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AI라는 '곱셈기'와 미래 교육: 왜 다시 '기본'인가

대학원생 A가 논문 초고를 들고 왔다. 지도교수로서 학생의 초고를 마주할 때는 언제나 택배 박스를 개봉하는 듯한 설렘과 긴장이 교차한다.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갔다. 쉽지 않은 내용인데 맥을 정확히 짚어 논리를 풀어냈다. 글이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다. “오, 학생도 이렇게 글을 쓸 수도 있구나.” 예상치 못한 즐거운 충격에 기분이 고양됐다. 비결을 물었다. “인공지능(AI0과 여러 번 대화하며 고민하고 다듬었습니다.” AI의 도움으로 학생의 잠재력이 폭발적으로 표출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례가 이처럼 희망적이지는 않다. 최근 학계와 교육 현장은 생성형 AI가 쏟아내는 기계적 지식의 범람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AI를 활용해 누구나 손쉽게 글을 쓰는 시대다. 깊은 사유와 엄밀한 검증이 생략된 이른바 '저질 논문'이 전 세계적으로 양산되고 있다. 작성자 본인도 이해못하는 내용을 복사해 붙여넣어 문서를 만든다. AI가 조합한 매끄러운 문장은 논리적 결함과 데이터의 허구성을 교묘히 은폐한다. 지식의 신뢰도가 근본부터 흔들린다. 기술적 풍요 속에서 우리가 마주한 실상은 학문적 공해다.

이 현상은 교육의 본질에 무거운 화두를 던진다. 교육(Education)의 어원은 라틴어 '에두케레(Educere)'에 뿌리를 둔다. '밖으로(Ex)'와 '이끌다(Ducere)'의 결합이다. 즉, '학습자 안에 있는 잠재력을 밖으로 이끌어낸다'는 뜻이다. 교육의 본질은 내면에 숨겨진 비판적 사고와 독창성이라는 보물을 캐내는 산파역할이다. 지식이 클라우드에 무한히 존재하는 시대다. 이제 교육은 무엇을 담느냐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역량을 '어떻게 끄집어낼 것인가'의 문제로 회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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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교육에서 AI의 역할은 학습 효과를 증폭시키는 '곱셈기(Multiplier)'다. 과거의 교육이 노력과 지식을 더하는 '덧셈'이었다면, AI 시대의 교육은 '(학습자의 역량) × (AI 역량)'이라는 새로운 연산 법칙이 적용된다. 당초 AI의 등장으로 지식 접근성이 평등해져 개인 간의 차이가 좁혀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정반대다. 소프트웨어(SW) 공학에서는 개발자의 역량에 따라 코드 생산성이 최대 10배까지 차이 난다고 말한다. AI라는 곱셈기는 이 격차를 100배, 1000배로 증폭시키고 있다.

여기서 곱셈기의 속성을 직시해야 한다. 곱셈기는 숫자의 본질이나 부호를 바꾸지 못한다. 오직 그 크기만을 키울 뿐이다. 10의 역량을 가진 자에게 AI는 100의 성취를 준다. 그러나 0의 역량을 가진 자는 AI가 증폭해도 여전히 0이다. 저질 논문의 범람은 바로 이 '부실한 기본기'가 증폭된 결과다. AI 시대의 개인 간 격차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질 것이다. 기초 역량이 탄탄한 학습자에게 AI는 지능을 확장하는 날개다. 반면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AI는 생각하는 근육을 퇴화시키는 독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고전적 원리는 AI 시대에 더욱 강력하게 적용된다. AI는 결코 사용자의 지적 수준을 넘지 못한다. 오직 사용자의 역량 범위 내에서만 유용할 뿐이다. 좁은 시야를 가진 사용자가 돌리는 곱셈기는 결코 거대한 통찰을 만들어낼 수 없다. 역설적이게도 AI 시대에는 '개인의 기본 자질 배양'이라는 교육 본연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곱셈의 결과값을 키우는 유일한 방법은 곱해지는 대상인 '인간이라는 기본값'을 단단하게 키우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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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화려해질수록 교육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스스로 텍스트를 읽고, 문맥을 파악하며, 자신의 언어로 논리를 세우는 기초적 지적 훈련이 필수다. 인류 지혜의 체계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할 '근본적인 힘'이 있어야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AI 시대 교육은 지식의 전달이 아닌 '인간 고유 역량의 함양'에 집중해야 한다. AI시대에 미래교육이 집중해야 할 항목들을 정리해보자.

첫째, 질문 능력의 함양이다. 단순히 지시문을 쓰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과는 다르다. 거대한 '물음표'를 머릿 속에 띄워야 한다. AI는 무한 지식을 가진 슈퍼 대백과사전이다. 뻔한 질문은 저질 결과물을 낳는다. 정교하고 깊은 질문만이 AI를 전문가 수준의 파트너로 변모시킨다. 이제 교육은 정답을 외우는 법이 아니라, 질문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둘째, 비판 능력의 함양이다. AI는 허접한 내용을 고급스럽게 포장하는 데 능숙하다. '양치기 개'를 '주도적 무리 보호 관리자'로 표현할 정도다. 가끔 틀린 내용도 확신에 차서 이야기한다. 기가 찰 정도로 뻔뻔하다. AI발 저질 정보의 홍수 속에서 맥락을 읽고 가치를 판단하는 '디지털 문해력'은 핵심 역량이다. 교육은 지식의 진위를 판별하는 비평 능력을 세워주어야 한다.

셋째, 동기 부여다. AI는 욕망이 없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다. 배움의 희열을 갈구하는 욕망이 있어야 질문하고 따지는 행위가 가능하다. AI는 효율적 학습은 도울 수 있어도 학습자에게 배움의 희열을 줄 수는 없다. 학습자가 AI에 함몰되지 않고 주도적으로 길을 찾도록 돕는 정서적 지지는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교육의 성역이다.

AI 시대의 교육은 '기술에 의한 인간 대체'가 아니라 '기술을 통한 인간 역량의 증명' 과정이어야 한다. 저질 논문의 범람은 우리가 '기본'을 다지는 과정을 생략했음을 보여주는 아픈 방증이다. 정부와 교육 당국은 학습자가 AI 네이티브로서 단단한 기초 체력을 갖추도록 교육 과정을 재정비해야 한다.

연산의 중심에 인간을 바로 세우고 그 기본값을 단단히 다지는 일. 그것이 AI라는 강력한 곱셈기를 인류의 축복으로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AI 시대, 우리가 다시 '기본'이라는 오래된 미래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학생 A의 초고에서 보았듯, AI는 준비된 인간에게만 기적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원유집 KAIST 교수 ywon@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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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KAIST 교수, KAIST 스토리지 연구센터장이다. 서울대에서 학사·석사를 받고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컴퓨터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텔에서 근무 후, 1999년 한양대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고, 2019년 부터 KAIST 전자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제39대 한국정보과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셋톱박스용 파일시스템, 플래시 메모리용 펌웨어등 상용기술개발에 성공하고, 세계 스토리지 기술발전에 일조했다. 운용체계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우리나라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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