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해질 거라면서 안락사 권고?”…인지력 떨어진 할머니에 '조력자살' 논란

캐나다 '의료 조력 사망' 통해 83세 노인 사망
손녀 “사망 이틀 전 울면서 '실수했다' 호소”
“노인에게 모호한 용어로 '죽음' 혼동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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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캐나다 조력자살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을 떠난 브리짓 스테게만(왼쪽) 할머니와 손녀이자 주 간병인 브리짓 크라넨동크. 사진=스테게만 유족 제공 / 폭스 캡처

캐나다의 의사 조력 자살 프로그램인 '의료 조력 사망(MAiD)'을 통해 83세 노인이 사망한 이후 고인의 가족들이 인지 기능 저하 및 불충분한 동의 절차 등을 이유로 당국에 철저한 진상 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21일(현지시간) 미국 폭스 뉴스·영국 데일리 메일 등 외신에 따르면, 기독교 신자인 브리짓 스테게만(83) 할머니는 지난 7월 10일 캐나다의 MAiD 프로그램을 통해 사망했다.

고인의 손녀이자 주 간병인이었던 브리짓 크라넨동크는 할머니의 신체적·정신적 상태가 악화함에 따라 캐니프턴에 위치한 한 요양원에 할머니를 모셨다. 그에 따르면 할머니는 위암 진단을 받은 상태였으나 식욕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과거 조력자살이 선택지로 제시되었을 때 이를 명확히 거부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6월, 크라넨동크가 10일간 여행을 떠난 사이에 상황이 급변했다. 여행 막바지였던 7월 3일, 요양원 측은 크라넨동크에게 스테게만 할머니에 대한 조력사망 평가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통보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크라넨동크는 할머니가 이미 1차 조력사 상담을 마쳤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크라넨동크는 요양원 간호사에게 경위를 물었으나 “환자를 대변하고 옳은 일을 하려는 것뿐”이라는 방어적인 태도만 돌아왔다고 전했다.

크라넨동크에 따르면 할머니는 정신 능력 평가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에 대한 질문에 잘못 답하는 등 인지 기능 저하 징후를 보였다. 이어 진행된 2차 평가에서 담당 의사는 '죽음'이나 '임종'이라는 단어 대신 “약을 주면 편안해질 것”이라며 모호한 표현을 사용해 절차를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크라넨동크는 “당시 '할머니가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지적하자 의사는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해주겠다'고 답한 뒤 조력자살 적합 판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사망 이틀 전, 크라넨동크는 할머니에게 예정된 시술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을 아는지 다시 확인했고, 할머니는 울음을 터뜨리며 “실수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시술 당일에도 논란은 이어졌다. 정맥주사를 놓는 과정에서 혈관을 찾지 못해 여러 차례 바늘을 찔러 피가 튀는 등 차질이 발생했다. 이후 의사가 할머니에게 약을 투여하겠다고 고지했으나, 할머니는 눈을 뜨거나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등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최종적인 확인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는 “진행하겠다”며 약을 투약, 결국 10분 후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크라넨동크는 “의사와 요양원이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정신 능력 평가, 사전 동의 확인, 서류 절차 등을 모두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당시에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 방법을 알지 못했던 점을 후회하며, 온타리오주 검시관실, 환자 옴부즈맨, 벨빌 경찰서에 이번 사건의 합법성 및 은폐 여부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요청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영화 브로큰 컨트리의 미라 메터 감독은 “캐나다 의료 시스템이 환자의 가장 취약한 순간에 치료 대신 죽음을 먼저 제시하고 있는지, 안전장치가 제 기능을 하는지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미생명권옹호단체의 로라 에체바리아 대변인 역시 “환자를 돌보는 의료 행위가 생명을 끝내는 행위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며 조력자살 제도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한편 폭스 뉴스 디지털은 해당 요양원과 벨빌 경찰서에 공식 입장 표명을 요청했으나 즉각적인 답변을 얻지 못했다. 캐나다는 지난 2016년 조력자살을 합법화했으며, 현재 MAiD를 통한 사망은 캐나다 전체 사망 원인의 약 5%를 차지하고 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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