추를 눌러야하는 번거로움을 가져다 준다는이유를 들고 있기도 하다.

피플미터와 관련, AC닐슨과 유사한 방식으로 BBC, ITV 등의 방송사에 시청률 조사를 대행해주고 있는 영국 AGB텔레비전사는 피플미터방식의 성공요건으로 과학적인 시청자샘플선정과 더불어 이들에 대한 정확한 사용방법교육등의 선행조건을 들고 있다.

또한 미국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는 것처럼 다채널 케이블TV시대가 본격화되 면 어느 채널에서 어느 채널로 변경하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시청률 모니터링에 있어 주된 이슈로 떠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AGB의 경우 다채널시대에채널주파수가 자주 변경되는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신호주파수를 측정하는 방식에서 TV화상을 디지털화면으로 수집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물론 광고주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시청률 조사방법은 TV수상기앞에 누가 앉아 있는지를 자동으로 알려주는 이른바 "수동측정(p-assive metering)"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리서치전문업체들은 이 기술의 개발에 과다한 비용이 들어 시기상조라는데 입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동측정방식 은 지금보다 상세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지만 조사대상가구들이 감시자인 "빅 브라더"와 같은 존재로 여길 수 있다는 것이 조사전문업체들이 우려하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피플미터 논쟁은 이처럼 기술적인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이 논쟁의 이면에는 방송광고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일부업체와 이를 빼앗으려는 소수업체들간의 치열한 이권다툼 이 자리잡고 있다. 다시 말하면 TV방송사들, 덴쓰사와 하쿠호도사 등 2개 대형광고대행사 그리고 시청률조사업체 비디오 리서치사 등 일본TV광고시장을장악하고 있는 "삼두체제"에 대한 광고주들의 반란이라고 성격을 규정할 수있다. 광고주들은 값비싼 시청률조사서비스요금은 제외하더라도 효율적인 광고를 내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AC닐슨을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외국광고대행사들 도 발판마련을 위해 가세했다.

또한 AC닐슨의 입장에서 볼 때 피플미터의 도입은 30여년전 빼앗겨버린 시청 률조사시장 재탈환의 신호탄이다. 닐슨은 지난 60년 일본최초로 TV시청률조 사를 시작했지만 2년후 TV네트워크와 광고대행사들이 설립한 비디오 리서치 에 자리를 빼앗긴 바 있다.

광고주들의 이번 시도에는 덴쓰와 하쿠호도 등 광고대행분야의 거인업체에 맞서는 위험부담을 무릅쓸 만큼 커다란 이권이 달려있다. 이들 양대 광고대 행사는 일본 전체광고시장의 3분의 1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만큼 광고주들이 이들과의 관계를 단절할 경우 최고의 광고시간대를 배정하지 않는 등 강력히 반발할 것이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TV는 지금으로서는 최상의 광고효과를 제공하는 매체로 대부분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광고주들과 TV네트워크들 사이의 협상은 지금까지 민감한문제로 다뤄져왔다.

일본광고주협회(JAA)의 이토 아키히로사무총장은 최근 "협회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며, 내달 시작하는 AC닐슨의 조사에 따른 결과를 지켜볼 것" 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방송협회도 AC닐슨의 시청률조사개시를 저지키 위해 계속 압력을 넣고 있으며, 이달 중으로 피플미터에 대한 반대성명 발표를 계획하는등 대응이 만만치 않다.

대부분 광고업종사자들은 AC닐슨의 새로운 시도가 성공할 경우 그동안 기형 적인 성장과정을 거친 일본 TV광고시장이 거듭나는 기회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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