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2036년, 호남에선 반도체가 만들어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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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군 공항 부지에 800조 원을 투자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기로 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조희대 대법원장부터 가수 박진영 씨, 영화 '암살자(들)'과 아시안게임 병역특례 논란까지 분야를 넘나드는 쟁점들이 여의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다소 가려지긴 했으나,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에서도 국가 명운이 걸린 중대한 공방이 오갔다. 이른바 '호남 반도체'로 불리는 메가프로젝트다.

메가프로젝트는 반도체와 피지컬 인공지능(AI), AIDC(데이터센터) 3개 첨단산업 분야에 정부와 민간이 대규모 자본을 투자하는 이재명 정부 역점 사업이다. 핵심 사업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등 호남 지역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기업을 유치해 신규 메모리 반도체 공장(팹)을 구축하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 사업은 첫 단추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최태원 SK 회장은 지난 4월 한중의원연맹 세미나에서 '전남에 에너지가 풍부한데 반도체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 있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꼭 반도체 공장이 가야 하는지는 고민”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후 일본 투자를 검토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이 최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공개로 만난 직후, 돌연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가 발표됐다. 첨단산업 투자가 최고 권력과의 밀실 회동 직후에 급조됐다는 의혹이 불거진 이유다.

본지는 지난 6월 정부의 메가프로젝트 발표 전, 본란을 통해 반도체 클러스터가 '제2의 오송역'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기업이 원하는 곳과 준비된 지자체가 결합하는 진짜 지역균형발전이 되어야지, 정치적 안배나 생색내기용 전리품 분배의 장은 안 된다는 상식적 촉구였다.

이런 우려는 국정감사장에서 수치로 확인됐다. 내년도 산업통상자원부 소관 3대 메가프로젝트 예산안 3조5028억원 가운데, 호남권에만 절반에 육박하는 1조5198억원(49.7%)이 쏠렸다. 나머지 절반이 기존 반도체 거점인 수도권 필수 인프라와 전국 공통 사업비에 배정됨을 감안하면, 사실상 비수도권 몫의 예산을 호남이 독식한 셈이다. 실제 대경권은 148억원(0.48%), 충청권은 89억원(0.2%)을 배정받는 데 그쳤다. 호남권 예산으로 1조5000억원 넘게 책정하기 위해 대경·충청·강원·동남권 등 다른 모든 권역의 기존 예산이 깎여나갔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더 큰 문제는 인프라와 실현 불가능한 '친환경 이념'의 굴레다. 정부와 여당은 호남의 전력자급률이 1.7에 달하고 버려지는 태양광이 많으니 '지산지소(地産地消)'가 충분하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전기는 서류상 숫자가 아니라 물리적인 '망(Grid)'을 타고 흐른다. 당장 팹 4기 가동을 준비 중인 2034년 6.3GW의 전력을 보내기 위해서도 민가를 피해 황룡강과 지방도로를 우회하는 송전선로와 변전소 신설이 필수적이다.

하물며 팹 9기 가동에 필요한 14GW는 어떠한가. 단 1초의 정전도 허용되지 않는 반도체 공장의 특성을 고려하면, 호남의 유일한 기저 전원인 한빛원전 6기가 1년간 쉬지 않고 생산해도 필요 전력의 절반도 충당하지 못한다. 그러자 정부와 여당은 2035년께 폐쇄될 충남 당진 석탄화력(5·6호기) 대체 LNG 발전소를 당진이 아닌 호남에 짓는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광주 팹 인근에 신규 LNG 열병합발전소 건설을 검토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겉으로는 '친환경 태양광'을 내세우며 명분과 표심을 챙기고, 뒤로는 원전과 화석연료 없이는 공장을 돌릴 수 없다고 시인한 셈이다.

글로벌 빅테크와 선진국이 괜히 기를 쓰고 원전과 LNG를 짓는 게 아니다. 호남 반도체가 성공하려면 눈가림식 궤변부터 멈춰야 한다. '반도체 공장을 돌리려면 신규 원전을 짓고 대규모 LNG 발전소를 세워야 한다'고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정부의 진짜 역할이다. '실용주의'를 앞세운 이재명 정부마저 국가 명운을 쥔 1등 산업을 이념의 도구로 삼는다면, 정권이 두 번 바뀐 뒤인 2036년 호남의 벌판에는 반도체 대신 정치적 흉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것이다. 최종 결정은 기업 몫이기 때문이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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