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산업 발자취

경쟁 업체의 출현 등으로 잠시 당황하던 호남전기는 63년 들어서면서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광주시동구 호남 동내 한 모퉁이의 허름한 공장에서 건전지 생산을 하던 이 회사가 2만평의 대규모 부지를 마련, 광주시 북구 우산동으로 공장을 확장, 이전한 것이 이때였다.

이에따라호남전기는 그동안의 가내 수공업 방식을 탈피하고 대량 생산 체제 로 전환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64년 호남 전기는 각종 망간 건전지에 대한 KS표시 허가를 획득했다. 호남전기의 KS 획득은 전지업체로는 처음이고 전산업계를 통틀어서도 국내에 서 8번째로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60년초부터일찌감치 사내표준화와 품질관리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생산활동에 반영한 결과였다.

"KS8호업체"의 타이틀을 획득한 호남 전기는 경영 및 품질에 완전한 자신감 을 갖고 64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에 전지를 처음으로 출품, 국제 무대로의 본격적인 진출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출품작은트랜지스터 라디오와 계측 장비 등에 사용되던 적층전지인 FC-1 을 비롯한 망간 건전지로 미국에 수출되고 있던 제품들이 주종이었다.

호남전기는이를 계기로 세계 시장에 "로케트" 브랜드를 알리면서 건전지 수출확대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이렇게시작된 수출시장 확대노력의 결과, 호남전기의 맥을 이은 로케트전기 의 지난해 수출액은 1백60억원을 넘어섰고 수출지역도 미국.일본을 포함 전세계 1백여개국으로 늘어났다.

한편호남전기는 공장을 확장, 이전하고 국제 무대로의 진출을 꾀하면서 비밀 프로젝트 하나를 추진하고 있었다.

가전시장진출을 겨냥한 프로젝트였다.

K씨의회고. "심사장은 호남전기를 국내 최대의 건전지 제조업체로 성장시키겠다는 계획과 함께 가전분야에 진출하겠다는 야심을 키우고 있었어요. 63년 경인가 하루는 심사장이 저를 은밀히 불러 가전제품 생산에 대비한 시장조사 를 하라는 지시를 했어요. 우선은 라디오와 전축 생산을 목표로 하는 것이좋겠다는 얘기도 있었지요." 그에 따르면 심사장은 전지사업이 어느정도 안정권에 접어들자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고자 하는 욕심을 부쩍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결과적으로 호남전기는 가전사업에 진출하지 않았다.

심사장이그렇게 강한 의욕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호남 전기가 가전 사업에 진출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시의사정을 어느정도 알고 있는 현로케트전기 근무자들은 그 이유를 금성 사와의 "사업 충돌" 때문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시장조사결과를 놓고 사업 진출시기를 결정할 즈음 금성사도 전지사업에 진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금성사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개발, 생산하던 때라 라디오용의 건전지 를 생산하려는 의도였다.

결국호남전기와 금성사는 서로 상대 회사의 영역에 들어가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할 판이었다.

전지산업아니 어쩌면 재계의 판도를 변화시켰을지도 모를 이 "사건" 은 그러나 양사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로 극적인 타협을 봄으로써 조용히 역사속에 묻혀갔다양사의 신사협정에 따라 호남전기는 가전시장 진출 계획을 전면 폐기하고 대신 금성사가 가지고 있던 전지 생산설비를 인수하는 선에서 물러서야 했다.

그러나이 불씨는 금성사가 이때로부터 30년 가량 흐른 90년대에 들어서 그룹 계열사들을 통해 2차 전지시장 진출을 적극 모색하면서 다시 살아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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