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플랫폼톡]창업 10년, 스타트업의 본질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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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훈 어니스트 AI 대표

어느새 창업한 지 만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수백억원의 투자유치를 받았고, 임직원이 130명을 넘던 시절도 있었다. 매출 200억원을 돌파하며 소중한 연단위 이익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시장의 변화 속에서 피를 말리는 구조조정과 피벗을 수없이 거쳤다. 수년에 걸친 연속 적자도 견뎌야 했다. 화려한 성장 뒤에는 언제나 치열한 생존의 몸부림이 있었다. 그 긴 시간을 돌아보면, 한 가지 분명한 깨달음이 있다.

스타트업의 성공은 큰 투자유치와 조직 규모에 있지 않다. 돈이 많다고 문제를 더 잘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많다고 고객이 원하는 답을 더 명확히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때로는 풍족한 자원이 본질을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 스타트업의 본질은 세상의 문제에 답을 내놓는 데 있다. 자금 조달도, 조직 확대도 여정의 도구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우리는 4년 전,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회사의 미션과 비전, 전략, 사업을 모두 바꿨다. 온라인 종합 대출업이 주업이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금융산업에 특화된 B2B AI 사업을 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첨단 기술 산업 같지만, 실상은 사람과 시스템, 오랜 관행이 복잡하게 얽힌 생태계다.

금융 산업의 본질을 이해하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숫자와 시스템 뒤에는 수십년간 쌓인 관행과 규제, 그리고 사람들의 습관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우리가 그 시간 동안 한 일은 단 하나, '탐구'였다. 먼저 고객을 탐구했다. 그들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왜 그것을 원하는지를 끊임없이 물었다. 다음은 그들이 겪는 불편함을 탐구했다. 표면적인 불만이 아닌, 그 아래 숨어있는 진짜 문제를 찾아 나섰다.

더 깊이 들어가면 그 불편함의 근원을 찾는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 문제가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았는지, 무엇이 변화를 가로막고 있는지를 파헤쳤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이 진짜로 필요로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그것을 '우리가'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기 시작했다.

때로는 큰 그림에서 시작해 세부로 내려가는 연역적 접근을, 때로는 작은 사실들을 모아 큰 통찰을 얻는 귀납적 방법을 사용했다. 수많은 고객 인터뷰, 데이터 분석, 시장 조사가 쌓이고 쌓였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너무나 단순하지만 잊기 쉬운 진리에 도달했다. 문제를 탐구하고 새로 시도하는 것, 그것만이 스타트업이 할 일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오히려 방해물이다. 화려한 사무실도, 복잡한 조직 구조도, 심지어 넘치는 자금도 본질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유혹일 뿐이다.

스타트업은 남보다 빨리 성장하는 조직이기에 앞서, 세상의 문제를 끈질기게 바라보는 집단이다. 빠른 성장은 결과일 뿐, 목표가 아니다. 인내와 근면, 그리고 무엇보다 탐구심만이 스타트업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지금도 많은 동료 스타트업들이 투자유치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장 변화는 어느 때보다 빠르고, 기술의 변화 주기가 사람과 회사의 적응 속도를 앞질렀다. AI의 등장으로 기존 사업 모델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기도 한다. 투자자도, 고객도, 현장에서 혁신을 만드는 사람들도 어느 때보다 흔들릴 수 있는 시기다.

이럴 때일수록 더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스타트업은 세상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대신 고민하고, 그 답을 만들어내는 존재다. 그 과정의 길이와 깊이가 곧 그 회사의 존재 이유이자 가치다. 투자 규모나 매출 숫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문제를 이해하고 얼마나 진정성 있게 해결하려 했는가가 진짜 척도다.

그 단순한 진실을 이해하는 순간, 스타트업은 더 이상 '생존'의 단어로 정의되지 않는다. 생존을 넘어 '존재의 이유'를 찾게 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로 '살아 있는 회사'가 된다.

서상훈 어니스트 AI 대표 shseo@honestai.t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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