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고속인터넷의 출발은 두루넷이다. 1998년 케이블망으로 서비스를 시작했고, 이듬해 하나로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초고속인터넷은 속도는 물론 기능과 요금 측면에서 다이얼 업 인터넷과는 확연히 다른 서비스다. 데이터용 주파수 대역을 분리해 TV 시청이나 전화하면서도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월정액이기에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애초 KT는 경쟁에 선뜻 나서지 않았다. 이미 기존 전화선을 이용해 PC통신과 다이얼 업 인터넷 접속 서비스로 상당한 이익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기존 구리선을 디지털화해 다이얼 업보다 최대 두 배 빠른 ISDN(128kbps)에 무게를 실으며 관망하고 있었다. 일본이 이를 정보화 고속도로의 핵심 인프라로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한국 정부도 ISDN·ATM을 차세대 통신망으로 검토하고 있던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 KT도 수십년에 걸쳐 구축된 동선 전화 가입자회선을 활용한 '비대칭 디지털 가입자회선(ADSL)' 방식으로 치열한 초고속인터넷 시장 경쟁에 가세하는 후발주자가 됐다. 기업이나 사람이나 성장 초에는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만,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 또 다른 변화는 꺼리기 마련이다. 새 기술이 기존 수익을 잠식하고 새로운 투자까지 필요로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변화가 워낙 빠르면 어쩔 수 없다. 지금의 우리 모습처럼.
흥미로운 것은 OECD 회원국 대부분은 시장 활성화를 위해 KT 같은 기존 통신사가 독점적으로 보유한 가입자선로를 통째로 또는 일부만 경쟁사에 개방하는 '망세분화(LLU)'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경쟁사가 새로 깔기 어려운 필수설비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기존 사업자의 망을 빌려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소매시장에서 경쟁하는 방식을 '서비스기반경쟁'이라고 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두루넷·하나로가 한국전력 자회사였던 파워콤과 유료방송사업자(SO)의 케이블망을 빌리거나 자체망을 구축하며 경쟁하는 '설비기반경쟁(facilities-based competition)'이 자리 잡았다. 1999년 말 37만명에 불과한 가입자는 3년 만에 1000만명 수준으로 치솟는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급성장을 보였다.
대가는 컸다. KT는 1년도 안 되어 점유율 1위의 좌를 차지했지만, 후발사는 과도한 네트워크 투자·마케팅으로 수익성이 악화했다. 2001년 정부는 중복투자 완화와 경쟁 촉진 방안으로 망세분화 제도를 도입했지만, 이미 설비기반경쟁으로 굳어져 KT는 경쟁사에 전화선을 제공하는데 소극적이었고 후발사는 자가망 구축에 익숙했다. 하나로는 외자 유치 후 법정관리에 들어간 두루넷을 인수하는 시장 재편이 이뤄졌다. 그런데도 SO는 자체 초고속인터넷을 확대했고, 도매 중심이던 파워콤은 2005년 소매시장에 뛰어드는 역동성을 보였다.
2004년에는 초고속인터넷을 기간통신으로 편입하고 이듬해 KT를 이용약관 인가대상 사업자로 지정해 요금을 규제했다. 그러나 이미 다양한 접속망 간 경쟁이 치열했기에 실익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고 2009년이 돼서야 경쟁상황평가의 결과를 받아들여 인가제를 폐지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은 이같이 짧은 기간 숱한 우여곡절을 거쳐 형성된 이 시장의 혜택이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nclee@hansu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