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전자파 인체 영향에 대한 연구가 올해로 30년을 맞았다. 그동안 전파법상 인체보호기준과 등급제까지 제도적 틀은 갖췄지만, 데이터센터·송전선로 등 인프라 건설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과학적 근거 기반으로 분쟁을 중재할 수 있는 전담기구 설립이 향후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한국전자파학회가 주최한 '제30회 전자기장의 생체영향에 관한 워크숍'에서 제시된 '전자파 소통문화 재단'(가칭) 설립 제안이 6일 학계와 산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형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박사는 세미나 기조강연에서 “정부·산업계 등 특정 이해관계로부터 독립된 상설협의체가 중립적 입장에서 전자파 관련 정보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평가·제공하고 중재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제안했다.
운영위원회에는 시민 대표와 학계·법조계·비정부기구(NGO)가 함께 참여한다. 투명성을 갖추기 위해 회의록, 의사결정 절차도 공개한다. 원활한 중재·협의를 위한 사회갈등조정위원회와 과학자문위원회도 별도로 둔다.
재원은 관계부처 공동출연금 70%와 전력사·통신사 등이 참여하는 중립펀드 20%, 연구보조금 10%로 구성해 특정 이해관계에 종속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이해당사자 간 역할도 시민단체는 문제제기와 모니터링, 전문가는 위험성 평가와 지식 격차 해소, 정부는 공공 건강보호와 정책 추진으로 구분할 것을 제안했다.
김남 충북대학교 명예교수도 전담기구 설립 필요성에 무게를 실었다. 전자파 인체보호 분야 핵심이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인데도 소통을 담당할 전담기관이 없어 정책 대응이 중구난방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는 이미 전담 조직을 운영 중이다. 일본은 전기안전환경연구소(JET)에 전자파정보센터를 두고 정보 분석과 교육, 국제협력을 전담한다. 독일은 전자파역량센터(KEMF)를 세워 갈등 예방형 소통을 수행하며, 호주는 무선국별 위치와 노출량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개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한다.
국내 전자파 인체 영향 논쟁은 1996년 휴대폰의 전자파 세기가 국제방사선방호협회(IRPA) 일반인 허용기준의 3.7배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로 촉발됐다. 한국전자파학회는 같은 해 전자장과생체관계연구회를 발족하고 이듬해 첫 워크숍을 열어 안전기준 논의를 시작했다. 1999년 제정한 학회 자율기준은 2000년 전파법에 법제화됐고, 2002년 전자파흡수율(SAR) 규제와 2007년 무선국 전자파강도 측정 의무화, 2013년 등급제, 2017년 가전기기 기준 적용으로 확대됐다.
정부도 국민 불안감 해소를 위해 반기별로 생활제품 및 주요장소의 전자파 강도를 측정해 인체보호기준 충족 여부를 공개하고 있다. 다만 최근 인공지능 데이터센터(AIDC) 등 AI 인프라 확충으로 전력·통신 설비 수요가 동시에 늘면서 분쟁이 지속되고 있다.
김남 명예교수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전자파 노출은 더 많아지고 복잡해질 수밖에 없어 인체 영향에 대한 이슈가 지속될 것”이라며 “미신이나 떠도는 설이 아니라 항상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대응해야 하고, 이를 위한 체계적 연구개발(R&D)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워크숍에서는 국제비전리복사방호위원회(ICNIRP) 위원으로 선출된 안영환 아주대 교수의 휴대전화 발암 연관성 규명을 위한 동물실험 결과도 발표됐다. 900㎒ 대역 전파를 흡수율(SAR) 4W/㎏ 강도로 2년간 노출한 결과 발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결과는 국제암연구소의 무선주파수 전자파 발암성 재평가에 반영될 예정이다.
박준호 기자 junho@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