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투자]11개월 밤샘협상 끝 베일 벗은 2000억불…'트럼프의 입' 가려진 팩트시트 실체는

총 2000억달러 규모의 대미 전략투자 세부 실행 청사진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한미 관세 합의가 체결된 작년 10월 이후 정부 협상팀이 매달 미국을 오가며 막판까지 밤샘 협상을 거듭한 결과물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까지 묶어 “한국의 투자가 확정됐다”고 치켜세웠지만, 양국이 배포한 공동 팩트시트(설명자료)에 담긴 실제 합의 내용은 사뭇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과 달리, 팩트시트상 '확정된 본궤도 사업'은 텍사스 가스복합화력 발전소(프로젝트 스타) 1건 뿐이다. 원전(프로젝트 파워)은 포괄적 프레임워크 단계, 알래스카 LNG(프로젝트 노스)는 '조건부 검토 착수'에 불과하다. 미국의 일방적 발표가 아닌, 팩트시트를 항목별로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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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텍사스 발전, 유일한 '확정 본궤도' 사업

팩트시트 상 확정돼 속도를 내는 사업은 텍사스주 라살 카운티 엔시날에 들어서는 223억달러(약 30조원) 규모의 '인공지능 데이터센터(AIDC) 전용 가스복합화력 발전소'다. 발전용량 6.472GW 규모로 2029년 1단계 상업운전을 시작해 2032년 완전 가동에 들어간다. 텍사스 전력시장이 AIDC 급증으로 2030년까지 연평균 13.6%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글로벌 개발사 릴레이티드와 미국 1위 발전운영사 넥스트에라, 텍사스 5위 가스공급사 루이스 에너지가 합작해 탄탄한 사업성을 갖췄다.

특히 텍사스 프로젝트는 발전 연료비 변동 위험을 데이터센터 입주 기업(수요자)이 부담하고 발전소는 설비용량 기준 고정요금을 받는 '톨링(tolling)' 방식 전력구매계약(PPA)을 채택해 15% 안팎의 안정적 내부수익률(IRR)을 확보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향후 20년간 최소 430억달러에서 최대 450억달러의 자금을 회수할 것으로 추산했다. 팩트시트에는 발전기자재, 설계·시공(EPC), 장기 운영·유지보수(O&M)에 한국 기업의 참여를 확대하고, 미국 내 유사 프로젝트에 가스터빈 등 한국산 기자재를 납품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조항도 명시됐다.

◇2호 원전 8기, 부지·일정 백지상태 '다단계 검토'

최대 1200억달러가 책정된 '프로젝트 파워'는 대형 원전 8기(한국형 APR1400 2기, 미국 웨스팅하우스 AP1000 6기) 건설을 위한 한미 원전 프레임워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치 당장 착공할 것처럼 발표했으나, 팩트시트상 이는 부지와 일정, 상업적 조건이 확정되는 대로 개별 프로젝트를 별도 검토해 최종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다단계 구조다.

총 1200억달러 중 1000억달러는 순수 건설비(overnight costs), 200억달러는 공기 지연 등에 대비한 예비비(contingency reserves)로 구성된다. 미집행 예비비도 투자 이행액으로 인정받는다. 특히 장주기 품목 선제작을 위해 연말까지 100억달러의 선급금을 송금하기로 협의해 국내 주기기 제조 생태계로의 조기 자금 환류를 유도했다. 오랜 족쇄였던 지식재산권 분쟁을 풀기 위해 국내 기업의 웨스팅하우스(WEC) 소수 지분(5~10%) 인수와 양국 기업 간 타협협정(SA) 개정도 팩트시트에 담겼다.

◇3호 알래스카 가스관, 투자 약속 아닌 '조건부 검토 착수'

트럼프 대통령의 '투자 기정사실화' 발언으로 논란이 증폭된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의 경우, 팩트시트 원문이 이러한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팩트시트는 “상업적 합리성 및 모든 관련 국내법적 요건 충족을 조건으로 하여 검토에 착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명시했다. 즉 '검토 시작'일 뿐 사업 확정이나 투자 약속이 아닌 셈이다.

알래스카 프로젝트는 북부 유전지대에서 남부 터미널까지 약 1300㎞의 가스관을 건설하는 초대형 사업이다. 천문학적 공사비가 수반돼 과거 굴지의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조차 투자금 회수 위험을 우려해 손을 뗐던 초고위험 사업이다. 팩트시트 상 우리 정부는 미측으로부터 한국 벤더 및 공급업체의 우호적 관여 지원을 약속받았고, 가스관 건설에 투입될 철강 등 한국산 기자재에 대한 관세 인하 혜택을 문서로 확보했다. 또 중동 분쟁과 파나마 운하 가뭄 등 글로벌 해상 공급망이 불안한 상황에서 경제성이 확보되는 가격으로 장기 구매계약(offtake) 체결을 보장받고 생산된 알래스카 LNG에 대한 우선 접근권을 부여받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상업적 합리성'이라는 강력한 브레이크를 쥐고 투자 결정권을 유보한 상태라는게 정부 설명이다.

◇5 대 5 수익 고정·송금 한도 명문화

국민 혈세를 지키기 위한 방어벽도 견고하다. 모든 프로젝트는 하나의 우산형 투자목적회사(I-SPV)를 통해 통합 관리되며, 한국이 투자 원리금을 전액 회수할 때까지 양국 간 수익 배분 비율은 5대 5로 고정된다. 미국이 90%를 가져가는 배분 전환은 전액 회수 이후로 철저히 유예된다. 또 사업비가 불어나더라도 MOU에서 정한 연간 200억달러, 총 2000억달러의 송금 한도를 절대 넘지 못하도록 명문화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우리가 보기엔 미국 사업이 높은 리스크를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유리한 PPA 타이밍과 금융 헤징을 통해 위험을 낮췄다”며 “사업성이 훼손될 경우 정부 간 협의를 거치고 원리금 전액 회수 전까지 9대 1로 못 바꾸게 묶어둔 만큼, 상업적 합리성이 결여된 무리한 투자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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