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 출현과 함께 등장한 사과는 지구문명에 큰 진보를 가져왔다.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특히 애플의 베어먹은 사과(스마트폰)는 우리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인류역사상 이 손바닥만한 기기에 인간의 삶이 이토록 통째로 얽매이기는 처음일 것이다.
이브의 사과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었다. 금단의 열매를 선택함으로써 인류는 비로소 문명의 출발점에 서게 된다.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선택의 순간은 결국 인간이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자주론적 선언(free will)이었기 때문이다.
수천년 뒤 뉴턴의 사과는 인류문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사과가 떨어지는 단순한 현상 속에서 만유인력이라는 자연 질서를 발견했고 과학문명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로부터 또 1000년 후 사과는 인간과의 공존을 제시했다. 전화기는 컴퓨터가 되었고, 꺼지지 않는 PC시대를 열었다. 우리의 사고방식, 일하는 방식, 소비 행태, 인간관계까지 우리의 일상은 항상 연결되고, 기록되는 구조로 재편됐다.
인류문명의 네 번째 사과는 인공지능(AI)이다. 그리고 이 사과는 앞선 어떤 사과와도 다르다. AI는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반도체·데이터·클라우드·알고리즘·센서 등 수많은 산업과 기술이 얽혀 돌아가는 융합체기 때문이다. AI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고성능 연산칩, 방대한 데이터, 탄탄한 클라우드 인프라, 정교한 알고리즘, 이를 구현하는 다양한 하드웨어가 정밀하게 연결돼야 한다. 문제는 이것을 한 기업이 모두 자체 개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글로벌 기업들은 '직접 만드는 것'보다 '사들이는 방식'을 선택했다. 애플은 시리(Siri)를, 구글은 딥 마인드를,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를, 테슬라는 자율주행 관련 기업을 인수해 나가며 AI 생태계를 빠르게 채워 나갔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속도와 결합력이다. 한편 필요한 기술을 가장 빠르게 확보하는 수단이 인수합병(M&A)이다. 인류의 모든 문명적 도약은 결국 더 많은 지식, 기술, 자원을 합치고, 나누는 M&A전략으로 이뤄져 왔다.
한편 주제는 아니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필자는 1988년 정보기술(IT)로 창업해 40여년 기술이 인간 문명과 함께 변모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메인프레임에서 PC로, PC에서 인터넷으로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도 기술은 오로지 인간의 보조적 능력, 즉 '도구'에 머물렀다. 그 어떤 혁신도 인간의 사고를 대신하거나, 우리의 최종 결정을 빼앗는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않았다.
그러나 AI는 전혀 다른 존재다. AI가 인간의 사고, 심지어 옳고 그름까지 대신한다면 이는 신의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 에덴동산에서 처음 쟁취한 인류의 자유의지 마저 퇴행시키는 것이며, 기술은 인류 위에 군림하는 규범이 될 것이다. 알고리즘이 대신 선택해주고, 대신 판단해주고, 옳고 그름을 정해주는 편리함은 결국 인간 주권의 포기이며, 알고리즘 신정시대(Algorithmic theocracy)에 들어서는 것이다.
AI의 진짜 위협은 영화 속 터미네이터의 시대가 아니다. 인간의 '게으름'이 인류 종말을 가져올 것이다.
김태섭 피봇브릿지 대표 tskim@pivotbridge.net
〈필자〉1988년 대학시절 창업한 국내 대표적 정보통신기술(ICT) 경영인이며 M&A 전문가이다. 창업기업의 상장 후 20여년간 50여건의 투자와 M&A를 성사시켰다. 전 바른전자그룹 회장으로 시가총액 1조, 코스닥 10대기업에 오르기도 했다. 2009년 수출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그가 저술한 〈규석기시대의 반도체〉는 대학교제로 채택되기도 했다. 2020년 퇴임 후 대형로펌 M&A팀 고문을 역임했고 현재 세계 첫 디지털 M&A플랫폼 피봇브릿지의 대표다.





















