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영상물 수용문화정립 급하다(상)

경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지존파 조직원들은 폭력세계의 엽기적인 살인행위를 묘사한 소설과 비디오, TV프로그램을 보면서 범죄수법을 익혀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이름까지 홍콩 폭력영화의 제목에서 따올 정도다.

패륜범죄로세상을 놀라게 만든 박한상군도 그 범죄수법을 비디오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이들두 사건은 폭력영상물이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가설이 이제는 적절한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폭력영상물이 앞으로 더욱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데 있다.

폭력영상물은 영화, 비디오를 이어 최근 비디오게임및 PC게임, CD-롬타이틀 등으로 이른바 새 영상물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공연윤리위원회에따르면 지난 상반기 이들 새 영상물에 대한 심의건수가 모두 1천20건으로 비디오심의편수 2천5백36편의 절반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이중 17건은 폭력, 음란등을 이유로 반려됐다.

그렇지만 공윤의 심의없이 시중에 유통되는 불법 영상물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오는 폭력 영상물에 청소년들은 거의 무방비 상태다.

방송매체의역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방송매체가 오히려 다른 영상매체보다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일부매체학자들은 "외국비디오가 지존파 일당이 범죄수법을 익히는 데 도움을 줬다면 방송매체는 이들의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는 데 영향을 줬을지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다. 예컨대 TV드라마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보다 상류층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다. 지존파가 증오한다 는 "돈 많은 사람들이" 에 가까운 사람들이 방송매체에선 보통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TV프로그램이 소외계층에게 자괴감과 아울러 사회에 대한 불만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방송사간 시청률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면서 방송프로그램에서 섬뜩한 폭력 장면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최근 TV드라마 "작별"에서의 식칼난동은 그 전형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이밖에범죄예방과 경각심을 불러일으키자는 의도로 만들어진 TV의 범죄수사 프로그램이 오히려 범죄수업에 역이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줄기차게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공중파방송, 케이블 TV, 위성방송등 다매체 다채널 시대를 맞고 있는상황에서 앞으로 TV영상물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매체환경은 폭력 영상물을 사전에 일일이 규제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영상물의역기능을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을까.

일단이들 영상물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같은 지적은 최근 국회등 정치권에서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이와관련,정부도 음란.폭력물의 수입을 제한하고 벌칙을 대폭 강화한 "음란 .폭력물 유통규제법"을 제정하는 한편 단속을 강화할 방침이다. 공윤도 영화 및 비디오 심의기준을 폭력성에 맞춰 폭력물에 대한 사전심의를 강화할 예정 이다. 폭력영상물에 대한 이러한 규제 강화 움직임은 불가피한 조치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이러한 조치들은 미봉책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처방은 되지 못한다는지적이 일고 있다. 더욱이 외국 상업위성방송등 방송 영상물에 대한 국경이 사라진 매체환경의 변화는 영상물에 대한 심의강화나 수입 억제만으로 문제 를 풀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지존파의경우 "양들의 침묵"을 보고 범죄를 모방했다고 알려져 이 비디오를 본 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대부분 사람이 "양들의 침묵"을 폭력 비디오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은 영상물 자체보다 이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태도와 이해력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매체학자들은"영상매체에서 본 범죄행위를 모방하는 것은 매체의 세계와 실제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이는 특히 청소년층과 사회적으로 지위 가 낮은 사람들에게서 많이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폭력영상물이 많이 쏟아져나와도 영상의 세계와 실제를 구분하는 눈만 있다면 이로 인한 폐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영상매체 심의관계자들도 어느 것이 폭력영상물인 지 판단해 적절할 등급 을 정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토로하고 있다. 심의물량이 워낙 많은데다 폭력 영상물에 대한 평가도 결국 주관적인 판단사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공윤심의를 마치거나 방송위원회를 거친 영상물을 보면 폭력 영상물에 대한 규제는 폭력성보다 폭력장면의 빈도수에만 초점을 맞춘게 아닌가하는 인상을 지우기 힘든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중.고등학생용 비디오중 폭력 장면은 적지만 내용상으로 부적합한 비디오가 적지 않은 데도 "수박겉핥기" 식으로 심의통과돼 "중학생가" "고등학생가"라는 이름을 버젓이 달고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때문에영상물에 대한 사전검색과 제어가 거의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영상물 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눈을 키워주는 수용문화의 정착이 더욱 절실하다는 목소리는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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