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확한 '측정'이 대한민국 산업의 경쟁력을 만든다

반도체에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회로가 새겨지고, 항공·방산 제품은 수많은 정밀부품이 오차 없이 맞물려야 한다. 이차전지 역시 소재의 두께와 온도 등 작은 차이가 제품의 성능과 품질을 좌우한다. 우리가 첨단산업의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 기술개발과 설비투자, 인재를 먼저 떠올리지만, 그 밑바탕에는 하나의 질문이 있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정확하게 측정하고 있는가.”

첨단산업으로 갈수록 이 질문은 중요해진다. 반도체 공정이 나노미터 수준으로 미세해지고 제품이 복잡해질수록 작은 측정의 차이가 수율과 품질의 차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공·방산처럼 수많은 부품과 공정이 연결된 산업에서도 각 단계의 측정 결과를 신뢰할 수 있어야 최종 제품의 품질을 보장할 수 있다. 결국 측정할 수 있어야 만들 수 있고,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어야 더 잘 만들 수 있다.

그동안 우리의 계량·측정제도는 국민 생활과 상거래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데 무게를 두어 왔다. 마트의 저울, 주유기의 주유량, 수도·전기·가스 사용량 등 생활 속 계량의 정확성을 관리하며 국민이 측정값을 믿고 거래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산업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전환이 제조 현장을 바꾸고 있고, 반도체·이차전지·바이오·항공·방산 등 첨단산업에서는 측정의 정밀도와 신뢰성이 제품의 품질이자 기업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 이제 계량의 역할도 공정한 상거래를 넘어 우리 산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정확한 측정을 뒷받침하는 역할로 넓어져야 한다.

세계 각국도 측정 역량을 산업 경쟁력의 전략적 기반으로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첨단산업이 고도화될수록 남보다 앞선 기술을 개발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이를 더욱 정밀하게 측정하고 그 결과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정부는 최근 '계량에 관한 법률'을 대폭 개정했다. 2000년 전면 개정 이후 25년 만이다. 특히 제조·공정·시험·품질관리 등 산업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측정을 '산업계량'으로 정의하고 국가가 체계적으로 지원할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기업의 측정관리시스템 구축과 측정기술 보급·교육을 지원하고, 업종별 연구개발과 기업지원을 수행할 산업계량지원센터를 지정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법적 기반을 마련한 것은 출발점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산업현장이 변화를 체감하게 하는 일이다. 먼저 기업이 어떤 공정에서 측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찾아내고 필요한 기술과 기준을 현장에 연결해야 한다. 특히 고가의 측정장비와 전문인력을 개별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중소·중견기업이 필요한 측정기술과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갖춰 나갈 것이다.

측정에 대한 접근도 달라져야 한다. 완성된 제품을 검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설계부터 시험·생산·품질관리까지 산업 전 과정에서 측정 신뢰성을 확보하는 체계로 발전해야 한다.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측정값이 국가측정표준과 끊김이 없이 연결되고 기업이 그 데이터를 믿고 활용할 수 있어야 측정이 생산성과 기술혁신을 뒷받침하는 산업 인프라가 될 수 있다.

AI와 디지털 시대에 맞는 측정환경도 준비해야 한다. 앞으로는 센서와 장비에서 생성되는 측정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AI가 이를 분석해 공정의 이상을 찾아내는 제조환경이 확산할 것이다. 정부도 디지털 기반 측정관리와 첨단 측정기술 개발, 이를 현장에 적용할 전문인력 양성을 함께 추진해 나갈 것이다.

대한민국이 제조강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산업을 묵묵히 떠받쳐 온 표준과 측정의 힘이 있었다. 이번 계량법 개정으로 그 힘을 산업현장까지 확장할 첫 번째 주춧돌을 놓았다.

정확한 측정은 좋은 제품을 만들고, 좋은 제품은 산업의 신뢰를 만들며, 그 신뢰가 대한민국의 경쟁력이 된다. 정확한 측정의 힘이 대한민국 첨단산업의 새로운 도약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정부도 산업현장과 함께 뛰겠다.

Photo Image
김대자 산업통상부 국가기술표준원장김대자

김대자 산업통상부 국가기술표준원장 daeja@korea.kr

  • 놓치면 아쉬운 정보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